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골 하나만으로도 역사를 쓰지만, 이제는 그라운드 밖의 문화까지 지배하고 있다.” 손흥민 이야기다. 그가 새 유니폼을 입자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마저 달라졌다. 리그는 이제 손흥민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정도다. 그의 움직임에서 팬들은 새로운 스포츠 문화를 목격한다. 한때는 아시아 선수라는 이유만으로 폄하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가 골을 넣고, 손을 흔들고, 팬들과 눈을 맞추는 순간, 누군가는 그 안에서 새로운 축구 문화를 발견한다. 그의 존재는 MLS를 흔들고 미국 축구 문화를 바꾸며, 나아가 세계 축구 생태계의 지형을 다시 그려가고 있다. 처음 그의 MLS 진출 소식이 들려왔을 때, 세간에는 “왜?” 혹은 “이젠 내리막 아닌가”라는 의문이 뒤따랐다. 하지만 그 물음표는 곧 느낌표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관세 압박 등 미국발 불확실성으로 국민의 일상이 무거워진 시점에 그의 활약은 훈풍처럼 다가오고 있다.
이적 후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MLS 전체의 판도를 흔들며 축구 문화의 심층까지 건드리고 있는 손흥민. 어쩌면 그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일지 모른다. “그래도 MLS 아닌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미국은 2026 월드컵 개최지이자 여전히 세계 문화의 중심이다. 그 한복판에서 손흥민이라는 ‘게임 체인저’의 돌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그라운드 활약 경이롭다
“잘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일 줄은 몰랐다.” MLS 이적 이후 단 8경기 만에 8골 3도움. 손흥민이 남긴 기록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단순히 골을 넣는 스트라이커를 넘어 팀 전체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존재임을 입증한 셈이다. LAFC 체룬돌로 감독은 “손흥민의 움직임, 공간 창출, 동료 지원은 최고 수준”이라며 찬사를 보낼 정도다. 팀 동료 데니스 부앙가와의 공격 호흡은 리그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의 연계 플레이는 ‘흥부 듀오’라는 별칭까지 얻으며, 한 시즌 17골을 합작해 LAFC의 공격 축을 굳건히 세우고 있다. 이는 개인 기량 의존도가 높던 MLS 팀들에게 월드클래스 선수가 어떻게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고, 동료들의 잠재력까지 끌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만하다. MLS 역사 속 위대한 듀오들이 있었지만, 손흥민과 부앙가가 최근 6경기에서 보여준 폭발력에 견줄 만한 존재는 없었다. MLS 사무국이 지난 1일(한국시간) 발표한 최신 파워랭킹에서, 서부 콘퍼런스 4위에 불과한 LAFC가 전체 2위에 올랐다. 극적인 상승세의 중심에는 다름 아닌 ‘흥부 듀오’가 있었다. 남은 4경기 결과에 따라 서부 정상 등극도 충분히 노려볼 만한 상황이다. 부앙가는 “손이 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한다.
이제 손흥민은 단순한 공격수가 아니라 팀 전술의 핵심 축이자 흐름을 바꾸는 동력이 되었다. 그의 움직임은 동료들을 살리고 팀 플레이에 깊이를 더한다. 마치 거대한 퍼즐의 마지막 조각처럼 그의 합류는 LAFC를 완성시키고 MLS라는 리그 전체의 전술과 기술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손흥민은 그라운드 위에서 승리 그 이상의 가치를 선물하며, 살아 있는 레전드로서의 품격을 증명하고 있다.
물론 과제도 남아 있다. 향후 MLS 수비진은 빠르게 손흥민을 겨냥한 전술을 준비할 것이고, 전담 마크나 집중 견제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시즌 강도와 체력 관리, 심리적 피로 등 변수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손흥민의 자기 관리 능력과 구단의 세심한 운영이 뒷받침된다면, 그의 활약은 결코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LAFC는 추석 연휴가 한창인 오는 6일 오전 10시(한국시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BMO 스타디움에서 애틀랜타 유나이티드와 맞붙는다. 손흥민의 활약은 여전히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MLS 변화를 견인하다
손흥민의 MLS 합류는 경기장 밖 시장에도 거대한 파급을 일으켰다. 이적 직후부터 티켓 판매, 스폰서 문의, 미디어 노출, 온라인 조회 수 등 모든 지표가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유니폼 판매다. 입단 일주일 만에 전 세계 스포츠 종목을 통틀어 판매 1위를 기록했고, 온라인 매장은 매진 사태로 배송 안내문을 따로 띄워야 했다. 미국 현지 언론은 ‘리오넬 메시가 2023년 7월 인터 마이애미에 입단한 뒤 한 달간 유니폼 50만 장이 팔렸는데, 손흥민의 유니폼은 그보다 세 배 더 팔렸다’고 전했다.
홈 경기 티켓 역시 품귀 현상을 빚었다. 샌디에이고FC전은 새로 마련한 입석까지 매진됐고, 재판매 가격은 최저 172달러(약 24만 원)에 달했다. 이는 LA의 또 다른 축구팀 LA 갤럭시의 리그스컵 준결승 주중 경기 티켓 재판매 최저가가 34달러(약 5만 원)인 것과 비교된다. 심지어 LA 코리아타운에는 손흥민을 주인공으로 한 대형 벽화가 등장했고, 새너제이 어스퀘이크스전은 ‘손흥민 효과’ 덕분에 구단 홈경기 최다 관중 기록까지 갈아치웠다.
디지털 반응도 폭발적이다. SNS 팔로워가 수십만 명 단위로 늘었고, 구단 콘텐츠 조회 수는 339억 회, 언론 보도량은 289% 증가했다. 구글 트렌드 검색 지수도 단숨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그의 세리머니나 팬 서비스는 짧은 영상으로 재가공되며 새로운 서사를 만들고 있다.
이쯤 되면 LAFC가 아니라 ‘SON FC’라 불러도 무리가 없다. 손흥민은 단순한 스타를 넘어 문화적 현상이 되어 구단과 리그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셈이다.
■SON, 인성까지 극찬받다
손흥민의 존재감은 경기장 안팎을 가리지 않는다. 그의 가치는 숫자가 아닌 태도와 진정성에서 더 빛난다. 미국 LA타임스는 “손흥민은 골 이상의 것을 보여주며, 훌륭한 인간으로도 존경받고 있다”고 전했다. 긍정적인 태도와 친화력은 팀 문화를 바꾸고, 동료와 코치진까지 그를 ‘놀라운 사람’이라 부르게 했다.
특히 EPL(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시절부터 유명했던 팬 서비스는 미국에서도 큰 화제다. 훈련장 밖에는 그를 보기 위해 수많은 팬이 몰리고, 손흥민은 사인과 사진을 기꺼이 함께한다. 골닷컴은 “MLS 슈퍼스타 대부분은 팬과 거리를 두지만, 손흥민은 다르다”고 평가했다. 포브스는 그를 메시와 비교하며 “내성적인 메시와 달리 손흥민은 팬과 소통하며 팀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전할 정도다. 또 손흥민이 MLS에서 입지를 더 넓히면 앞으로 더 많은 유망 아시아 선수들이 이 리그를 주목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했다.
그의 팬 서비스는 가볍지 않은 진정성으로 이어진다. 작은 손짓, 환한 웃음, 팬을 향한 시선 하나가 모두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는 쌓여 ‘문화’가 된다. 글로벌 매체들은 손흥민을 두고 “그는 골만 넣는 스타가 아니다. 그가 도착한 도시에는 문화가 생긴다”고 평한다.
이제 손흥민은 축구 선수를 넘어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다. K 컬처라는 이름 아래 BTS(방탄소년단)가 무대에서 시대를 뒤흔들었다면, 손흥민은 축구장에서 또 다른 문법을 써 내려가고 있는 셈이다. 그의 몸짓 하나, 눈빛 하나가 새로운 스포츠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축구 문법’ 다시 쓰다
손흥민의 진짜 영향력은 ‘확산성’에 있다. 그의 행동 하나가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고 팬들에게 감동을 주며, 더 많은 사람을 축구장으로 이끈다. 축구가 단순한 90분 경기가 아니라 삶의 일부가 되는 것, 이것이 손흥민이 바꿔가고 있는 ‘축구의 문법’이다.
한국 축구 스타들이 세계 무대에서 빛난 적은 제법 있었다.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산소탱크’로 불리며 헌신의 가치를 보여줬다면, 차범근은 분데스리가에서 한국인의 저력을 알렸다. 그러나 손흥민은 그 이상의 문화적 파급력을 만들어낸다. 그의 플레이는 물론이고 웃음과 제스처, 팬들에게 보내는 눈빛 하나까지 ‘손흥민식’이라 불리며 밈(meme)으로 확산되고, SNS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 이쯤 되면 그는 단순한 축구 선수가 아니라 ‘상징적 아이콘’에 가깝다.
그의 영향력은 경기장 안팎을 동시에 관통한다. 경기장 안에서는 여전히 결정적인 존재로, 경기장 밖에서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문화 행위자로 자리 잡았다. 선수의 궤적을 넘어, 세계인이 공유하는 축구 문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는 것이다.
MLS에서의 활약은 미국 스포츠 지형에도 변화를 일으킨다. 야구·농구·미식축구가 지배하던 나라에서 축구를 ‘힙한 스포츠’로 인식하는 흐름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아시아계 이민자들에게는 자부심의 아이콘으로, 현지 팬들에게는 새로운 스타로 다가서며 문화적 접점을 만들어낸다.
손흥민은 이제 ‘잘 뛰는 선수’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한국과 아시아를 대표하는 얼굴이자, 글로벌 스포츠 문화의 문법을 다시 쓰는 상징이다. BTS가 음악을 바꿨듯, 손흥민은 축구 문화를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다. 그의 질주는 K 컬처의 다음 장(章)을 여는 선언이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