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늙고 혼자여도 괜찮은 동네

입력 : 2025-10-23 16:3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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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고 싶은 동네/유여원·추혜인

알고 지내던 여성학자가 “서울시 은평구는 나이 든 사람들이 살기 좋은 동네”라고 말했다. 뜬금없는 이 말에 “은평구가 노인에게 주는 수당이라도 있나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거긴 살림이 있거든”이라고 답한다. 여기서 말하는 살림은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줄여서 부르는 단어이다.

이 책의 두 저자가 바로 살림을 시작했다. 비혼 여성주의자인 두 사람은 부모를 비롯해 원가족으로부터 독립은 했지만 당장 몸이 아플 때 돌봐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혈연가족 중심으로 돌봄이 구성되어 있다는 현실을 맞닥뜨린 이들은 새로운 돌봄의 관계와 문법을 모색한다. 20대 후반 여성주의 활동가와 30대 초반 여성주의 의료를 꿈꾸는 의사는 ‘여성주의 의료협동조합 살림’을 만들게 된다.

2012년 창립한 살림은 어느새 조합원 수 5000명을 넘기며 서울시 은평구에 자리 잡았다. 조합원의 출자금으로 살림의원, 살림치과, 살림한의원을 세웠고, 정직하고 믿을 수 있는 의료서비스를 받고 있다. 조합원들은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손을 뻗어줄 사람들이 되었고, 뜨개질 등산 달리기 풋볼 등 다양한 소모임을 꾸려 함께 하는 재미를 느끼며 산다.

살림의 의료진은 환자가 거동하기 힘들면, 직접 환자의 거처를 방문해 치료한다. 한글을 읽지 못하는 당뇨 환자에게 한글을 가르쳐 환자 맞춤형 식단표를 읽을 수 있도록 돕는다. 노쇠해져 집에만 머무는 어르신을 주기적으로 찾아가 함께 간단한 운동을 한다. 개개인의 선의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으로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살림의 활동은 놀랍고 신기하다.

나이 듦과 취약함, 혼자 됨을 긍정하며 살아가기 위한 대안이 담긴 책이다. 유여원·추혜인 지음/반비/384쪽/2만 원.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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