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사퇴 의사를 밝히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각종 비위 의혹이 불거진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의 전격 사퇴 배경에는 3년 전 ‘공천 거래 묵인 의혹’이 결정타가 된 것으로 보인다. 특혜 논란과 보좌진 갑질 등에서 시작한 의혹이 개인적 리스크를 넘어 집권 여당의 개혁 동력에 영향을 주는 사안으로 번지자 정치적 부담이 임계점을 넘은 것으로 풀이된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죄드린다”며 “연일 계속되는 의혹 제기의 한복판에 서있는 한 내가 민주당과 이재명 정부의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강선우 의원과의 대화가 담긴 녹음 파일 보도가 나온 지 하루 만이다.
김 전 원내대표를 둘러싼 의혹은 본인과 가족을 축으로 다층적으로 제기돼 왔다. 본인은 물론 가족을 둘러싼 의혹이 잇달아 제기됐지만 김 원내대표는 “낮은 자세로 성찰하면서 일하겠다”며 사퇴에는 선을 그어왔다. 여론 향방을 살펴보겠다는 기류가 전격 사퇴로 기울어진 것은 당의 개혁 입법과 지방선거 주도권에 직결되는 내용의 의혹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전날 한 언론 보도에서는 3년 전 당시 서울시당 공천관리위원장 간사였던 김 원내대표와 강선우 의원 간 금품 수수에 따른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내용의 녹취록이 공개됐다. 김 원내대표는 “1억 (원) 이렇게 돈을 받은 걸 사무국장이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 아니냐. 일반인들이 이해하긴 쉽지 않은 얘기들”이라고 말했다. 이에 강 의원은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의원님 저 좀 살려주세요”라며 읍소했다. 당시 강 의원은 서울시당 공관위원이었다.
해당 대화를 나눈 다음 날, 민주당은 시의원 공천을 신청하며 1억 원을 전달한 김경 후보를 서울 강서구 서울시의원 후보로 단수 공천했다. 김 원내대표가 강 의원 측의 금품 수수 정황을 알면서도 김 시의원은 단수 공천을 받은 것이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금품 수수 정황을 인지하고도 적절한 조치 없이 사실상 묵인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강 의원은 보도 직후 “공천을 약속하고 돈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고 해명했지만 경찰에서 강 의원과 김 원내대표를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당 안팎에서도 결단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 초기 사퇴에는 선을 긋던 당 내부도 부담이 누적되자 정청래 대표가 직접 “매우 심각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입장을 밝히는 등 사퇴론에 힘이 실리고 있었던 상황에서, 결정적 사건이 터졌다는 분석이다.
민주당은 특검 추진과 각종 개혁 입법 처리 등 강행 드라이브가 예고되어 있다. 지방선거 6개월 전 여야 대치가 격화되는 가운데 터진 원내사령탑의 개인 비위 의혹이 국정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김 원내대표를 사퇴를 고리로 공세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이날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이번 사퇴는 끝이 아니라 책임의 시작이어야 한다”며 “김 전 원내대표는 의원직에서 즉각 사퇴하고, 제기된 모든 의혹에 대해 성실히 수사에 임해야 한다”고 몰아 붙였다.
한편 이날 민주당 최고위원회는 공천헌금 수수 의혹을 받는 강 의원에 대한 윤리감찰단 조사를 결정했다. 강 의원은 2022년 지방선거에서 자신의 지역구에서 시의원 출마를 준비하던 김경 서울시의원으로부터 1억 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강 의원은 즉시 반환을 지시했다며 “공천을 약속하고 돈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김 원내대표의 사퇴로 민주당에게 불리한 국면이 마무리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내 각종 의혹 제기에 이어 원내사령탑 사퇴로 결정타가 이어지면서 여권의 부담이 지속적으로 누적되는 모양새다. 악재가 연쇄적으로 불거지면서 지방선거 전 개혁을 마무리하고 내년 초부터 지방선거 대비로 본격 전열을 정비하려던 계획이 틀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