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 대비 리더십 캠프.’ 초등학교 앞 학원에 내걸린 선전 문구다. 발표력, 설득력, 자기소개법을 가르친다. 발성, 표정, 제스처 요령과 논리적으로 말하는 훈련이 커리큘럼이다. 쉽게 말하면 ‘반장 학원’이다. 사교육은 학습 성과를 넘어 관계 맺기의 우열에까지 스며들었다.
학원은 한국 고유의 사회문화 현상이다. 외신도 번역하지 않고 ‘hagwon’으로 지칭한다. ‘private academy(사설 교습소)’로 옮기면 대학입시 사교육뿐만 아니라 초등 방과후 심화 학습, 나아가 영유아까지 확장된 선행 교육의 특성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6세 미만 영유아 47.6%가 사교육을 받고 있다.’ 지난해 3월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취학 전 아동 학원 시장이 거대 산업화했다는 기사에서 좁은 영어유치원의 문을 뚫기 위한 ‘4세 고시’ 실태를 전했다. 유명 영어·수학 학원에 다니려면 구술시험을 포함한 레벨 테스트를 통과해야 하는데 수준이 높다 보니 고시 수험생처럼 매달린다는 것이다. 유치원 졸업 때가 되면 ‘7세 고시’가 기다리고 있다. 초등생이 된 뒤 더 좋은 영어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4·7세 아동에 영어로 주관적이고 논리적인 설명력을 강요하는 극성 사교육에 원성이 들끓었다. 그 결과 ‘4·7세 고시’ 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학원법) 개정안이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모처럼 여야 합의로 처리됐다. 앞으로 영유아 레벨 테스트는 금지되고, 어기면 영업정지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환영하는 목소리가 다수지만 우려는 여전하다. 학원에 다니는 동안 관찰·면담 방식의 ‘진단 행위’는 허용되기 때문에 서열화 수단으로 오용될 소지는 여전하다. 자체 시험을 치르지 않고 계열 유치원생만 받는 꼼수가 나올 수도 있다. ‘그들만의 리그’로 변질돼 더 좁은 문이 되거나, 조기 교육을 앞당길 부작용도 걱정이다.
한국 특유의 집단 경쟁이 낳은 괴물을 잡으려 세계 유일의 ‘영유아 시험 처벌법’까지 나왔다. 교육 당국의 관리 감독이 중요하지만, 심리적·사회구조적 요인이 바뀌지 않으면 근절은 요원하다. 백방의 규제로도 좀체 잡히지 않는 부동산 광풍이 겹치는 대목이다. 벌써 유명 학원의 상혼과 수많은 ‘대치맘’의 조바심이 결국 편법의 우회로를 만들 것이라는 자조도 나온다. 아이를 경쟁의 도구로 내모는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면 ‘4·7세 고시’는 이름만 바꿔 되살아날 뿐이다.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