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트라우마, 상처는 보이지 않고 고통만 남는다

입력 : 2025-09-01 18: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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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 편집부 차장

이태원 참사에 투입됐던 소방관이 또 세상을 등졌다. 참사 이후 트라우마로 인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불안 장애에 시달려 왔다. 악몽과 불안 발작 때문에 근무를 이어가기 어려웠고, 병가와 휴직을 반복했다. 공무상 요양을 신청했지만 번번이 불승인 통보를 받으며, 끝내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렸다. 사람을 살린 이들이 정작 자기 삶은 지키지 못하는 현실. 우리는 그들의 트라우마를 개인의 나약함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트라우마란 충격적인 사건 이후에도 기억과 감정이 반복적으로 되살아나 일상 전체를 흔드는 고통을 말한다. 단순히 ‘힘든 경험을 떠올리는 정도’가 아니라, 수면·집중·대인관계까지 무너뜨리며 삶의 기반을 뒤흔든다. 특히 반복적으로 위험과 참혹한 장면에 노출되는 직업군은 트라우마가 쉽게 만성화된다. 2024년 조사에 따르면 전체 소방공무원 중 약 7.2%가 PTSD를 겪고 있다. 자살 위험군은 5.2%, 우울증은 6.5%로 모두 늘었다. 소방관의 PTSD 유병률이 최대 16%에 달한다.

일반인에게도 트라우마는 결코 낯선 일이 아니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70% 이상이 생애 한 번 이상 외상 사건을 겪었고, 그 중 약 15%는 PTSD 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실제로 국내 성인 평생 PTSD 유병률은 약 4.7%에 이르며, 치료받는 환자 수도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트라우마 증상이 객관적 진단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트라우마는 마음 깊숙이 파고드는 상처라 겉으로는 멀쩡해 보일 수 있다. 증상은 주로 악몽, 불면, 불안 발작, 회상과 같은 ‘내면적 체험’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골절이나 전치 진단처럼 눈에 보이는 지표가 없다 보니 대수롭지 않게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 의학적으로도 객관적 수치나 영상 검사로 확인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결국 진단은 환자의 진술과 심리 검사에 의존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주관적”이라는 이유로 주변이나 조직에서 가볍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는 멀쩡히 근무하거나 일상생활을 이어가는 듯 보여도, 실제로는 집중력 저하·대인관계 회피·심장 두근거림 같은 심리·신체적 고통이 일상 전반을 무너뜨린다. 그래서 트라우마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 쉽게 방치된다. 이렇다 보니 가해자는 “그 정도는 별일 아니다”라며 자기합리화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 장면이 바로 용산구청의 ‘축제 관리·안전 우수사례 대상’ 수상 해프닝이다. 용산구청은 지난달 22일 서울시가 주최한 행사에서 해당 부문 대상을 받았다가, 논란이 커지자 곧바로 취소됐다. 특히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재판을 받고 있는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활짝 웃으며 상을 받는 장면이 공개되자 국민적 분노가 커졌다. 참사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고 많은 이들이 트라우마 고통을 겪고 있는데, 박 청장은 책임 여부를 떠나 어떻게 그렇게 웃을 수 있는가. 상처 받은 피해자만 고통 속에 갇히는 사회의 축소판 같았다.

이런 사회나 조직에서는 제2의, 제3의 피해자가 끊임없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가까운 주변에서 받은 상처는 훨씬 흔하다. 그러한 일상의 반복된 상처가 깊은 트라우마로 자리 잡는다. 다만,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트라우마가 남기는 사회적 비용은 결코 적지 않다. WHO(세계보건기구)는 정신적 트라우마로 인한 세계적 손실을 연간 1조 달러(약 1300조 원)로 추산한다. 우리는 이 어마어마한 대가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우리가 외면하는 순간, 또 다른 비극은 예정된 일이다.

김형 기자 m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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