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비혼을 이야기하던 친구가 곧 결혼한다. 30대 초입에서 결혼 소식은 흔해진 지 오래지만, 이번에는 다소 놀랍게 다가왔다. 그만큼 그 친구가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것 같다. ‘결혼 안 한다던 친구가 제일 먼저 결혼한다’는 어른들 말씀 틀린 거 하나 없다는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무념무상으로 쳇바퀴 같이 굴러가는 일상을 살아가는 내게 이 소식은 오랜만에 ‘생각’이라는 걸 하게 했다. 지난 10년간 우리가 함께 공부하고 토론해 온 페미니즘의 여정이 겹치며, 관점을 전환해주는 하나의 사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던 ‘제도’에 눈을 뜬 건 20대 초반이었다. 왜 여성만 당연히 가사 노동을 하는지, 왜 아이의 성은 아버지를 따르는지, 왜 육아와 돌봄은 당연히 여성의 몫으로 여겨지는지, 익숙한 것들이 낯설게 보이던 시간이었다. 그 무렵, 한국 사회에는 여성 대상 범죄를 계기로 다시 한번 페미니즘의 물결이 일고 있었다. 친구를 만난 것도 그때였다. 당연히 결혼해 출산과 육아를 전담할 미래를 그리고 있었던 나는, 처음으로 자신을 ‘비혼주의자’라고 소개하는 친구를 만났다. 나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왜 비혼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했는지’를 물었고, 친구는 “1인 가구야말로 자신의 주체성을 지킬 수 있는 가족 형태라고 믿는다”고 답했다.
'혼자일 때 독립적이고 자유로움’ 인식
10년 전 비혼·독신 등 1인 가구 급증
최근 결혼·임신·출산 등 선택지 다양
각자의 욕망 솔직히 인정하는 분위기
남성·여성 성 역할 구분 짓지 않고
두 주체가 선택한 사랑 방식 존중을
학교에서 사회학 수업을 들으며 우리는 생각을 점점 더 구체화해 나갔다. 결혼, 임신, 출산은 여성의 주체성을 억압하는 제도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결혼을 거부할 수 있는 언어를 손에 쥔 첫 세대로서 목소리를 높이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2015년 오마이뉴스에서 소개된 기획 기사 ‘결혼제도를 묻다 ④-비혼여성집담회’는 이렇게 전한다. “2015년에는 혼인 건수가 30만 건대까지 줄어들고, 1인 가구 비중이 전체 가구의 약 27%를 차지하는 등 비혼 및 독신 삶이 ‘소수의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실제로 통계청 혼인 건수를 보면, 2015년 혼인은 30만 2800여 건으로 2003년 이후 최저였고, 1인 가구는 급증해 4인 가구를 제치고 대표적 가구 형태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결혼과 임신을 욕망하는 사람이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면 비혼을 선택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느꼈고, 결혼과 출산을 원하는 마음이 스스로 모순처럼 여겨졌다. 그 경계에서 갈팡질팡하며 제도를 비판하면서도, 내 안의 욕망을 인정하기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것은 여성의 선택지를 오히려 줄이는 관념이었다. 미국의 작가 록산 게이는 〈배드 페미니스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페미니즘은 여성이 자신이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결정을 내릴 때조차 그것을 지지하는 기반 위에 서 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놓치고 있던 지점이었다. 다른 여성의 결정을 지지하는 것이 곧 페미니즘의 정신인 것이다.
시간이 흐르며 우리 세대는 더 복잡해졌지만, 동시에 더 자유로워졌다. 주변에는 결혼만 하되 임신과 출산은 하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고, 결혼은 하지 않지만 아이를 낳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입양을 꿈꾸는 사람, 1인 가구를 유지하겠다는 사람도 있다. 분명한 것은 선택지가 다양해졌고, 각자의 욕망을 솔직히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요한 건 이 선택들이 더 이상 ‘정상 가족’에 비해 부족하거나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상 가족의 경로를 따르지 않으면 어쩐지 잘못 살고 있다는 기분, 설명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를 느끼기도 했지만, 이제는 각자의 방식이 자연스럽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흐름이 조금씩 자리 잡고 있다.
10년이 흐른 지금, 나는 친구에게 ‘어떻게 결혼을 결심했느냐’고 묻는다. 친구는 오랫동안 혼자일 때만 독립적이고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둘이서도 서로의 주체성을 지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했다. 남성과 여성 모두 성 역할에 스스로를 구분 짓지 않고, 서로의 주체성을 지켜나갈 수 있다. 예를 들어 남성의 육아와 여성의 직장 생활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두 주체가 가족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사랑의 방식을 존중하는 것, 그것이 2025년 우리가 그리는 이상적 가족의 모습 아닐까.
그래서 친구의 결혼 소식은 내게 단순한 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대를 관통하는 질문이자, 우리 사회가 어디까지 변했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계기였다.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의 고민을 증명하는 사건이자, 앞으로의 삶을 함께 모색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지난 10년간 우리가 페미니즘을 통해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