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1년 늦추면 고령 정규직 5만 명 은퇴 미뤄질 듯…“단계·탄력 접근 필요”

입력 : 2025-11-09 10:2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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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노동계, '65세 정년' 입법 급물살
성장잠재력 하락·노인층 빈곤 해소 차원
“청년 취업납 심화·충분한 논의 없어” 우려
“점진적 추진, 청년 고용대책 마련 필요”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 5일 국회에서 진보당 윤종오 의원과 한국노총, 민주노총이 주최한 ‘65세 법정 정년 연장 입법 연내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 5일 국회에서 진보당 윤종오 의원과 한국노총, 민주노총이 주최한 ‘65세 법정 정년 연장 입법 연내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데이터처 제공 국가데이터처 제공

정부 여당과 노동계가 연내 정년 연장 입법 드라이브를 걸고 나선 가운데, 정년이 1년 연장되면 정규직 고령자 약 5만 명의 은퇴가 유예될 것으로 추산된다. 저출생 고령화 심화 속에 정년 연장을 추진하면서 청년 일자리 감소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9일 기획재정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최근 이재명 정부는 정년 연장을 국정과제로 선정했고, 더불어민주당과 노동계의 주도로 만 65세 연장 입법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최근 정년 연장 논의에 불이 붙은 배경에는 법정 정년과 공적연금 수급 시점 사이의 '소득 공백'이 자리하고 있다. 은퇴 후 3∼5년간 근로소득 없이 지내는 인구가 많아지면서 정부 차원의 소득 보전책 마련이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 우리나라 인구의 약 18.6%(954만 명)를 차지하는 2차 베이비붐 세대(1964∼1973년생)가 지난해부터 은퇴 연령에 들어서면서 이 문제가 더 부각됐다. 저출생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도 한 요인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년연장특별위원회 제1차 본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년연장특별위원회 제1차 본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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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마이크로데이터를 통해 한국 상용근로자의 연령별 분포를 세부 분석한 결과, 59세에서 60세로 넘어가는 시점에 고용자 수가 급격히 감소하는 양상이었다.

상용근로자는 1년 이상 계속 일할 것으로 예상되는 취업자다. 임금근로자 가운데 가장 안정적인 형태로, 통상 정규직으로 불린다.

1964년생 상용근로자는 59세 때인 2023년엔 29만 1000명이었는데 60세인 작년에는 23만 7000명으로 5만 5000명 감소했다. 1960∼1964년생이 59세에서 60세로 넘어가는 시점에 상용근로자는 평균 5만 6000명 줄었고 감소율은 20.1%였다. 이는 상용근로자가 법정 정년인 60세에 대거 정년퇴직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대기업인 대규모 사업장(종업원 300인 이상) 상용직에서는 법정 정년퇴직의 영향이 더욱 커졌다.

대기업 상용직인 1964년생은 2023년(59세) 4만 5000명이었는데 작년(60세)엔 2만 5000명으로 44.5% 급감하며 거의 반토막이 됐다. 1960∼1964년생이 59세에서 60세로 넘어가는 시점의 평균 감소는 1만 7000명으로, 43.3% 줄었다.

정년을 60세에서 높이면 고령 상용근로자는 자연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정년을 61세로 1세 연장하면 59∼60세 구간에서 나타난 감소가 60∼61세 구간으로 1년 유예되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이 최대 5만 6000명에 달하는 고령 상용근로자를 1년 더 고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고령 상용직 인건비 부담 확대와 신규 채용 여력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이 지난 4월 발표한 '초고령사회와 고령층 계속근로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만 60세 정년 연장에 따라 고령 근로자 1명이 늘어날 때 청년 근로자는 1명(0.4∼1.5명)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를 정년 1년 연장 시나리오에 단순 대입하면 연 약 5만 개의 안정된 청년 일자리 공급이 사라질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6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5 서울시 일자리 박람회’ 채용게시판 앞이 구직자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5 서울시 일자리 박람회’ 채용게시판 앞이 구직자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청년층(15∼29세) 취업자는 2021년(11만 5000명)·2022년(11만 9000명) 증가했다가 이후엔 2023년 9만 8000명 감소한 데 이어 2024년엔 14만 4000명이 감소했다. 20대 전체 일자리 중 새 일자리 비중도 1분기(1~3월) 기준으로 2022년부터 올해까지 51.4%→50.6%→48.0%→46.9%로 감소하는 등 일자리 공급이 줄고 있다.

정년 연장과 관련, 초고령사회에서 나타날 수 있는 성장 잠재력 하락과 노인층 빈곤 등을 해소하기 위해 고령층이 더 오래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는 노동시장을 구축해야 한다는 데 큰 이견은 없는 분위기다.

다만, 전문가들은 획일적인 정년 연장보다는 단계적이고 탄력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60세 정년 의무화 당시와 같은 충격은 줄이고 고령층 노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점진적 정년 연장과 함께 기업의 고용 부담을 덜기 위한 재고용제도 도입, 연공서열형 임금체계 완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한요셉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이미 청년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상황에 정년 연장 충격까지 더해지면 청년 고용 관련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며 "정년연장을 하더라도 기업들이 충분히 준비할 시간이 있어야 하고, 근본적으로는 임금체계 개편 등도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여러 부작용이 예상되는 정년 연장보다는 재고용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정년을 연장하더라도 근로 시간 등은 조정할 수 있도록 해서 기업의 신규 채용 여력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부터 '65세까지 고용 의무화' 조치가 사실상 전면 시행되는 일본도 참고 사례로 꼽힌다. 일본은 12년에 걸쳐 연령 기준을 단계적으로 높이며 65세 고용 의무화를 추진해서 연착륙을 시도했다. 또, 정년 폐지·정년 연장·계속 고용제도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해 기업 부담을 줄였다.

송현수 기자 song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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