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수용 거절로 여러 병원을 떠도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응급환자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이른바 ‘동희법’이 시행에 들어간 지 3년이 지났지만 현장은 제자리다. 부지불식간에 나 또는 가족, 지인의 일이 될 수 있는 이 같은 비극은 되레 늘어나는 실정이다.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119 구급대 재이송 건수는 2023년 4227건에서 지난해 5657건으로 1430건이나 증가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의료 현장에선 병원과 의료진에 지워진 민·형사 책임을 응급실 뺑뺑이의 주된 원인으로 꼽는다. 응급실 당직을 맡았던 외과 교수가 해당 진료과 전문의가 아니라는 이유로 소송을 당하고 병원과 함께 배상 책임을 져야 했던 2023년 판결 이후 의사들이 움츠러들게 됐다는 것이다. 배후진료 붕괴도 주된 원인 중 하나다. 응급실 내원 환자에게 여러 진료과의 전문적인 치료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의정갈등 이후 배후진료 붕괴가 가속화했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논쟁도 더해졌다. 최근 119 구급대에 이송 병원 지정 권한을 주자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두고 의료계가 2012년 1339 응급의료정보센터가 119로 흡수 통합된 것이 문제의 시발점이라고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1339는 공중보건의가 응급환자를 경증·중증으로 분류하고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이송할 병원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수행했는데, 1339를 통해 경증으로 분류됐던 환자들이 응급실로 향하면서 119는 환자 수송 업무가 늘고, 응급실은 경증 환자까지 도맡게 돼 과밀화됐다는 지적이다.
해결 방법은 없을까. 유사한 비극을 겪은 일본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일본은 ‘도쿄 룰’이라는 대응 시스템을 구축해 지자체와 지역 소방, 지역 병원이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지자체의 경제적 지원과 보험수가 인상을 통해 3차 기관들이 응급실 운영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했다. 영국 국가의료서비스(NHS)의 대대적인 시스템 개편도 참고할 만하다. 병상 확충과 전담기금 투입은 물론 모든 주요 응급실에 컨설턴트와 간호사를 배치해 입원 없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했다. 비교적 덜 위급한 부상을 입은 환자들이 2시간 내에 가정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긴급 지역 대응팀을 꾸려 구급차 수요를 분산시킨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
이처럼 다단계 안전망을 구축하는 동시에 상급종합병원은 중증 응급환자에 집중하고, 경증 환자는 지역 내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 전달체계 재편이 시급하다. 중복 등을 이유로 119에 통합된 1339를 되살리기 어렵다면 119구급대와 구급상황센터의 의료 전문성을 대폭 보완·강화해야 한다. 배후진료 체계 정상화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전공의 복귀와 함께 응급 상황에서의 협진 체계를 명확히 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체계를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
골든타임을 놓쳐 스러지는 생명들 앞에서 정치적 공방과 책임 떠넘기기는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의학적 판단 능력을 갖춘 조정 시스템 재구축에 집중하는 것이다. 일본의 도쿄 룰도, 영국의 NHS 개혁도 결국 전문성과 협력에 기반한 ‘시스템 개선’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해결 의지와 실행이 중요하다. 응급실에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의료진들이 제대로 된 시스템 아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움직이는 것, 이에 시민들이 공감하고 의지하는 것. 그것이 국가의 책임이자 우리 모두의 과제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