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면 부산 탄생설

입력 : 2026-03-06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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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 뽑다가 실수로 인천서 탄생
기존 쫄면 유래와 다른 주장 나와
1970년대 부산서 방앗간 하던 차성철 씨
간편한 짜장면용 면발 주문 받고
시행착오 끝 쫄깃한 면 개발 성공
매운맛 쫄면은 식당 이모들 비법

쫄면을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부산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은 밀면이나, 마니아가 많은 냉면과도 또 달랐다. 학창 시절 즐겨 먹던 추억의 음식 정도로 가볍게 봤다. 오뚜기, 농심, 팔도, 풀무원 등 대기업에서 잇따라 쫄면 제품을 내놓아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랬던 쫄면을 다시 쳐다보게 됐다. 최근 부산일보로 들어온 제보 때문이었다. 1970년대 인천에서 실수로 쫄면이 탄생했다는 기존의 학설은 틀렸고, 부산에서 뚜렷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내용이었다. 새롭게 등장한 ‘쫄면 부산 탄생설’ 속으로 들어가 봤다.


쫄면은 쫄깃하고 굵은 면발이 특징이다. 클립아트코리아 쫄면은 쫄깃하고 굵은 면발이 특징이다. 클립아트코리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에 따르면 쫄면은 쫄깃하고 차가운 굵은 면발에 각종 채소를 얹고 계란을 고명으로 하여 양념장을 넣어 비벼 먹는 음식이다. 면 그 자체를 지칭하는 동시에 비벼서 완성된 요리도 뜻한다. 쫄면의 유래에 대해서는 대개 두 가지 이야기를 한다. 시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이른바 ‘실수설’이다. 1970년대 초 인천에 있는 광신제면에서 냉면 면발 주문이 많아 바쁜 나머지 직원이 면을 뽑는 사출기의 체를 잘못 끼워 굵은 면발의 냉면이 대량 생산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잘못 생산된 면발을 근처 분식점에 공짜로 줬는데, 여기서 초고추장에 각종 채소를 함께 비벼 팔면서 분식집 메뉴로 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문과 방송 등에서 가장 흔하게 언급되는 내용이다. 하지만 냉면과 쫄면은 우선 원료가 다르고 색도 다르다. 냉면을 굵게 뽑는다고 쫄면 특유의 쫄깃한 식감이 나지도 않는다. 실수로 굵게 면을 뽑았더라도 가동을 중단하면 그만이다. 심지어 이 면을 다시 제면기에 넣어 정상적인 냉면으로 뽑을 수 있어 이 가설은 전반적으로 신뢰성이 떨어진다. 다른 하나는 인천 차이나타운에 짜장면 면을 납품하던 삼성식품공업사가 두껍고 질긴 면발을 개발한 뒤 분식점 맛나당에 납품해 인기 메뉴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이 이야기가 첫 번째 가설보다 덜 유명하지만 더 신빙성이 있다고 받아들여진다.


부산 동구 초량 선화당에서는 쫄면 한 그릇이 2500원이다. 부산 동구 초량 선화당에서는 쫄면 한 그릇이 2500원이다.

최근 부산일보를 찾은 차동엽 씨가 들려준 선친 차성철 씨(1924~1983) 이야기는 마치 <식탁 위의 한국사>를 보는 것 같았다. 차성철 씨에게는 일생 동안 큰돈을 벌 세 번의 기회가 왔다. 차 씨는 1940년대부터 부산 서구 토성동에서 정미소를 운영했다. 어느 날 지금의 부산근현대역사관 맞은편에 있던 일본 헌병대에서 정미소를 찾아와 백미 도정을 요구했다. 일제가 전쟁 물자 확보와 식량 절약을 위해 도정률을 ‘7분도 쌀’로 제한하거나 현미를 강제로 먹게 했던 시절이었다. 이를 어기고 백미를 만들다 걸리면 처벌받았다. 조선인에게는 ‘미곡 도정 제한’을 해놓았지만, 자기들은 백미를 먹겠다는 속셈이었다. 그 요구에 따라 헌병대에 백미 납품을 했고, 이게 암암리에 소문이 나면서 부산에서 돈깨나 있는 사람들도 부탁해 와 처음으로 꽤 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터지며 정미할 쌀 자체가 없어 막막해졌다. 놀고 있던 정미소에 임시정부 농림부 국장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출입증을 만들어줄 테니 부두에 가보라고 했다. 당시 부두에는 미국이나 UN이 구호물자로 베트남 등 동남아에서 쌀을 구매해 보낸 정미가 안 된 쌀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 쌀을 그냥 가져다 정미해서 피난민들에게 무상 배급도 하면서 두 번째로 돈을 많이 벌었다.


대기업에서도 팔도비빔쫄면 등 쫄면 제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팔도 제공 대기업에서도 팔도비빔쫄면 등 쫄면 제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팔도 제공

세 번째가 바로 쫄면이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9년 차 씨는 중구 신창동으로 자리를 옮겨 신창방앗간을 열었다. 말이 방앗간이지 지금으로 치면 식품기업쯤 되었던 모양이다. 직원이 많을 때는 30명, 적을 때도 10여 명이나 되었는데 모두 한집에서 먹고 자고 했다. 여름에는 냉면, 겨울에는 떡국용 떡을 만들어 팔았고 국제시장 상인들이 주 고객이었다.

1970년대 초 신창방앗간과 가까운 국제시장과 신창동 일대의 케네디시장에는 서울의 청계천처럼 봉제 공장이나 옷 공장이 많았다. 시장 상인들과 봉제 공장 직원들은 점심으로 주변 식당에서 값이 싸고 간편한 짜장면을 즐겨 먹었다. 지금 부산은행 부평동 금융센터 바로 옆 골목에 밀집했던 식당 입장에서도 면만 삶아서 짜장 소스만 부으면 되는 짜장면은 만들기가 손쉬운 좋은 메뉴였다.

이들의 한 가지 고민은 점심시간에 주문은 몰리는데 미리 면을 삶아 놓으면 퍼져서 먹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중 가장 손님이 많았던 ‘실비식당’ 사장이 차 씨에게 찾아와 “잘 퍼지지 않는 면을 만들어 줄 수 없느냐”라고 부탁했다. 세상에 그런 면이 있으면 미리 삶아뒀다가 짜장 소스만 부으면 되니 단시간에 많이 팔 수 있어서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쫄면을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진 차성철 씨. 차동엽 제공 쫄면을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진 차성철 씨. 차동엽 제공

차 씨는 “냉면도 만드는데 그게 뭐 어렵겠냐. 내가 만들어 주겠다”라고 흔쾌히 승낙했지만 쉽지 않았다. 짜장면 면을 냉면하고 똑같이 얇게 만드니 퍼지고 말았다. 석 달가량 실험하고 테스트를 거쳐 우여곡절 끝에 원하던 면이 탄생했다. 식용 가성 소다가 비결이었다. 물과 밀가루 반죽을 적절한 비율로 조절한 뒤 식용 가성 소다를 넣으면 면은 쫄깃하고 퍼지지 않았다. 그때가 1971~1972년 무렵이었다.

함흥냉면으로 이름난 서울 충무로 오장동의 기계상을 방문해 이 같은 특성의 면에 맞는 사출기도 별도 주문하고, 밀가루 200포대를 버려가며 시행착오를 거친 결과였다. 실비식당은 “저 집 짜장면은 주문 전화가 끝나자 마자 갖다 준다”라는 이야기까지 돌 정도로 장사에 날개를 달며 매출은 2~3배로 뛰었다. 이 소문이 퍼지며 쫄깃한 면은 국제시장에서 부산 시내로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새롭게 탄생한 면의 이름이 처음부터 쫄면은 아니었다. 똑같이 짜장면이라고 불렀지만 식당 직원들이 쫄깃쫄깃하고 퍼지지 않는 면이라는 의미에서 구분해 쫄면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60년 전통의 해운대암소갈비집에도 인기 있는 감자사리면을 쓰기 전에 면사리로 쫄면을 5~6년간 썼다. 그 배달 방식이 지금에 와서 보면 흥미롭다. 40번 시내버스 안내양에게 수고비를 주고 쫄면 박스를 실어 보내면서 차량번호를 알려주면 시간에 맞춰 정류소에서 찾아가는 방식이었다. 40번 버스는 지금도 국제시장에서 해운대구청어귀삼거리 구간을 운행하고 있다.

그 당시 쫄면 만드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전국에서 신창방아간에 많이 견학하러 왔다. 직원들 숫자도 많았고 분가해서 방앗간도 많이 차렸기에, 쫄면이 전국적으로 퍼졌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지금 같은 매운맛의 쫄면 레시피에 대해서는 “식당 주방 이모들이 맨날 짜장면만 먹다 질리자 고추장을 넣고 비빔냉면처럼 먹은 데서 시작된 것 같다”라고 기억했다.


차동엽 씨가 부산일보를 찾아와 쫄면이 부산에서 처음 만들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차동엽 씨가 부산일보를 찾아와 쫄면이 부산에서 처음 만들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차성철 씨의 자녀 5남 3녀는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자기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방앗간을 이어받아 쫄면을 만들거나 식당을 운영하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아 가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쫄면의 유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시중에 잘못 알려졌다는 사실도 몇 년 전에 처음 알았다고 했다. 차동엽 씨는 “아버지가 생전에 쫄면은 밀가루 200포대를 버려가면서 내가 개발했고, 그것 때문에 돈도 많이 벌었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열심히 살았던 아버지의 삶과 쫄면의 유래가 지금이라도 제대로 알려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당시 사진 등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아쉽지만, 차 씨의 증언은 당시 시대상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어 신빙성이 높아 보였다. 쫄면은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달리 부산에서 처음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어쩌면 항구도시 부산과 인천에서 비슷한 제품이 비슷한 시기에 동시다발적으로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쫄면의 역사에 대한 진지한 연구로 이어져 지역의 음식 이야기가 더 풍성해졌으면 좋겠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그래픽=류지혜 기자 birdy@ 그래픽=류지혜 기자 birdy@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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