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엔드 아파트 열풍, 그 속살 들여다보니 [비즈앤피플]

입력 : 2025-08-10 08:00:00 수정 : 2025-08-10 08:3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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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산다? 품격을 산다!

호텔식 서비스에 미술품처럼 세련된 외관
홍채 인식 금고·실내 테니스코트 도입 등
커뮤니티 시설 특화로 고급 주거 기준 올려
조망 극대화, 유명 마감재로 디테일 강조
280㎝까지 층고 높여 입주민 개방감 더해
부동산 값 상승·주거 계급화 부추길 우려도

써밋 리미티드 남천의 조감도. 대우건설 제공 써밋 리미티드 남천의 조감도. 대우건설 제공

왜 어떤 아파트는 평(3.3㎡)당 4000만 원이 넘어도 불티나게 팔릴까. 그래봤자 똑같은 집인데, ‘하이엔드’라는 수식어 하나로 가치가 널뛰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이엔드 아파트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고급 아파트는 넓은 평수와 바다 뷰만 갖추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요즘 하이엔드 아파트는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호텔식 서비스와 프라이빗 커뮤니티, 미술품 같은 외관 등 고급 주거의 기준이 크게 올라갔다. 최근 부산에서 분양이 잇따르는 하이엔드 아파트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커뮤니티 혁신 경쟁 가속

하이엔드 아파트의 커뮤니티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헬스장과 목욕탕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수영구 남천동 옛 메가마트 부지에 들어설 ‘써밋 리미티드 남천’은 전국 최초로 자동화 금고 서비스를 도입한다. 방화 벽체 시스템과 홍채 등 생체 인식 기반의 보안 시스템이 적용돼 굳이 은행 금고에 갈 필요가 없어진다.

이 아파트는 부산에서 처음으로 실내 테니스코트와 스크린 시스템이 갖춰진 복합 테니스 공간을 마련한다. 단순한 골프 연습장도 거부한다. 정밀 센서 기술과 인공지능 기술이 접목된 퍼팅 시뮬레이터, 어프로치 존, 프라이빗 연습 타석 등이 아파트 커뮤니티에 들어선다. 이외에도 프라이빗 시네마, 호텔식 사우나, 다이닝 레스토랑 등이 운영될 예정이다.

커뮤니티의 규모도 엄청나다. 과거 건설사들은 집을 짓는 데 주력했고, 커뮤니티 시설은 ‘서비스’ 개념에 가까웠다. 원가 절감을 위해 커뮤니티 면적을 줄이거나 서비스를 축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하이엔드 아파트의 경우 커뮤니티 시설이 곧 단지의 경쟁력이라는 인식이 굳어지고 있다.

해운대구 재송동 옛 한진CY 부지에 들어설 ‘르엘 리버파크 센텀’은 커뮤니티 시설 면적만 3300평에 달한다. 우선 하이엔드 커뮤니티의 상징인 인피니티 실내 수영장과 리버뷰 아쿠아풀 등이 들어선다.

조식 서비스나 다과를 즐길 수 있는 카페 라운지, 소규모 모임과 가족 행사가 가능한 시그니처 살롱, 생활 편의를 지원하는 컨시어지 라운지, 펫카페, 파티룸, 북라운지, 게스트하우스 등도 마련된다.

특히 이 아파트는 커뮤니티 초기 운영비를 지원한다. 주민들이 입주와 함께 커뮤니티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할 예정이고, 2년간 기본 관리비와 운영비를 무상으로 제공한다. 실제 다른 지역 일부 하이엔드 아파트는 기본 운영비를 확보하지 못해 조식 서비스의 운영을 중단하거나 축소한 사례도 있다.


이미지투데이 제공. 그래픽=류지혜 기자 birdy@ 이미지투데이 제공. 그래픽=류지혜 기자 birdy@

■설계의 품격으로 차별화

롯데건설 르엘, 대우건설 써밋, 현대건설 디에이치, DL이앤씨 아크로, SK에코플랜트 드파인 등 국내 주요 건설사는 대부분 자사의 하이엔드 브랜드를 만들었다. 삼성물산과 GS건설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하이엔드 경쟁에 뛰어들었다. 롯데캐슬이나 푸르지오, 힐스테이트 등 일반 아파트와 차별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하이엔드 단지는 기존 브랜드와 설계부터 시공, 마감까지 모든 공정을 ‘업그레이드’한다. 성냥갑 아파트 설계보다는 외관은 돋보이게, 실내 공간은 넓게, 조망은 최대한 확보하도록 ‘특화 설계’를 도입한다. 써밋 남천의 경우 에테르노 청담, 한남 더 힐 등을 선보인 실내건축설계사무소 ‘이웨이(EWAI)’와 나인원 한남, 래미안 원베일리 등으로 프리미엄 노하우를 축적한 ANU가 설계에 참여했다.

단지 외벽에는 ‘커튼월’이 보편화하는 추세다. 커튼월이란 일반적으로 콘크리트, 벽돌로 마감되는 외장재와 달리 유리나 금속 패널 등의 자재로 외벽을 마감한 공법을 말한다. 르엘 센텀은 커튼월은 물론 미디어 파사드도 적용했다. 아파트 외벽에 영상 등을 송출해 단지를 하나의 거대한 ‘디지털 캔버스’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세대 내 바닥이나 벽, 주방 등에는 독일, 이탈리아, 영국 등에서 유명한 마감재를 수입해 쓴다. 최근에는 수전과 문고리, 욕실 용품 등에도 수려한 디자인이나 튼튼한 자재의 상품을 도입, 디테일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주방에서 바로 처리할 수 있는 ‘싱크뱅’도 필수라는 인식이 확산한다.

거실 천장은 가능한 높여서 입주민들이 개방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옛 NC백화점 서면점 부지에 들어설 ‘서면 써밋 더뉴’의 경우 기본 층고를 250cm로, 우물천장 구간은 최대 260cm까지 높였다. 일반 아파트 평균인 230cm를 웃도는 설계다. 천장의 높이를 280cm까지 높이는 단지도 적지 않게 등장하고 있다. 높은 천장은 집이 아니라 마치 호텔에 들어선 듯한 인상을 주는 요소다.

한 분양업계 관계자는 “고급 주거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라며 “좋은 입지에 들어서는 하이엔드 단지는 한정적이기에 지금의 고분양가 논란도 점차 희석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부동산 양극화·계급화 문제도

하이엔드 아파트가 집이 아닌 품격을 판다고는 하지만,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를 부추긴다는 사실 역시 부정하기 어렵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부동산지인’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부산 아파트 시장의 5분위 배율은 6.3으로 나타났다.

주택 가격 상위 20%의 값을 하위 20% 평균으로 나눈 값으로, 배율이 높을수록 가격 격차가 크다는 의미다. 10년 전에 3.7에 불과했던 5분위 배율은 부산 지역 내에서 크게 상승했다.

올 하반기 해운대구와 수영구를 중심으로 하이엔드 아파트들이 잇따라 분양한다면 지역의 평균 분양가격도 큰 폭으로 상승시킬 전망이다. 이는 앞으로 분양하는 일반 민간 아파트들의 분양가도 띄울 우려가 있어 서민들의 주거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하이엔드 단지 특유의 배타성도 간과해선 안 될 요소다. 여러 하이엔드 아파트는 입주민이 아닌 이들의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한다. 심지어 배달 음식도 로비에서 수령해야 할 정도다. ‘프라이빗’을 지나치게 강조해 동선을 짜다보니 외부인은 물론이고 이웃 주민들끼리도 마주칠 기회가 줄어든다.

이는 단순한 부동산 가격의 양극화뿐만 아니라 사회 내 갈등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 특정 아파트에 산다는 것만으로 우월적 지위를 가지려 함으로써 일종의 ‘주거 계급화’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하이엔드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다 보니 재개발·재건축이 진행 중인 다수의 지역 정비사업장에서 하이엔드 브랜드를 고집하는 일이 빈번하다. 문제는 하이엔드라는 이유로 공사비가 크게 오르기 때문에 조합원들이 분담해야 하는 분담금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로 조합 내 갈등이 극에 달하거나, 시공사를 바꾸는 사업장이 적지 않다. 시간과의 싸움인 정비사업이 자꾸만 늦춰지는 건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다.

부산의 한 재개발 조합장은 “하이엔드 브랜드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조합원들 사이에 ‘하이엔드 아니면 안 된다’는 인식이 빠르게 퍼진다”며 “하이엔드는 하고 싶은데 분담금은 부족한 딜레마에 빠진다. 이 딜레마에서 빠져 나오는게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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