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맞는 장애인을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에게 맞는 일을 찾아 채용합니다.”
혼다태양 니시다 하루야스 사장의 말이 끝나자, 부산에서 온 탐방단 참가자들의 눈빛이 번쩍 빛났다. 장애인들이 기계 부품을 조립하고, 매장에서 손님을 맞으며, 자신의 삶을 일궈가는 현장은 그 자체로 감동이자 충격이었다.
지난 11일, 일본 오이타현 벳푸시. 부산국제장애인협회(회장 강충걸) 소속 장애인과 자원봉사자 130여 명이 사회복지법인 ‘태양의 집’을 찾았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열린 이번 탐방은 단순한 해외 연수나 견학이 아니었다. ‘보호가 아닌 기회’를 모토로 장애인 복지의 길을 개척해 온 일본의 현장을 직접 보고 배우는 자리였다. 이번 행사는 (사)부산국제장애인협의회(회장 강충걸) 주최하고 부산금정로타리(회장 김동석·대회장 최순웅)가 연례 지원하는 봉사 사업이다.
‘태양의 집’은 1965년 정형외과 의사 나카무라 유타카 박사(1927~1984)가 설립했다. 그는 “이 세상에 심신장애인은 있어도 일에 장애는 있을 수 없다”는 철학을 남겼다. 그 말처럼 이곳에서는 장애인 훈련생 125명이 생활하며 사회 진출을 준비하고, 설령 취업하지 못하더라도 노후까지 생활을 보장받는다.
나카무라 박사가 남긴 말 “없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있는 것을 생각하자”는 철학은 지금도 현장 곳곳에서 확인된다. 훈련 기숙사의 편의시설부터 장애인 눈높이에 맞춘 자동문과 자판기, 맞춤형 생활 도구와 재활 로봇까지. 작은 배려들이 모여 장애인의 자립을 현실로 바꿔놓았다.
특히 눈길을 끄는 점은 대기업과의 협업 구조다. 오므론이 태양의 집 부지 안에 첫 장애인 공장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소니·혼다·미쓰비시상사 등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특례 자회사를 세웠다. 현재만 해도 24개, 일본 전역으로 확산한 특례 자회사는 200여 개에 달한다. 대기업이 기술과 운영을 맡고, 태양의 집은 근로와 생활 환경을 지원하는 ‘민관 협력형 자립 모델’이 완성된 것이다.
탐방단은 세 개 조로 나뉘어 공장과 매장, 훈련 기숙사 등을 차례로 둘러봤다. 휠체어에 앉아 부품을 조립하는 장애인, 고객을 응대하는 장애인, 생활관에서 훈련을 이어가는 장애인들의 모습은 참가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협의회 고문 이경욱 (주)참콤 대표는 “장애인들이 땀 흘리며 일하는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며 “부산에서도 지역사회와 민간이 힘을 모아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이 간 황소룡 디에이치테크 대표 역시 “이번 견학이 부산 장애인 복지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주었다”며 “지역에 더 많은 복지시설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보탰다.
인구 12만 명의 소도시 벳푸. 그러나 이곳에는 1만 1000여 명의 장애인이 살고 있다. 전체 인구의 약 10%에 해당하는 규모다. 도시 곳곳에는 장애인 전문 병원, 아동복지시설, 문화 공간이 자리 잡고 있어 ‘장애인 복지 도시’로 불린다.
탐방단은 태양의 집 견학을 마친 뒤, 벳푸와 후쿠오카 일대 복지시설을 찾았다. 플라자 복지센터에서는 현지 사회복지 전문가들과 직접 대화하며 일본 사회복지 제도의 뿌리와 지역사회 연계 사례를 배웠다.
부산국제장애인협회 후원이사 고주복 BCM커피머신백화점 대표는 “앞으로는 지체장애보다 지적장애인을 위한 자립·재활 정책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며 “부산에도 그에 맞는 시설이 생기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임영규 협의회 자원봉사단장은 “이번 경험을 토대로 부산 장애인 복지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탐방단에는 발달장애 청년 예술가 김두용 씨(이지투게더 소속)도 함께했다. 그는 “평소 접하기 어려운 장애인 복지시설을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어 좋았다”며 “이번 기회를 마련해 준 협회에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번 탐방에는 최순웅 대회장(신우산업밸브 대표)와 정화원 시각장애인 전 국회의원, 협의회 고문 이경욱 참콤 대표·황소룡 디에이치테크 대표, 임영규 자원봉사단장, 노정숙 애심봉사회장, 후원이사 고주복 BCM커피머신백화점 대표, 권영희 부산세무사회 회장, 김현미 효원HM 대표, 시읽는문화 김윤아 이사장·이숙희 이사·주대선 이사 겸 사진 작가, 정광현 (주)포앰·코리아오션텍 대표, 전민형 목원대학교 경찰법학과 특임교수, 박진수 변호사 등이 함께했다.
최순웅 대회장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복지 환경을 만들고, 부산이 한·일 장애인 복지 교류의 가교 구실을 할 수 있어 자부심을 느낀다”고 힘주어 말했다.
강성할 미디어사업국 기자 shg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