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발을 디디는 순간, 잠시나마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산림치유지도사들의 안내에 따라 풀과 나무 이름을 익히고 이들이 내뿜는 향을 맡으면서 숲을 알아나갔다. 벌레소리, 나뭇잎 소리는 물론 햇빛 아래 비치는 그림자도 색다른 감동을 전하기 충분했다. ‘산림치유’는 숲에서 찾는 치유의 순간이자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 면역력 높이고 마음 돌보고
산림치유는 숲을 중심으로 향기와 경관, 피톤치드, 햇빛, 소리 등 자연의 여러 요소를 활용해 인체 면역력을 높이고 건강을 증진시키는 활동 전반을 일컫는다. 인간 본연의 자기 회복력으로 병을 낫게 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춘 산림치유는 싱잉볼, 명상, 요가 등이 결합되면서 더욱 다채로워졌다.
지난해 말 문을 연 ‘국립부산승학산치유의숲’에서 운영 중인 맞춤형 프로그램에 참여한 단체와 함께 숲 내 제석골을 따라 500m 남짓을 걸었다. 부산에서 10년간 산림치유지도사로 활동해 온 홍현정(49) 주임과 함께 숲에 들어서기 앞서 간단한 체조부터 했다. 숲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인 만큼 충분한 운동은 기본이다. 홍 주임의 지도에 따라 숲에 들어서자마자 두 눈을 감은 채 코로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쉬었다. 들이마신 숲의 깨끗한 산소가 몸 구석구석에 전달되면서 숨을 내쉴 때 몸속에 축적된 이산화탄소 같은 노폐물을 밀어내는 느낌이었다. 숲을 차지하고 있는 나무, 풀, 꽃들의 이름을 듣는 순간 숲이 달리 보였다. 개울물 소리와 새 울음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홍 주임은 산림치유를 두고 자신에게 머무르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산림치유의 핵심은 잘하려는 부담이 아니라 오감을 열고 자연을 받아들이며 충전하는 것”이라며 “내면의 여행으로 시각을 바꾸는 것 또한 산림치유”라고 강조했다.
부산 기장군에 있는 ‘부산치유의숲’에서는 지역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허브 향기를 맡고 나무 그림자를 관찰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산림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9년 간 산림치유지도사로 활동 중인 정영숙(55) 지도사의 안내에 따라 ‘질경이 풀싸움’으로 스트레스를 ‘뽑아낸’ 뒤 걷기 시작했다. 풀잎 아래 천을 대니 햇살에 비친 그림자는 한 폭의 그림이 됐다. 여름에는 누릴 수 없는 호사였다. 골반 너비로 다리를 벌린 채 숨을 내쉬며 생각을 다듬는 바르게 걷기를 통해 마음을 가라앉혔다. 숲은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일상에서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털어내는 치유의 장이 되기 충분했다. 정 지도사는 “발바닥 감각을 느끼면서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신체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도 좋다”며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숲을 주의 깊게 바라보면 보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참여자들의 산림치유에 대한 만족도 역시 높다. 40여 년간 미국서 생활하다가 지난해 부산에 정착했다는 김부자 씨(77)는 “집에서는 답답함을 느꼈는데 숲에 오니 기가 막히게 좋다. 힐링이 된다”며 만족해했다. 또 다른 참가자인 이숙연 씨(78)는 “마음이 탁 트이고 낭만이 느껴진다”고 웃음지었다.
●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산림치유
산림치유가 주는 효과는 연구 결과로도 입증된다. 산림청의 2022년 발간한 <쉽게 읽는 산림치유>에 따르면 실제 숲을 바라보며 하루 20분 이상 지내는 사람은 도시에 머무는 사람보다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가 13.4% 적었다. 산림치유인자인 피톤치드는 회복기 유방암 환자들의 NK세포 수를 늘리는 효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산림치유는 혈압 떨어뜨리기 뿐만 아니라 갱년기 여성의 불면증 개선, 인지기능 향상, 피로 회복, 치매 예방 등 다양한 긍정적 효과를 이끌어냈다. 특히 숲속 심호흡은 항산화효소와 알파파(이완 뇌파)를 유의미하게 증가시켜 노화 방지와 심신 안정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의 오감을 자극한 산림치유는 소아 천식·아토피 피부염 증상 완화, 청년과 중장년기의 불안감과 우울감 감소, 장노년기 항노화 기능 향상 등 모든 연령대에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산림복지진흥원에선 유아, 청소년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전생애 주기에 맞춘 ‘맞춤형 산림복지서비스’를 강조한다. 유아기에는 유아숲체험을 통해 곤충과 나무의 성장을 배우고, 청소년기에는 캠핑·트레킹 등 레포츠 활동으로 활력을 얻는다. 중장년기에는 숲해설과 산림치유프로그램을 통한 산림휴양활동을 하며, 노년기에는 숲에서 가볍게 걷고 새소리·물소리를 들으며 기분을 환기한다. 국립부산승학산치유의숲 우병건 센터장은 “가까운 공원에서도 산림치유의 일부를 경험할 수 있으며, 짧은 산책만으로도 치유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 산림치유 참여하고 싶다면
가까운 치유의 숲을 찾아 일상에 지친 마음을 달랠 수 있다.
부울경에는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치유의 숲이 제법 있다. 국립 2곳(국립부산승학산치유의숲, 국립대운산치유의숲)과 공립 8곳(부산치유의숲, 하동치유의숲, 오도산치유의숲, 창원편백치유의숲, 대봉산치유의숲, 거창치유의숲, 산청치유의숲, 거제치유의숲)이 위치해 있다.
특히 국립부산승학산치유의숲은 지하철과 버스로 접근 가능한 도심형 숲이어서 직장인이나 가족 단위 시민들이 언제든 손쉽게 찾아갈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4인 이상 단체의 경우 산림치유지도사와 함께 숲길 걷기는 물론 명상, 다도, 싱잉볼, 온열장비 체험 등 맞춤형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사전예약제로만 운영되는 다른 치유의 숲과 달리 현장에서 키오스크를 통해서 예약 가능하다.
부산대 학술림을 기반으로 2017년 조성된 부산치유의숲에선 ‘쉬어보입시the 숲’과 ‘들어보입시the 숲(싱잉볼 명상)’ 등이 운영 중이다. 기장군치매안심센터와 연계해 어르신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지역사회 복지와 연계된 점이 특징이다. 프로그램은 사전예약으로만 진행되지만 힐링로드 등 숲 산책은 내방객이면 누구나 가능하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