“아버지 컨디션 어때요?” “경기 결과 안 봤나? 롯데 졌다고 꽁해서 안방에 누워계시지” “혈압도 높은데 걱정이네. 야구 보게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아버지가 말 들을 사람이냐?”. 몇 년째 어머니와 전화 통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아버지는 프로야구 출범부터 롯데 자이언츠의 골수팬이다. 스포츠 경기를 즐기는 건 좋은 취미지만, 문제는 이제 80이 넘는 고령에 지병이 있는 아버지가 롯데 자이언츠 경기 결과에 일희일비하며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많은 자이언츠 팬이 그러하듯, 아버지의 자이언츠 DNA는 2대, 3대까지 이어져 온다. 손자는 수능을 앞둔 수험생임에도 자이언츠의 모든 경기를 챙겨 본다. 경기 전 선발 투수와 타자의 기록을 분석해 승부를 예측하고, 경기가 끝나면 승리 혹은 패배의 원인까지 분석한다. 엄마로선 저 열정의 반이라도 수능 연습 문제 푸는 데 쏟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아들과 싸우기 싫어 말을 아낀다.
두 롯데 팬이 쓴 <야구x인생x자이언츠>라는 책을 누구보다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배경이다. 두 명의 저자는 학교, 직업, 삶의 방식조차 완전히 다르다. 롯데 자이언츠 팬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우연히 알게 되었고 롯데 야구에 관한 이야기를 편지로 주고받은 게 이번 책으로 탄생했다. 두 사람의 편지는 야구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야구와 인생의 유사성, 30대 직장인의 애환, 여러 취미를 가진다는 점 등 삶에 관한 이야기를 골고루 버무려 야구를 모르는 독자라도 재미있게 이 책이 다가올 듯하다.
사실 두 저자는 롯데 자이언츠에 대한 애정도가 다르다. 주니라는 애칭을 사용한 이는 롯데 자이언츠가 인생의 전부라고 할 정도로 ‘헤비한’ 팬이다. 진심으로 로또 1등보다 자이언츠의 우승을 원한다고 말한다. 자이언츠가 우승한 해에 태어나 ‘롯데 자이언츠의 마지막 우승이 몇 년 전이냐’라는 질문에 매해 늘어나는 자신의 나이를 대답하는 슬픈 운명의 소유자란다. 부모님은 대치동 교육 열정에 준하는 정도로 저자에게 어릴 때부터 롯데 자이언츠에 대한 애정을 가르쳤다. 자이언츠 승패에 따라 감정의 극과 극을 느낀다.
의사라는 직업 덕분에 사직 야구장에 의료 지원을 몇 번 나가는 행운을 가졌고, 롯데 자이언츠 임수혁 선수가 사고 당시 적절한 의료 지원을 받지 못해 안타까운 결과를 맞이한 걸 가슴 아파한다. 롯데 자이언츠는 자체 팀 주치의를 고용하지 않지만, 자신의 전공 외 스포츠 의학을 따로 공부하며 롯데 자이언츠의 일원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드리라는 애칭의 저자는 자신을 ‘라이트한 팬’이라고 소개한다. 연승을 달릴 때면 열심히 야구 중계를 챙겨 보지만, 연패에 빠지면 결과만 슬쩍 보기도 한다. 회사 인사팀에서 8년째 막내로 일하며 직장인 밴드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 글쓰기, 여행 등 다양한 취미 활동을 한다. 자연스럽게 주니와의 대화에서 취미에 관해 자주 이야기한다. 라이트한 팬이라고 했지만, 의식처럼 롯데의 개막전은 어느 지방에서 하든 꼭 직관으로 챙겨 본다.
책에 수록된 56편의 편지는 롯데에 대한 애증이 가득하다. 다 이긴 경기를 어이없는 에러로 날려 버릴 때면 ‘다시는 야구 안 본다’를 외치지만, 다음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롯데 승리를 위한 구호를 외친다. 21세기에 한 번도 우승 못한 팀에 대해 변치 않는 응원을 보낼 수 있는 건 고단한 일상을 버티는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와 닿아 있다.
야구는 홈에서 나갔다가 다시 홈으로 돌아와야 점수가 난다. 루를 훔쳐서 집으로 한 발, 누군가의 희생을 발판 삼아 집으로 한 발 다가간다. 가끔 조금 더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자 다른 사람이 대신 뛰어주기도 한다. 다른 팀원의 도움을 받아야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같이 살아가야 하는 우리 사회와 닮았다.
보통 3할대의 타율을 기록하면 야구에선 아주 잘하는 선수로 꼽힌다. 이는 10번의 시도 중 7번을 실패해도 리그에서 손꼽히는 수준이라는 뜻이다. 우리 인생에 대입해 보면, 10번 중 3번만 성공해도 굉장히 잘했다고 자부할 만하다는 말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이라도 작아지는 기분이 든다. 김경중·김근우 지음/허밍버드/264쪽/1만 6800원.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