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료원 소화기내과 이창석 과장은 "면역계를 조절하는 치료약 특성상 예방접종을 한다든지, 기존 결핵, 바이러스성 간염과 같은 만성 감염성 질환자들에게는 신중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부산의료원 제공
과거 서구에서 흔한 병으로 여겨졌던 염증성 장질환. 식습관의 서구화와 환경 변화로 인해 국내서도 환자가 늘고 있다. 염증성 장질환은 단순 장염이나 과민성 장증후군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정확한 조기 진단과 그에 따른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부산의료원 소화기내과 이창석 과장은 “초기 염증 단계에서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장이 딱딱하게 굳거나 구멍이 뚫려 결국 장을 잘라내는 수술을 해야 할 수 있다”면서도 “조기에 치료하고 꾸준히 관리만 해준다면 일반인과 다름없는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다”고 밝혔다.
■과민성 장증후군과 달라
염증성 장질환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면역 반응으로 인해 장에 만성적인 염증이 생겨 호전과 재발을 반복하는 질환으로, 크게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크론병은 입에서 항문까지 소화관 어디에나 발생할 수 있으며, 소장과 대장이 만나는 회맹부와 항문에서 흔하게 나타난다. 염증이 장의 모든 층을 침범해 발생하기 때문에 병변이 연속적이지 않고 드문드문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장벽 깊숙이 염증이 생기면서 누공을 비롯한 협착, 농양 등이 궤양성 대장염에 비해 더 흔히 발생한다.
궤양성 대장염은 대장에만 국한돼 발생한다. 직장에서 시작해 질환의 경중에 따라 항문에서 더 위쪽으로 올라가는 양상을 보인다. 염증이 대장의 점막층에만 얕게 분포하고 병변이 끊이지 않고 연속적으로 나타난다. 혈변이 가장 주된 증상이다.
염증성 장질환의 초기 증상은 과민성 장증후군과 혼동되기도 한다. 하지만 과민성 장증후군은 복통, 설사 등의 증상을 호소해도 검사에서 장의 염증 소견이 없는 기능성 질환인 데 반해 염증성 장질환은 실제로 장이 헐고 피가 나며 구조적 손상이 진행되는 기질적 질환이다. 치료법이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4주 이상 지속되는 설사 △혈변 및 점액변 △자다가 배가 아파서 깨는 야간 증상 △의도하지 않은 체중 감소 △항문 질환의 재발 △설명되지 않는 발열과 피로감 등이 나타나면 소화기내과 전문의를 찾아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
염증성 장질환은 임상 증상과 여러 검사 결과를 종합해 판단된다. 첫 진료에서는 혈액검사와 분변검사, CT, MRI와 같은 영상검사들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내시경 검사다.
치료 약물은 5-ASA와 스테로이드, 면역억제제, 생물학적 제제들이 핵심이다. 특별히 함께 복용하면 안 되는 약은 없지만 당뇨병이나 고지혈증 환자는 기존 약제 변화로 인해 약물 용량 조절이 필요한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근골격계 질환으로 진통소염제를 복용 중이거나 항생제를 복용 중인 경우 위궤양과 같은 부작용이 더 잘 생길 수 있다. 신장독성으로 인한 합병증도 유발될 수 있다. 이 과장은 “면역계를 조절하는 치료약의 특성상 예방접종을 한다거나 기존 결핵, 바이러스성 간염과 같은 만성 감염성 질환을 가졌을 경우엔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빠뜨리지 않고 약 복용해야
염증성 장질환은 완치가 아닌 증상이 없고 염증이 가라앉은 상태인 ‘관해’를 유지하는 것이 목표다. 조기 진단과 꾸준한 치료가 중요한데, 약물 치료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생활습관 관리다. 식사 관리의 경우 급성기에는 장에 자극을 주지 않는 저잔사식(흰 쌀밥, 부드러운 고기, 익힌 채소 등)이 권장된다. 섬유질이 많은 채소나 잡곡은 피하는 것이 좋다. 사과, 배, 복숭아 등 장내 소화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과일은 주의해 먹는 것이 좋다.
관해기에는 너무 엄격하게 음식을 제한하면 영양 불균형이 올 수 있기 때문에 골고루 먹되 식사 일기를 써서 불편한 음식을 찾아내 해당 음식을 피하는 것이 요령이다. 맵고 짜고 기름진 음식, 카페인, 탄산음료, 유제품은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스트레스는 면역 체계를 교란시켜 증상을 악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 질병으로 인한 우울감을 인정하고 가족이나 환우회와 소통하며 정서적 지지를 얻는 동시에 가벼운 산책이나 명상, 충분한 수면으로 장 운동을 안정시키는 것이 도움이 된다.
크론병 환자의 경우 금연은 필수다. 흡연자는 비흡연자에 비해 재발률이 높고 치료 약물의 효과가 떨어지며 수술받을 확률이 훨씬 높다.
‘약 복용 준수’는 특히 신경써야 할 부분이다. 처방받은 약을 정해진 용법대로 빠뜨리지 않고 복용하는 것이 관해를 유지하는 유일한 길인 만큼 해외여행이나 장기 출장 때에도 약물 복용을 빼먹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스테로이드나 면역억제제 또는 생물학제제로 치료 중일 때 전염성 바이러스가 주의되는 나라를 방문해야 한다면 담당 의사와 상의가 꼭 필요하다. 이 과장은 “자신의 신체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나쁜 것은 자제하고 좋은 것을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어쩌면 그렇게 하지 않는 비질환자들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