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학수의 문화풍경] 사라지기 때문에 아름답다

입력 : 2026-03-12 18: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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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철학 아카데미 숲길 대표

이른 봄이 오면 사람들은 나무를 올려다보기 시작한다. 거리와 공원, 하천가의 나무들은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마른 가지였지만 어느새 꽃망울이 터져 나온다. 한국에서 벚꽃 개화는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는 특별한 사건이 된다. 가족들은 사진을 찍기 위해 모이고, 연인들은 꽃 아래를 거닐며, 여행사들은 꽃구경 관광버스를 운행한다. 온 나라는 짧은 기간 동안 펼쳐지는 색채의 향연에 잠시 걸음을 멈춘다. 고작 며칠이면 사라질 꽃에 사람들은 왜 이토록 마음을 빼앗길까.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꽃은 단지 식물의 생애 주기에서 나타나는 한 단계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문화 속에서 꽃은 단순한 생물학적 현상을 넘어서는 상징이 되어 왔다. 시와 그림, 음악 속에서 봄꽃은 생명의 재탄생을 의미한다. 긴 겨울 동안 얼어붙어 있던 땅과 나무는 마치 생명이 멈춘 듯 보이지만, 봄이 오면 다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그래서 많은 문화에서 봄꽃은 죽음처럼 보였던 자연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을 상징한다.

봄꽃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삶도 오래 머물지 않아 감동적이며

찰나의 아름다움, 함께 즐기라는 것

그러나 우리가 꽃에 매혹되는 이유를 단지 부활 때문이라고만 설명할 수는 없다. 꽃의 아름다움은 그 연약함에 있다. 여기서 연약함이란 오래 머물지 않는 존재라는 의미다. 강한 바람이나 며칠의 비에도 꽃잎은 쉽게 흩어진다. 꽃은 잠시 피었다가 곧 사라진다. 꽃은 짧은 생을 지녔음에도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짧은 생 때문에 더욱 아름답다.

아름다움이 덧없음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일상 속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사람들이 석양을 바라보는 순간을 떠올려 보자. 하늘의 색이 몇 분 안에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을 멈추고 조용히 수평선을 바라본다. 만약 석양이 밤새 계속된다면 지금처럼 감동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당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은 ‘등락유원’(登樂遊原)」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석양은 한없이 아름다운데, 이미 황혼이 가까이 왔다.”(夕陽無限好,只是近黃昏). 봄꽃의 아름다움도 이와 같다. 오래 머물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강하게 마음을 울린다.

예술 가운데 이러한 순간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르는 음악일지도 모른다. 안토니오 비발디의 《사계》 ‘봄’ 1악장에서는 활기찬 바이올린 선율이 꽃이 피어나는 장면과 새들의 노래를 그려낸다. 그러나 곧 먹구름이 몰려오고 천둥을 동반한 폭풍이 몰아치며, 온화한 봄 풍경을 휩쓸어 버린다. 꽃과 새와 따뜻한 봄 공기는 빗속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음악 속에서도 봄의 아름다움은 한순간 스쳐 지나간다.

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덧없음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다. 꽃이 피는 계절이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모인다. 공원과 강변에는 낯선 사람들이 모여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는 작은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부산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온천천 벚꽃길을 걷거나 삼락생태공원의 봄꽃을 찾아 나선다. 또 전국적으로는 진해 벚꽃축제가 열리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며칠 동안 꽃은 평범한 공간을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는 장소로 바꾸어 놓는다.

이런 순간들은 종종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가까운 친구와 저녁 식사를 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앞으로도 수없이 다시 만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저녁은 평범하게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친구가 먼 나라로 떠나간다는 사실을 안다면 같은 저녁도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이러한 깨달음은 철학자들도 오래전부터 이야기해 왔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는 〈에세이〉에서 “철학 한다는 것은 인간이 언젠가 죽는 존재임을 배우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죽음은 두렵기 때문에 사람들은 생각하려 하지 않지만, 몽테뉴는 그것이 어리석은 태도라고 보았다. 우리는 항상 떠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며, 그럴 때 삶의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20세기 철학에서도 중요한 통찰로 이어진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의 존재를 ‘죽음을 향한 존재’라고 설명했다. 죽음은 삶의 끝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들에 긴장과 의미를 부여하는 지평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꽃을 사랑하는 데에는 여러 겹의 이유가 있다. 꽃은 긴 겨울 뒤에 찾아오는 생명의 부활을 알리고, 사람들을 거리와 공원으로 불러 모아 함께 아름다움을 나누게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꽃이 우리 마음을 깊이 움직이는 이유는 그것이 오래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매년 봄 꽃잎이 하나둘 떨어질 때 우리는 깨닫는다. 아름다움은 사라질 것을 알 때 더욱 깊이 마음을 울린다는 사실을. 그래서 봄이 오면 사람들은 또다시 나무를 올려다보게 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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