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대표가 3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쿠팡 침해사고 및 개인정보 유출, 불공정 거래, 노동환경 실태 파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서 위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국회에서 이틀째 연석 청문회가 열렸다. 청문위원들은 전날에 이어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대표의 답변 태도를 강하게 질타했고, 위증죄 고발과 국정조사 추진 등 후속 조치에도 나섰다. 쿠팡 측이 진상 규명보다는 책임을 부인하는 취지의 답변을 반복하면서, 쿠팡을 향한 국민적 불신과 분노가 더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청문회에서는 전날 로저스 대표가 질의 과정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책상을 두드리는 등 격앙된 태도를 보인 점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 정일영 의원은 “(전날) 제가 질의할 때 (로저스 대표가) 큰소리로 흥분해 책상까지 쳤다”며 “너무나 황당하다. 안하무인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범석 의장이 나오지 않아 할 수 없이 로저스 대표를 상대로 하고 있는데 그런 식으로 답변하고 한국 국회, 정부, 국민을 무시할 것이라면 한국에서 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당 김영배 의원은 로저스 대표가 정일영 의원에게 “그만합시다”(Enough)라고 말한 점을 언급하며 “증인으로서 해선 안 될 말이라고 생각한다. 싸우자는 태도로 일관했기에 반드시 사과 받고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날 청문회에서 로저스 대표는 질의를 하던 정 의원이 “됐다. 그만하라”며 답변을 끊자 “Enough”라고 맞받았다.
전날에 이어 이날 청문회에서도 청문위원들의 질타가 이어지자 로저스 대표는 불쾌감을 드러냈다. ‘동문서답식 답변’을 이유로 위원들과 위원장의 제지가 반복되자 그는 “그러면 왜 저를 증인으로 채택하셨느냐. 답변할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반발했다.
또 로저스 대표는 회사 측이 발표한 개인정보 유출 사태 조사 결과와 관련해 “자체 조사가 아니고, 정부(국정원)의 지시에 따라 진행한 조사”라고 강조했다. 전날 국정원이 ‘쿠팡 측에 어떠한 지시를 한 바 없다’며 국회에 위증죄 고발을 요청했음에도 같은 취지의 답변을 반복한 것이다.
로저스 대표는 이를 “민간기업과 정부기관의 성공적인 협력 사례”라고 주장하며 “쿠팡과 한국 정부의 공동 노력의 성과에 대해 왜 한국 국민에게 알리지 않나”라는 발언을 반복했다. 이에 최민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간 크게 대한민국 국정원을 끌어들여서 진실게임을 하는 로저스씨와는 도저히 소통이 안 된다”며 조사 관련 질의를 이재걸 쿠팡 법무담당 부사장을 상대로 진행했다.
로저스 대표가 같은 취지의 답변을 거듭하자, 청문위원들은 위증 혐의 고발과 국정조사 추진 필요성을 잇따라 언급했다. 민주당 황정아 의원은 “범 킴(김범석 의장 영어 이름)을 지키고 미국만 신경 쓰겠다는 저 오만방자한 외국인을 즉시 위증 혐의로 고발해야 한다. 대한민국 공권력을 능멸한 책임도 물어야 한다”며 국회 모욕 혐의 추가를 주장했다. 같은 당 오기형 의원은 “(쿠팡이) 오늘 (청문회가) 끝나면 더는 논쟁이 안 될 것이라 착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며 “국정조사 등을 통해 후속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로저스 대표는 지난 2021년 사망한 물류센터 노동자의 산업재해 인정에 불복해 진행 중인 행정소송을 취하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도 선을 그었다. 그는 “사업장 내 사고에 대한 법적 요건이 있는 것으로 안다. 저희는 기업으로서 법적 절차를 이용할 권리가 있다”며 취하 의사가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처럼 쿠팡이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정부와 국회의 압박 수위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등은 쿠팡에 대한 고강도 대응을 예고했다. 민주당은 이날 국회 의안과에 ‘쿠팡의 불법적 기업 행위 전반에 대한 국정조사 요구’ 계획서를 제출했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