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반도체대전 2025’에 마련된 삼성전자 부스에 6세대 고대역폭 메모리인 HBM4와 HBM3E 실물이 전시돼있다.연합뉴스
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 반도체의 핵심인 세계 최고 성능의 6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인 ‘HBM4’를 설 연휴 이후 세계 최초로 양산 출하할 것으로 보인다. 이전 세대 제품에서의 부진을 딛고 HBM 시장에서 우위를 되찾아 세계 메모리 업계 1위 자리를 확고히 하겠다는 전략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에 공급할 HBM4의 양산 출하 시기를 이번 설 연휴 이후 이르면 이달 셋째 주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와의 품질 테스트를 일찌감치 통과해 구매주문(PO)을 받았고, HBM4가 적용되는 엔비디아 AI 가속기인 ‘베라 루빈’ 출시 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번 일정을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객사 완제품 모듈 테스트와 관련해 삼성전자가 공급하는 HBM4 샘플 물량도 이번 PO에서 대폭 확대된 것으로 관측된다.
엔비디아는 내달 자사 기술 콘퍼런스 ‘GTC 2026’에서 삼성전자 HBM4를 적용한 베라 루빈을 처음 공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차세대 HBM4가 양산 출하되는 것은 이번이 세계 최초다.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HBM4는 성능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삼성전자는 HBM4 개발 착수 때부터 국제반도체 표준협의기구(JEDEC) 표준을 능가하는 최고 성능을 목표로 정했다.
이에 따라 이번 HBM4에 1c(10나노급 6세대) D램과 4나노 파운드리 공정을 동시에 적용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업계 유일의 공정 조합을 채택한 삼성전자 HBM4의 데이터 처리 속도는 JEDEC 표준인 8Gbps를 넘어 업계 최고 속도인 11.7Gbps(초당 기가비트)에 달한다.
이는 JEDEC 표준을 37%, 이전 세대 HBM3E(9.6Gbps)를 22% 각각 웃도는 수준이다.
또한 삼성전자 HBM4는 단일 스택(묶음) 기준 메모리 대역 폭이 전작 대비 2.4배 향상된 최대 3TB/s 수준에 달하고, 12단 적층 기술로 최대 36GB의 용량을 제공한다.
향후 16단 적층 기술을 적용하면 최대 48GB까지 용량 확장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산 성능을 극대화하면서도 저전력 설계로 서버와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모와 냉각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HBM4를 신호탄으로 메모리 반도체 1위 탈환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회사는 올해 HBM 판매량을 전년보다 3배 이상 높인다는 계획이다. HBM 생산 능력 확충을 위해 경기도 평택캠퍼스 4공장(P4)에 신규 라인을 설치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P4에 월 10만~12만 장의 웨이퍼를 생산할 수 있는 D램 생산 라인을 추가 구축한다는 내부 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설 라인은 HBM4에 들어가는 1c D램용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까지 월 6만~7만 장의 1c D램 웨이퍼 생산라인을 구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최대 12만 장이 추가되면, 전체 생산 능력(약 78만 장) 중 HBM4용 D램의 비중(약 20만 장)은 25%를 차지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난해 말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글로벌 HBM4 시장 점유율을 SK하이닉스 54%, 삼성전자 28%, 마이크론 18%로 예상한 바 있다.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올해 베라 루빈 등에 적용할 HBM4 물량 가운데 약 3분의 2를 SK하이닉스에 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9월 HBM4 양산 체제를 구축한 이후 엔비디아에 대량의 유상 샘플을 공급해 왔다. 현재는 주요 고객사 일정에 맞춰 본격적인 양산 준비에 들어간 상태다.
하지만 반도체 업계 일각에선 “엔비디아 젠슨 황 CEO가 하이닉스의 HBM 가격이 너무 올라 주문량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까지 들리고 있어 삼성전자로선 올해 점유율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최고 성능의 HBM4 최초 양산을 통해 기술 경쟁력 회복을 입증했다”면서 “6세대 HBM4 시장에서 하이닉스와의 시장 점유율 대결에서 우위를 보일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