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화의 크로노토프] '그림자 노동자'를 위한 생명권

입력 : 2025-10-23 18: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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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음악 칼럼니스트

공연장 사고로 목숨 잃는 예술인들
프리랜서 안전 규정 마련 서둘러야
산업안전보건법 예외 없는 적용을

바야흐로 예술의 계절이다. 국정감사의 계절이기도 하다. ‘감사’란 감독하고 조사하는 일, 국가 전반의 잘못을 돌아보고 고치겠다는 반성의 시간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안전’이 핵심 의제로 다뤄지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의지를 밝히면서 정부 각 기관은 물론 기업들까지 발 벗고 나섰다. 하지만 그 논의의 지도에는 아직도 비어 있는 곳이 있다. 바로 공연예술계다. 무대 위의 사고는 계속되는데, 무대 아래의 제도는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 화려한 조명 뒤편에는 수많은 예술노동자가 낡은 규정 속에서 오늘도 위태롭게 일하고 있다.

지난 8월, 한 공공 공연장에서 무용수 두 명이 리허설 중 무대 앞 오케스트라 피트 아래로 추락했다. 그중 한 명은 뇌출혈과 장기 손상으로 네 차례나 수술을 받았다. 2023년 3월에는 수도권 대형 공연장에서 오페라 리허설 중 400킬로그램이 넘는 무대장치가 성악가를 덮쳤다. 척수신경을 다쳐 사지가 마비된 채 투병을 이어가던 그는,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지난 21일 유명을 달리했다. 2018년에는 지방의 한 문화예술회관에서 무대 리프트가 추락해, 스물세 살의 젊은 예술인이 목숨을 잃었다. 시기와 장소는 달랐지만, 본질은 같았다. 안전을 비용으로만 여기고, 무대 뒤의 노동과 위험을 ‘외주화’한 구조적 현실 때문이다.

기계가 작동되는 무대 위는 위험한 작업 현장과 다르지 않다. 여기서 일어나는 사고는 단순한 부주의가 아니라 익숙함이 만든 무감각의 결과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무용계의 문제를 파악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일은 특정 장르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공연 장르 현장에서 유사한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무대 뒤의 안전은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이다.

우리가 참고할 만한 사례는 분명히 있다. 영국은 공연장에서 일어난 사고에도 ‘기업 과실치사법’을 적용한다. 조직적 과실에 대해 법인 자체의 형사 책임을 묻는 제도로, 안전을 ‘관리’가 아닌 ‘책임’의 영역으로 규정한다. 독일은 ‘모범 집회장소 규정’을 통해 공연장 안전을 관리한다. 조명 설치부터 비상구 문 너비까지 ‘산업표준’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무대 장비의 안전성까지 꼼꼼히 규정한다. 공연장은 예술의 공간인 동시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철학이 깔려있다.

반면 우리의 현실은 다르다. 예술 현장의 위험을 예술노동자의 운으로 감당하게 한다. 예술 활동을 여전히 개인의 열정에 따른 비경제적 행위로 여기며, 현장 안전을 예산의 여백쯤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 제도를 그대로 옮겨오자는 뜻은 아니다. 우리 실정에 맞게 공연장 시설은 물론, 사각지대에 방치된 예술노동자를 보호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안전 규정이 마련되어야 한다. 공연 계약서에 명시된 보험 가입 의무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을 열악한 환경에 놓인 모든 노동자에게 예외 없이 적용해야 한다. 나아가 제도 밖 현장에 대한 실질적 보완과 지원, 그리고 발주처의 책임 또한 마땅히 중대재해처벌법에 포함되어야 한다.

현재 프리랜서 예술인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의무가입 대상이 아니다. 2022년 기준 예술인 산재보험 신청률은 7.3%에 그쳤다. 저임금 구조 속에서 스스로 보험료마저 감당하기 어려운 탓이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전국 공연장에서 신고된 산재는 모두 48건이었다. 그러나 산재보험 미가입자가 많아 통계에조차 제대로 포함되지 않는다. 2018년 사망사고를 계기로 2022년에 공연법이 일부 개정되었지만, 이는 사고 발생 후 ‘보고 의무’를 강화한 수준에 머물렀다. 법의 취지와 현장의 거리가 이렇게 먼 나라에서, K콘텐츠 산업이 과연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을까.

무대 안전은 규제의 영역이 아니라, 이 나라에 사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비정규직이거나 프리랜서 예술인도 우리나라 사람이다. 공연장은 문화시설이자 공공자산이지만, 관리 주체는 부처마다 다르고 감독 권한도 모호하다. 각 기관이 책임을 나누는 사이, 정작 현장 예술가의 목소리는 그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보고서마다 반복되는 행정 언어는 ‘말씀 구체화 방안’이다. 대통령의 한마디가 곧 정책이 되고, 장관의 의지가 곧 법이 된다. 그러나 말씀은 구체화되지만, 책임은 구체화되지 않는다.

몸을 지탱하는 힘은 겉으로 드러나는 근육에서 나오지 않는다. 뼈대가 약하면 작은 충격에도 쉽게 무너진다. 예술 현장의 감동 또한 다르지 않다. 안전이라는 견고한 토대 위에서만 온전히 꽃피울 수 있다. 박수는 공연이 끝난 뒤에 울리지만, 안전은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울려야 하는 리듬이다.

금정산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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