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남해군 남면 선구마을 해안가에서 펼쳐진 2026 남해 선구줄끗기 모습. 남해군 제공
경남 남해군의 특유한 세시풍속이자 지역 대표 전통문화유산인 ‘선구줄끗기’가 단절 위기에 직면했다. 해마다 정월대보름에 치러지는 데 몇 년 전부터 마을 인구가 급격히 줄면서 명맥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5일 남해군과 선구줄끗기 보존회 등에 따르면 지난 3일 남해군 남면 선구마을 해안가에서 선구줄끗기 행사가 열렸다. 먼저 마을의 안녕을 비는 당산제가 진행됐으며, 이어 본격적인 놀이인 고싸움과 줄끗기(줄다리기)가 펼쳐졌다. 주민들 모두 전통놀이를 즐기며 풍년과 풍어를 기원했다.
하지만 올해 선구줄끗기 행사는 여느 때보다 힘겹게 치러졌다. 마을 주민은 물론 인근 남면 주민들이 다수 동원됐음에도 인력이 부족해 행사 운영에 차질을 빚었다.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행사가 겨우 치러졌다는 말까지 나왔다.
남해군 관계자는 “최근 몇 년 동안 이어진 문제다. 인력이 부족해 선구줄끗기 행사를 치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군비와 도비를 합쳐 예산을 지원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인력 부족 문제라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선구줄끗기는 수백 년을 이어온 남해군 전통문화유산이다. 당산제를 시작으로 어불림·필승고축·고싸움·달집태우기 등이 순서대로 펼쳐진다. 윗마을과 아랫마을이 짚으로 길이 40m, 지름 1m의 ‘고’를 만들어 고싸움과 줄다리기를 하며 풍농·풍어·해난 방지를 기원한다.
대형 암줄과 수줄을 만들어 경쟁하고 다시 통합에 이르는 선구줄끗기는 그 내용만으로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농경 문화에서 볼 수 있는 줄다리기가 어촌에서 펼쳐진다는 희귀성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줄끗기 행사에는 군민뿐만 아니라 인근 마을 주민이나 관광객들도 함께 참여해 ‘공동체 예술’로서의 가치를 잘 보여준다.
지역의 전통문화예술로 높은 가치를 갖고 있지만 인력 부족 등 이유로 명맥 단절 위기에 처했다. 남해군 제공
이러한 점을 인정받아 선구줄끗기는 지난 2003년 경남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됐으며, 2015년에는 의령 큰줄땡기기 등 전국 5개 대형 줄다리기와 함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선정되기도 했다. 지역 정체성과 관광 자원으로 가치가 충분하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하지만 선구줄끗기는 그 전통과 가치와 별개로 당장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운 위기에 처했다. 선구줄끗기는 앞서 일제강점기 일본의 민족 말살 정책으로 인해 잠시 사라졌었는데 향토문화연구가의 노력으로 1989년 재현에 성공했다. 겨우 이어온 명맥이지만 이번에는 이를 전승할 사람들이 부족해 난항을 겪고 있다.
선구줄끗기 행사를 치르려면 직접 줄을 만들어야 하고 대형 줄을 옮겨야 한다. 여기에 수백 kg에 달하는 줄을 이용해 고싸움을 하고 줄다리기까지 하려면 적어도 400~500명의 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 선구마을 주민은 80명이 채 되질 않는 데다 대부분 70대 이상 고령이다. 마을 인력만으로는 도저히 전통을 이어갈 수 없다. 때문에 남해군으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인근 기관·단체를 동원하고 있지만 재원이 그리 넉넉지 못해 부담이 크다. 인근 학교 학생들에게 전승하려 했지만 학업 부담 등으로 인해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보존회는 해마다 하던 줄 만들기를 포기하고 앞서 사용했던 줄을 고쳐 쓰고 있다.
선구줄끗기 보존회 정군삼 회장은 “주민 수가 너무 많이 줄어 행사를 치르기 힘든 실정이다. 소중한 문화유산을 전승할 수 있도록 공동체가 유지돼야 한다. 남해군에서 좀 더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고, 특히 선구마을이나 남면을 넘어 남해군 전체의 행사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