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크린 찢고 나온 음식이 부산 맛집에

입력 : 2025-09-26 09:00:00 수정 : 2025-09-26 09: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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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30회를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26일 폐막한다. 머릿속에 영화의 잔상이 남아 너무 아쉽게 느껴진다면 ‘빵타스틱 마켓’ 기획단이 부산의 골목 맛집들과 함께 마련한 30돌 축하 이벤트 ‘부귀영화로:Scene to Table’ 현장을 찾아봐도 좋겠다. 이 행사는 ‘영화 속 한 장면을 음식으로 재현한다면’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부산의 골목 맛집들이 영화 속 인상 깊었던 음식 장면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풀어낸 것이다. 모두 13곳에서 준비했지만, 행사 일정이 끝난 곳 등을 제외한 8곳을 골라 소개한다(상호/영화/메뉴 순).


■제과점빵/해초를 구해줘/해초 바게트

북구 구포역 근처 작은 빵집 ‘제과점빵’은 바다 생태계와 해초의 중요성을 다룬 캐나다의 다큐멘터리 ‘해초를 구해줘’를 골랐다. 영화는 주인공 프랜시스가 캐나다 서부 해안의 해양 생태계 파괴 현장을 목격하면서 시작한다. 그는 해초가 바다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해초 숲 복원 프로젝트에 직접 뛰어든다.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직접 다시마를 키우고 해양 숲을 되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아냈다. 바다의 생명을 살린 해초가 우리의 식탁까지 이어지는 여정이 잘 묘사됐다.

‘제과점빵’은 아주 작은 한 조각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해초 바게트’를 준비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바게트 안에 싱그러운 해초 샐러드를 가득 담았다. 해초 바게트를 한입 크게 베어 물면 바다의 향긋함이 전해지면서 영화 속 장면이 떠오를 것 같다. 해양수도를 꿈꾸는 부산에 딱 맞는 영화와 메뉴라 더욱 궁금해진다. 부산 북구 구포만세길 116.


제과점빵의 해초 바게트. 제과점빵의 해초 바게트.

■베이크웍스/앙:단팥 인생 이야기/팥앙금밤파이

광안리 수변공원 근처에 위치한 디저트 카페 ‘베이크 웍스’는 일본·프랑스·독일 합작 영화 ‘앙:단팥 인생 이야기’를 선택했다. 납작하게 구운 반죽 사이에 팥소를 넣어 만드는 일본 전통 단팥빵 ‘도라야키’를 파는 가게가 영화의 배경이다. 우연히 가게에 들른 한 할머니는 자신이 만든 비법의 도라야키 팥소로 가게 알바생이 된다. 맛있는 도라야키로 입소문을 타고 줄 서는 맛집이 되지만 할머니의 비밀이 밝혀지는데…. 할머니에게 팥앙금은 단순한 단맛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를 담은 것이었다.

베이크웍스는 할머니가 정성들여 완성하는 도라야키를 떠올리며 팥앙금파이를 만들어 선보인다. 앵두팥을 푹 삶아 주걱으로 부드럽게 저어 만든 팥앙금에 직접 조린 밤을 더해 완성한 것이다. 앵두팥은 붉고 둥근 앵두 같은 모양을 지녀 이름 붙여진 토종 팥이다. 팥앙금밤파이는 인생이란 고난 속에서도 기다림과 정성을 통해 완성된다는 진리를 전한다. 부산 수영구 광안해변로307번길 25-2.


베이크웍스의 팥앙금밤파이. 베이크웍스의 팥앙금밤파이.

■말란드로/리틀 포레스트/시나몬 밤 크렘 브륄레

망미동 맛집 ‘말란드로’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는 ‘시나몬 밤 크렘 브륄레’를 준비했다.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리틀 포레스트는 음식이 주는 위로를 차분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나오는 음식만 해도 배춧국, 배추전, 수제비, 꽃 파스타, 아카시아꽃 튀김, 쑥갓 튀김, 오이콩국수, 달걀 샌드위치, 김치전, 두부전, 막걸리, 떡볶이, 무지개 시루떡, 양배추 빈대떡, 감자빵, 크렘 브륄레, 밤조림, 곶감, 양파 통구이 등 그야말로 다채롭다. 친구 때문에 속상해하는 딸을 위로하며 엄마가 만들어준 디저트가 크렘 브륄레다. 커스터드 크림 위에 설탕을 올린 뒤 불로 구워 단단한 설탕 막을 입혀 만든다.

말란드로는 점차 쌀쌀해지는 가을을 앞두고 시나몬 밤 크렘 브륄레로 따뜻한 위로의 마음을 전하겠다는 생각이다. 말란드로(malandro)는 뜨거운 고무처럼 유연해서 언제 어디서나 적응하고, 무엇으로도 변할 수 있는 사람을 부르는 포르투갈어다. 말란드로는 자신을 여행자의 감각을 담아낸 요리와 뜨거운 고무 같은 유연함이 있는 곳으로 소개한다. 부산 수영구 망미번영로63번길 54.


말란드로의 시나몬 밤 크렘브륄레. 말란드로의 시나몬 밤 크렘브륄레.

■위즈더미/리틀 포레스트/베이컨 감자빵

남천동의 테이크아웃 전문 베이크샵 ‘위즈더미’ 역시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골랐다. 감자빵, 호박전, 매실주, 오이장아찌, 달걀말이, 인절미….

영화 속에는 이처럼 제철 재료를 활용한 음식들이 중요한 매개체로 등장한다. 그래서 요리 영화나 힐링 영화로 기억하는 사람도 많다. 주인공 혜원이 힘들 때마다 엄마는 “감자는 땅속에서 오래 버텨야 맛이 나”라며 감자빵을 구워줬다. 감자빵은 단순한 빵이 아니라 인내와 기다림을 상징하는 음식이었다. 엄마는 혜원이 성인이 되면 감자빵 레시피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랬던 엄마는 혜원이 수능을 본 뒤, 왜 편지를 숨겨두고 홀연히 떠난 것일까. 혜원은 감자빵을 구워내며 엄마를 생각한다. 위즈더미는 베이컨 감자빵에 그 순간의 따뜻함을 담아냈다. 그래서 베이컨 감자빵에서는 누군가를 떠오르게 하는 맛이 난다. 위즈더미는 포카치아와 감자빵 두 개의 빵 식감을 합쳐 만든 포카빵이 원래부터 인기 있었다. 부산 수영구 수영로475번길 9 .


위즈더미의 베이컨 감자빵. 위즈더미의 베이컨 감자빵.

■히비노브레드/해피 해피 브레드/콩빵

남천동 ‘히비노 브레드’는 일본 영화 ‘해피 해피 브레드’에 나오는 콩빵을 선보인다. 이 영화는 도시 생활을 접고 홋카이도의 아름다운 호수 근처에 '카페 마니'를 연 젊은 부부의 이야기를 그렸다. 남편은 맛있는 빵을 굽고, 아내는 향긋한 커피를 내리며 소박하지만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자 각자 사연과 상처를 가진 손님들이 찾아와 빵과 차를 나누며 치유되고 위로받는다. 히비노브레드는 마지막을 준비하던 노부부가 그곳에서 갓 구운 콩빵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문득 내일도 다시 이 맛을 보고 싶다고 생각을 바꾸게 되는 장면에 공감했다. 빵 한 조각의 따뜻함이 삶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으로 바뀌는 기적 같은 순간을 마음에 담아 콩빵으로 구워냈다. '매일의 빵'이란 의미의 히비노브레드는 매일 건강하게 즐길 수 있는 빵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담았다. 부산 수영구 광남로48번길 8.


히비노브레드의 콩빵. 히비노브레드의 콩빵.

■주든/비어페스트/페스트비어

광안리의 크래프트 맥주집 주든은 맥주 마시는 장면이 끝없이 이어지는 영화 ‘비어페스트(Beerfest)’를 골랐다. 이 영화는 독일의 전통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를 모티브로 삼아 주로 독일에서 촬영했다. 영화 속 비어페스트는 세계 최고의 맥주 마시기 대회로, 독일의 왕실과 귀족들이 참여하는 전통 행사다. 참석자들은 최고의 맥주를 맛보면서 경쟁을 통해 실력을 겨루게 된다. 비어페스트는 단순히 맥주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독일과 맥주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영화 속 맥주 마시기 대회의 모습은 옥토버페스트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재현했다. 마침 독일 뮌헨에서는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2주 동안 옥토버페스트가 열리고 있다.

주든은 툼브로이와 함께 독일 밀도르프에 자리 잡은 양조 가문이 옥토버페스트를 위해 양조하는 오리지널 레시피로 만든 페스트비어(Festbier)를 준비했다. 알코올 도수 5.7%에 IBU(쓴맛 지수) 21이다. 빵처럼 고소한 몰트의 깊은 풍미에 은은하게 어우러지는 홉의 밸런스가 매력적인 축제 맥주다. 물 대신 마셔도 된다(?)는 독일의 데일리 맥주 헬레스도 준비되어 있다. 부산 수영구 광남로 202.


주든의 페스트비어. 주든의 페스트비어.

■틴타젤/어바웃 타임·마이 올드 오크/피쉬 앤 칩스

광안리 다이닝바 틴타젤은 유일하게 영화 두 편을 골랐다. ‘마이 올드 오크’ 에선 술, ‘어바웃 타임’에선 안주를 선택한 것이다. ‘어바웃 타임’은 영국에서 만든 시간여행자에 대한 영화로 영국 콘월에서 촬영됐다. 틴타젤은 ‘아서왕 이야기’에 나오는 성(城) 이름으로 실제 영국 콘월 지역 에 존재하는 유일한 곳이라고 한다. 영화에는 주인공 팀이 바닷가에서 피시 앤 칩스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영국에는 '피시 앤 칩스 말고는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평범한 일상 음식을 통해 소소한 행복을 드러내고 있다. 틴타젤은 이 점에 착안해 피쉬 앤 칩스를 선보인다.

‘마이 올드 오크’는 거장 켄 로치 감독의 은퇴작으로 2023년 영국 영화다. 영국 어느 폐광 마을에 시리아 난민들이 집단 이주를 하며 마을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마을의 유일한 펍 '올드 오크'를 운영하는 TJ와 시리아 난민 소녀 야라는 점차 우정을 쌓아 간다. 폐광 마을 주민과 시리아 난민이 함께 모여 건배하는 장면만큼 갈등이 해소되고 화합하는 장면이 또 있을까 싶다. 틴타젤은 이들처럼 영화팬들이 함께 모여 수제맥주와 위스키로 건배해 보자고 제안한다. 부산 수영구 광남로 238-1.


틴타젤의 피쉬 앤 칩스. 틴타젤의 피쉬 앤 칩스.

■재즈프레소 레코드바/존 윅/싱글 배럴 버번 위스키 ‘블랑톤’ 샷

남천동에 자리 잡은 ‘재즈프레소’는 에스프레소같이 깊고 진한 재즈의 매력을 전하는 곳이다. 부부가 10년 넘게 모은 1500장의 재즈와 소울 음악 LP로 채워진 공간이다. 영화 ‘첨밀밀’ 마지막 장면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실내 인테리어도 인상적이다. 매주 토요일에는 재즈 라이브 공연을 한다. 재즈프레소는 액션영화의 흐름을 바꿔놓았다고 평가받는 영화 ‘존 윅’의 한 장면을 뽑았다. 존 윅은 은퇴한 전설적인 킬러를 잘못 건드린 악당들에 대한 복수극으로 스토리는 매우 단순하지만 액션신만큼은 모두가 인정하는 영화다.

재즈프레소는 존 윅에서 주인공을 맡은 키아누 리브스가 마셨던 싱글 배럴 버번 위스키 ‘블랑톤’을 내놓았다. 존 윅은 부상을 당한 뒤 진통제 대신 이 술을 마시기도 했다. 최초의 싱글 배럴 위스키로 말 위에 기수가 탄 경마 모양 병마개가 특징이다. 영화 존 윅을 좋아하면 무조건 마셔야 하는 술이다. 영화제가 끝나고 남은 진한 여운을 엔딩 크레딧 같은 블랑톤 버번과 재즈 음악으로 남겨보라고 권한다. 부산 수영구 광안해변로 27-3.

영화 ‘존 윅’에서 키아누 리브스가 ‘블랑톤’을 마시고 있다. 영화 ‘존 윅’에서 키아누 리브스가 ‘블랑톤’을 마시고 있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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