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5만 원권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현금 없는 사회’를 실천 중인 우리나라에서 현금 사용액은 감소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개인과 기업들의 ‘비상금’ 등으로 보유한 현금은 금리 하락과 경제 불확실성 탓에 곳간에서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가계·기업 모두 허리띠 졸라맸다
28일 한국은행이 공개한 ‘2025년 경제주체별 화폐 사용 현황 종합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계의 월평균 현금 사용액은 2021년 50만 6000원에서 올해 32만 4000원으로 18만 2000원(36%)감소했다.
월평균 지출액 대비 현금지출 비중은 17.4%로 2021년(21.6%) 대비 4.2%포인트(P) 하락했다. 특히 50만 원 미만을 지출하는 비중은 80.1%를 차지했다. 세대별로는 현금을 쓰는 비중이 60대 이상(20.8%), 70대 이상은 32.4%였다. 월 가구 소득 100만 원 미만 저소득층의 현금지출 비중은 59.4%로 가장 높았다.
기업의 현금지출 규모는 월평균 2021년 911만 7000원에서 올해 112만 7000원으로 799만 원 큰 폭 감소했다. 전체 지출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1.9%로 미미한 수준을 보였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의 현금지출 규모가 220만 원으로 2021년(470만 원)보다 250만 원 줄었다. 종사자별로는 10인 이상 50인 미만 기업이 80만 원으로 2021년(1920만 원)보다 1840만 원의 지출을 아꼈다.
■경제 불확실성에 현금 비중 확대
현금 사용은 줄었지만, 개인이 들고 다니는 금액은 오히려 늘었다. 개인이 상품 구매 등 일상 거래를 위해 소지한 거래용 현금의 1인당 평균 보유액은 2021년 8만 2000원에서 올해 10만 3000원으로 2만 1000원(25.6%) 증가했다. 연령대별로는 60대(12만 2000원)의 거래용 현금 보유액이 가장 많았다. 업무 종사상 지위별로는 고용원이 있는 고용 자영업자(17만 6000원)와 단독 자영업자(15만 7000원)가 가진 현금이 많았다.
일상 거래가 아닌 예비용으로 가진 현금 보유액도 불어났다. 개인의 예비용 현금 1인당 평균 보유액은 올해 54만 1000원으로 2021년(35만 4000원)보다 18만 7000원(52.8%) 증가했다. 이는 2015년 69만 3000원에서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으나, 2018년(54만 3000원) 수준으로 다시 늘어난 셈이다. 거래용 현금과 마찬가지로 70대 이상(59만 9000원)과 자영업자(단독 66만 3000원·고용 65만 3000원)의 금액이 가장 컸다.
보고서에 따르면 ‘예금 금리 상승 시 보유 현금을 줄이겠다’(42.9%), ‘경제 불확실성 확대 시 보유 현금을 늘리겠다’(42.8%)는 응답자의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는 점에서 향후 금리 변화와 경제 불확실성이 개인의 현금 수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한은 측 분석이다.
■“경영 환경 비상시 대비용”
기업의 현금 보유 규모도 증가했다. 기업의 현금 보유액은 977만 8000원으로 2021년(469만5000원) 대비 508만 3000원(108.3%)의 규모를 늘렸다. 특히 1000만 원 이상 보유한 기업의 비중은 12.8%로 2021년(6.4%) 대비 2배 수준으로 상승했다.
한은 측은 설문 결과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 확대에 따라 비상시에 대비한 유동자산을 늘리기 위해’(36.3%)를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했다. ‘매출 증가에 따른 현금 취득 금액 증가’(30.2%)와 ‘현금거래를 통한 익명성 보장’(17.8%) 등도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다만 ‘향후 예금 금리 상승 시 보유 현금을 줄이지 않겠다는 기업’(29.1%)이 ‘줄이겠다는 기업’(25.4%)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은 상대적으로 개인보다 현금 보유와 관련해 금리에 개의치 않은 반응이다.
■개인·기업 ‘현금 없는 사회’ 반대
이번 설문 조사에서 개인은 현금 없는 사회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45.8%)이 찬성하는 의견(17.7%)을 압도했다. 현금 없는 사회가 실현 시 ‘금융 약자의 거래 불편’(39.1%)과 ‘비상시 경제활동 곤란’(22.2%) 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기업들도 현금 없는 사회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29%)이 찬성하는 의견(16.3%)을 앞질렀다. 반대 사유 역시 ‘금융 약자의 거래 불편’(53.9%)과 ‘비상시 경제활동 곤란’(15.9%) 지적했다.
한편, 한은 화폐 사용 현황 종합 조사는 기존 3년 주기로 하던 ‘현금 사용 행태 조사’와 ‘화폐사용 만족도 조사’를 통합해 올해 처음 발표한 보고서다. 조사 대상이 가구주인 개인에서 올해는 개인으로 바뀌었다.
이정훈 기자 leejnghu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