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해운·조선 생태계가 구조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가 2023년 개정 온실가스 전략에서 2050년께 넷제로 달성을 명시하고 올해는 연료 기준과 배출 가격을 결합한 글로벌 규제틀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는 규제 준수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인력·표준 경쟁의 문제다. 누가 연료 전환과 운영 안전, 디지털 최적화 역량을 먼저 확보하느냐가 시장지배력을 좌우한다.
유럽연합은 지난해부터 해운을 EU 배출거래시스템(EU-ETS)에 편입했고, 올해는 유럽연합온실가스저감규제를 본격 가동하며 선박 에너지의 탄소집약도 저감을 의무화한다. 규제 타임라인은 이미 돌아가고 있으며, 단지 ‘새 연료를 어디서 사느냐’가 아니라 ‘새 연료를 안전하게 다루고, 데이터로 운항·정비를 최적화하며, 국제규정과 계약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성패를 가른다.
국내 정책 환경도 ‘인재’로 초점이 모인다. 북극항로 개척을 통한 K-해양강국 건설이 국정과제로 추진되고 해양수산부 2025년 업무계획은 ‘민생에 온기, 경제에 활력’을 내걸고 글로벌 선도 해상물류 공급망, 깨끗하고 안전한 바다, 연안·어촌 활력, 글로벌 해양 리더십 등을 핵심축으로 제시했다. 이는 곧 스마트 항만·친환경 선박·자율 운항 등 전환 영역에서 교육·훈련·실증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신호다.
부산시는 ‘글로벌 해양수도’ 도약을 선언하고 북항·신항·영도·남항 등 5대 항만을 잇는 혁신거점을 재편, 공간혁신·산업혁신·인재혁신 3대 전략과 12개 실행과제를 가동했다. 해양금융·본사 집적, 해양신산업 육성, 해양과학기술 축을 연결해 세계 5위권 해양도시로의 도약을 목표로 하고, 국정과제인 북극항로 개척과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흐름을 지역 전략에 내재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선언의 성패는 결국 ‘인재혁신’이 쥐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한미 조선해양 협력이 새로운 스케일로 확장되고 있다. 최근 정상외교를 계기로 한국 조선사들은 미국 조선소 현대화·공급망 강화·첨단조선기술 투자 및 합작펀드에 참여하며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로 상징되는 조선 협력의 생산능력 회복과 기술이전을 시도한다. 이는 생산설비 이전이 아니라 인력과 표준의 공동생태계 구축이라는 점에서 교육·훈련의 초국경 체계를 요구한다.
따라서 해양분야 인재육성은 ‘미래 대비’가 아니라 ‘현재 대응’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인재상은 첫째, 암모니아·메탄올·수소 등 위험물 대체연료를 안전하게 취급·운영할 수 있는 연료전환 안전 전문가이고, 둘째, 자율운항·예지정비·항로·기상·벙커링 데이터를 통합하는 디지털 해기·항만 운영자, 셋째, 해사분야 국제협약을 이해하고 해상운송계약·해상보험·해사분쟁까지 다루는 규제·법무·금융 융합형 인재다. 이 삼중 역량을 대학·기술교육·현장학습으로 연결하는 지산학 협력 모듈이 마련되어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첫째, 국가 해양인재 전략펀드를 가동해 ‘그린×디지털×글로컬’ 핵심전공과 대학원·폴리텍·해기사 교육을 통합 지원해야 한다. 장학·채용연계·장기현장실습을 묶고, 연료전환·안전·규제과목을 국가 표준 커리큘럼으로 인증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둘째, 해사분야 규제 샌드박스를 확대해 교육-실증-자격의 선순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자율운항선박 촉진법이라는 기둥이 서 있는 만큼, 실증특례를 인력 자격·훈련과 바로 연동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셋째, 한미 조선해양 협력 연계 인력 공동양성 프로그램을 국책과제로 상향해 공동학위·상호인정·표준훈련을 구축해야 한다. 미국해사청(MARAD)의 ‘국내 해양인력 양성 우수기관(CoE)’ 지정제도와 연계해 양국 실습선·시뮬레이터를 공유하면 교육의 신뢰성과 이동성이 높아진다.
부산시 차원에서는 북항·신항을 잇는 인재혁신 허브를 조성해 교육·실습·채용이 한 공간에서 이어지는 캠퍼스형 거점을 만들 필요가 있다. 항만 디지털 트윈, 연료·안전 실습센터, 국제교육 시설을 하나의 패키지로 배치하고, 부산형 장학·기숙·생활지원으로 청년 정주성을 높여야 한다. 더불어 싱가포르 해사항만청(MPA)·영국 해사기술위원회(Maritime Skills Commission)·미국 상선사관학교와 학점교류·단기 공동훈련을 제도화해, 부산을 동북아 해양인재의 관문으로 만들어야 한다.
지금 한국은 결정적 ‘타이밍’ 위에 서 있다. 규제의 시계는 이미 가동됐고, 부산은 세계 해양수도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했으며, 한미 협력은 거대한 투자를 동반하고 있다. 남은 것은 사람을 앞세우는 일이다. 인재를 먼저 확보하면 규제는 기회가 되고, 한국 해양산업은 세계의 표준을 주도하게 된다. 이 거대한 전환의 열쇠는 설비가 아니라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