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의 포커스온] 전쟁은 현실이다

입력 : 2026-03-12 18: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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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미국·이란전, 과거 중동전과 달라
드론과 AI가 핵심 전력으로 부상
가성비와 비대칭 전쟁 시대 서막

전략적 전쟁과 생존 전쟁 강한 충돌
무고한 민간인 피해 갈수록 늘어나
생사 갈림길 이들에겐 참혹한 시간

걸프전은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무력으로 점령한 뒤 미국이 개입하면서 1991년 발발했다. 걸프전은 TV로 실시간 생중계된 최초의 전쟁이다. 이때부터 CNN은 NBC, CBS, ABC 등 미국 지상파 빅3를 능가하는 영향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ABC와 NBC는 바그다드에서 대기하고 있었지만, 제휴를 맺었던 이라크 통신 시설이 파괴되는 바람에 방송을 할 수 없었다. CNN은 자체 통신 시설을 가동하고 있었다. 몇 주일 동안 CNN은 24시간 내내 바그다드 현지에서 전쟁 상황을 생중계한 유일한 방송국이었다. 당시 전 세계 10억 명 이상이 CNN 방송을 직간접적으로 시청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를 기점으로 CNN은 24시간 생중계의 대명사로 국제적 명성과 권위를 획득했다. 반면, 걸프전은 전쟁이 미디어를 통해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라는 인상을 남겼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걸프전 당시 미군의 미사일 발사 장면을 반복해서 내보낸 CNN 보도를 비판하며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라는 역설적인 주장을 했다. 걸프전이 미디어 속에서만 존재했고, CNN이 보여준 걸프전 장면들은 전쟁영화와 구분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미디어가 전쟁의 강렬한 이미지를 유포하면서 참혹한 진실을 가리고, 전쟁을 영화나 비디오 게임처럼 보이게 한다는 비판이었다.

현재 미국과 이란 전쟁은 걸프전은 물론 아프가니스탄전(2001년)·이라크전(2003년) 등 과거 중동전의 공식이 확연히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지상군 중심에서 드론·미사일 위주 공중전으로 바뀐 데다, ‘전선’(戰線)도 군사 시설을 넘어 중동 전역의 에너지 인프라로 확대됐다. 드론과 AI가 전쟁 판세를 바꿀 핵심 전력으로 부상하며 ‘가성비 전쟁’ 시대가 도래한 것도 특징이다. 이란은 ‘자폭 드론’(샤헤드-136)과 미사일을 대량 동원해 바레인, 카타르,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전역의 미국 동맹국들을 타격하고 있다. 대당 3만 달러(약 4400만 원)로 추정되는 샤헤드 드론은 대당 약 400만~600만 달러(약 59억~89억 원)에 달하는 미국의 패트리엇 미사일과 수백만 달러의 전차·장갑차를 무력화한다. 한계를 느낀 미국도 샤헤드를 모방한 자폭형 공격 드론 ‘루카스’를 전장에 투입했다. 수조 원짜리 항공모함이나 방공망이 수천만 원짜리 드론의 벌떼 공격에 무력화할 수 있다는 ‘비대칭 전쟁’의 서막이다.

이번 전쟁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첫 번째 중동전이다.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제거 작전에선 미국 AI 소프트웨어 기업 팔란티어가 위성·드론이 수집한 데이터로 실시간 상황판을 제공했다. 앤트로픽의 AI 챗봇 ‘클로드’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은신처와 급습 시점을 제시했다. 미군은 이란 공습 작전 곳곳에서 클로드를 활용해 정보 평가, 목표물 식별, 전장 시뮬레이션 등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SF 영화처럼 AI 드론이 스스로 사람을 추적해 공격하거나 로봇 병사가 지상전에 투입될 날도 머지않았다”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란 전쟁 발발 이후 민간인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난달 28일 공습으로 175명이 숨진 이란 미나브 초등학교 피격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이란 소행이라던 트럼프 대통령 주장과 달리, 미군의 표적 식별 오류로 인한 오폭이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논란은 증폭되는 상황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이란에선 민간인 1300여 명이 사망했다.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공격으로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에선 무고한 외국인의 죽음이 이어진다.

이번 전쟁의 배경은 복합적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각각 국내 정치적 위기를 대외적 안보 이슈로 전환하려는 전략적 목적을 위해 선택한 전쟁이라는 시각이 많다. 미국의 이란 공격은 국제 에너지 질서와 달러 패권, 세계 질서 재편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이번 전쟁은 중동의 친미 아랍 산유국들에도 전략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중국의 에너지 접근과 중동 내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란에는 체제 존속이 걸린 ‘생존 전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켄터키주 히브런에서 이란 전쟁에 대해 “우리가 이겼다”면서도 임무를 마칠 때까지 군사작전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일방적 승리 선언을 통해 조기 종전 출구 전략을 모색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이날 미국의 독단적인 전쟁 종료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종전 조건으로 전쟁 피해 배상과 재공격 방지 보장을 요구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중동 지역 민간인 피해는 점점 커질 것이다. 생사 갈림길에 선 그들에겐 전쟁은 ‘쇼’가 아니라 참혹한 현실이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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