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장중 5200선을 돌파한 가운데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코스닥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5000선을 돌파하며 ‘오천피’ 시대를 열었다.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지수만 놓고 보면 한국 증시는 유례없는 강세장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수 상승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시장 내부의 ‘온도차’는 오히려 더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스피 5000 돌파라는 상징적 숫자 뒤에는 대형주 쏠림과 종목 간 양극화라는 복잡한 현실이 동시에 자리하고 있다.
코스피는 29일 기준 5200선까지 돌파하며 고점을 높이고 있다. 랠리의 핵심은 ‘선도주 중심’에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필두로 한 반도체 대형주와 현대차 등 일부 대형주 종목들이 지수 상승을 독식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코스피 시가총액 비중이 40%에 육박하며 이들의 주가가 조금만 올라도 지수가 바로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 취임 직후인 지난해 6월 4일 대비 올해 1월 27일 기준 삼성그룹 시총은 592조 원에서 1368조 원으로 775조 원 넘게 불며 시총 1000조 원을 훌쩍 넘겼다. SK도 같은 기간 238조 원에서 732조 원으로 증가해 206.8%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는 30대 그룹 중 가장 높은 성장세다. 현대차그룹(149조 원→291조 원), LG(130조 원→184조 원), HD현대(105조 원→160조 원) 등도 나란히 시총 100조 원 이상 그룹에 이름을 올렸고, 한화도 95조 원에서 150조 원으로 늘며 시총 100조 원대에 합류했다.
거대 기업 중심의 성장은 지수와 거래대금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코스피 시장에서 대형주 지수는 이달 들어 약 27% 오르며 전체 지수 상승률보다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반면 중형주와 소형주는 각각 약 10%, 약 5%씩 오르며 상대적으로 약세를 나타냈다. 거래도 대형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달 코스피 전체 거래대금에서 약 절반이 시가총액 상위 종목 10개에 몰렸다. 지난해 거래대금 중 시총 상위 10개 종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36.60% 수준에 불과했다.
반도체 대형주에서 자동차, 원전, 방산 등 다른 업종으로 매수세가 옮겨가는 순환매 장세에도 중·소형주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하는 ‘쏠림 현상’이 심화한 것이다. 이는 ‘코스피 5000’이라는 숫자가 투자자는 물론 서민들의 체감 경기와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기도 하다. 한지영·이성훈 키움증권 연구원은 “연초 이후 6거래일간 코스피가 8% 넘게 급등했지만, 이 기간 코스피의 상승 종목 수와 하락 종목 수의 평균은 각각 316개, 470개를 기록했다”며 “하락 종목 수가 상승 종목 수보다 많은 구간에서 지수가 급등했다는 것은 반도체, 조선, 방산, 자동차 등 소수 업종에만 랠리 온기가 집중됐음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코스닥 시장의 분위기가 최근 개선될 조짐을 보이는 점은 긍정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출범시킨 ‘코스피5000 특별위원회’는 최근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 ‘코스닥 3000’을 다음 목표로 제시했다. 이후 기관투자가들의 순매수가 집중적으로 유입되며 지수의 반등이 나타나고 있다. 코스닥은 29일 기준 1100선을 넘으며 ‘닷컴 버블’ 이후 약 25년 만에 최고치 수준을 보이고 있다.
‘코스닥 3000’이라는 새로운 목표는 코스피 랠리에서 소외됐던 개인투자자들의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지수와 대형주 소식에서 이른바 ‘포모’(FOMO·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두려움)를 느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6일부터 이틀간 개인들은 국내 최대 규모의 코스닥 관련 ETF(레버리지형 제외)인 KODEX 코스닥150을 1조 763억 원에 순매수했다. 이는 코스닥 지수 상승에 베팅하는 ETF 상품이다. 코스닥 ETF 수익률이 치솟자 관련 레버리지형 ETF를 사려는 개인투자자들이 급증하며 투자에 필수인 레버리지 사전교육 사이트가 한때 마비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주식 시장의 ‘양극화’ 현상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 나타났던 입지·가격별 격차가 주식 시장에서도 재현되고 있다는 뜻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지수는 오르고 있지만 체감 수익률은 투자자마다 극명하게 갈린다”며 “대형주를 보유한 투자자는 자산이 빠르게 불어나지만, 그렇지 않은 투자자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이는 자산시장 전반의 구조적 양극화로 최근 개인투자자들이 코스닥 관련 ETF를 집중 매수한 것도 이런 것을 뒷받침한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도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 이에 코스닥 활성화 등을 정책적 과제로 제시하고 나섰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28일 이재명 대통령이 자본시장 제도개혁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금융위원회, 한국거래소를 포함해 제도를 본격적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검토를 하고 있다”며 “특히 코스닥을 당초 코스닥다웠던 시절의 초기 위상에 걸맞은 수준으로 되돌릴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29일 “코스닥 시장 경쟁력도 강화하겠다”며 “2월 중으로 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 개정을 완료해 코스닥 벤처펀드의 소득공제 대상 투자액 한도를 확대하고 부실기업을 신속히 퇴출해 투자자 신뢰를 제고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생산적 금융과 자본시장 선진화에 박차를 가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넘어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정책 기대감으로 양극화가 해소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단기적인 수급 개선은 가능하지만, 결국 기업의 실적과 성장성, 산업 경쟁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속적인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코스닥 지수가 빠르게 올랐지만,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과 일부 로봇이나 바이오 종목을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는 코스닥 시장에 이른바 ‘좀비기업’(만성 적자에 허덕이는 기업)이 상당한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이에 정부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코스닥 시장의 건전성 강화를 함께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최근 “좀비 기업이나 장기간 이자 비용을 지불할 만큼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들의 상장 폐지를 강화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이어 “시장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이러한 기업들이 가능한 한 빨리 퇴출돼야 한다”며 “경제 규모와 자본시장 규모에 비해 약 2800개의 상장기업은 너무 많다”고 주장했다.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