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목도 코앞인데, 이 정도 했으니 인제 그만 물러나 주면 좋으련만…”
남해안 양식장을 위협하던 ‘붉은 재앙’ 적조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최근 잇따른 호우에 수온이 낮아지면서 덩달아 주춤하는 모양새다. 엿새가 넘도록 추가 피해 신고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오락가락하는 빗줄기에 적조 역시 들쭉날쭉한 데다, 주중 호우에 마지막 뒤끝을 남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어민들은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적조 모니터링 자료를 보면 지난 10일 통영 욕지도 주변을 중심으로 ml당 최대 4320개체로 정점을 찍은 적조 생물 농도는 이후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비가 오면 저층으로 가라앉아 100개체 안팎을 유지하다, 그치면 육상에서 공급된 영양염류를 먹이 삼아 다시 증식하는 패턴이다.
그나마 수온 하강과 맞물려 이달 초만큼 고밀도로 집적되진 않고 있다. 15일 기준으로 남해 2000개체, 거제 440개체, 통영 10개체 수준이다.
수과원 박태규 박사는 “적조는 수온이 20도 아래로 떨어지면 자연 소멸하곤 한다. 최근 경남 연안 수온이 갑자기 내려간 게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점액질 성분이 물고기 아가미에 붙어 질식사를 유발하는 코클로디니움의 적정 생장 수온은 23~26도다. 그런데 지난 주말을 전후해 최저 19도까지 떨어졌다.
이 과정에 코클로디니움 대신 메소디니움, 스켈레토네마 같은 무해성 규조류가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종간 경쟁에서 밀린 것이다.
덕분에 떼죽음 피해도 잦아들었다. 이날까지 경남도에 집계된 적조 피해 추정 양식 어류 누적 폐사량은 124만 6000여 마리, 피해액은 36억 3600만여 원이다.
이중 남해군이 89만 2000여 마리, 24억여 원으로 가장 심각하지만, 열흘 넘게 추가 피해는 없다.
경남권 최대 양식 활어 산지인 통영도 지난 10일 7만 5000여 마리 폐사 신고가 마지막이다.
하지만 어민들은 지금도 밤잠을 설치고 있다. 규조류에 밀리고 있다지만 우점종은 여전히 코클로디니움인 데다, 수온도 22~25도 선을 유지하고 있다. 수과원이 남해안 전역에 적조 특보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주중 호우도 예보됐다. 수과원은 “간헐적인 강우에 따른 육상 담수 유입으로 인해 국지적 적조가 지속될 가능성 있다”고 짚었다.
진해만을 중심으로 번진 ‘산소부족 물덩어리’(빈산소수괴) 피해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미 고성군 가리비·굴 양식장과 창원 홍합 양식장 220ha에서 떼죽음 피해가 발생했다. 피해액은 45억 원 상당이다.
빈산소수괴는 용존산소량이 L당 3mg 이하로 떨어지는 현상이다. 발생 해역은 플랑크톤과 미생물마저 사멸해 수심 10m 바닥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투명해 어민들 사이에선 ‘청수, 죽음의 바다’로 불린다.
특히 고수온 환경에 장기간 노출된 상태에선 더 치명적이다.
실제 작년 여름 경남 지역 굴 양식장이 직격탄을 맞았다. 굴은 딱딱한 껍데기가 알맹이를 보호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수온 변화에 둔감하다.
게다가 지난해는 긴 장마로 성장 환경은 더 좋아져 작황이 나쁘지 않으리라 예상됐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딴판이었다. 경남 전체 굴 양식장 3분의 1에 해당하는 1130ha가 초토화됐다. 평균 폐사율 60%, 심한 곳은 90%를 웃돌았다. 30도를 웃도는 역대급 고수온이 두 달 가까이 이어진 상황에 빈산소수괴가 덮치면서 뒤늦게 폐사를 유발한 것이다.
당시 악몽이 아직 생생한 어민들은 노심초사다. 굴수협 지홍태 조합장은 “지난해도 멀쩡한 줄 알았던 어장이 엉망으로 변해있었다. 수확을 시작해야 실제 피해 정도를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