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배달된 생수 몇 통이
며칠째 집 앞에 놓여 있다
엘리베이터에 안내문을 붙여놓아도
찾아가지 않는다
집을 잘못 찾은 꼬맹이들 같고
정신이 흐린 뉘 집 할머니 같다
쭈뼛쭈뼛 서 있고
쾅, 쾅 문을 두드리고
아무 대답도 없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 같다
아빠, 하고 부르는 것 같고
아범아, 하고 부른 것 같다
내 것이 아닌데 내 것 같은
잠시 잠깐 맡겨둔 것 같은
들일 수도
쫓을 수도 없는
저 투명하고 맑은 생면부지를
무어라 부를까
시집 〈숲속의 대성당〉(2025) 중에서
매년 3월 22일은 세계 물의 날입니다. 우리나라의 수돗물 정수 관리 수준이 세계 10위 안에 들 정도로 뛰어나다는데 수돗물에 비해 300배 이상 비싼데도 생수를 배달시켜 먹는 집들이 많습니다.
편하다는 이유로 깨끗한 이미지를 입힌 생수를 사서 먹는 우리의 현실에서 실은 생수 업계가 사용하는 프라스틱의 양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도 생각해볼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선 1976년에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최초로 생수를 판매하기 시작했다는데 지금은 생수 시장 규모가 2025년 기준으로 3조원을 넘는다고 합니다.
살아있는 것들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이 물이, 잘못 배달된 생수통들이 집 잘못 찾은 애 같고, 뉘 집 할머니 같다 하니 이 난감한 지경이 내게 벌어진 일만 같습니다.
신정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