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그래봤자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을 누구나 입에 달고 살던 때가 있었다. 밥상머리나 술자리에서 “강대국에 비하면 한국은 아직 멀었다”고 푸념할 때 쓰기도 했다. 2010년대에 들어서기 전까지도 그랬다.
그때는 ‘세계화의 물결’ ‘세계 속에 우뚝 선 대한민국’이란 말을 신문, 방송에서 지겹도록 접해야 했다. 화려한 국가 비전을 내세워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러워 하라’는 억지 메시지는 먹혀들지 않았다. 정권의 치적을 ‘가스라이팅’하려는 속셈도 컸다. 오히려 ‘우리는 전혀 글로벌하지 않다’는 사실을 실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탄허 스님 등 여러 예언가들이 ‘한반도가 세계 문화와 정신의 중심지가 된다’고 했을 때도 ‘우물 안 개구리’들은 헛웃음만 지었다. 그런데 상황이 급변했다. ‘새로운 문명이 일어나 꽃을 피운다’는 스님의 예언이 끝내 완성될지 알 수 없지만, 2026년 대한민국은 분명히 거대한 ‘K문화의 물결’을 세계로 분출하고 있다.
최근에는 군 복무를 마친 방탄소년단(BTS)의 광화문 컴백 무대가 꽃을 피웠다. 세계인들이 텔레비전으로, 휴대전화로 K팝 아이콘의 화려한 귀환을 축하하며 실시간으로 즐겼다. 대한민국 문화력이 세계의 중심이 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한데 BTS 소속사 하이브는 현장을 전파할 수단으로 ‘올드 미디어’가 아닌 넷플릭스를 선택했다. 가장 효율적으로, 가장 많은 세계인이 동시에 양질의 라이브 무대를 시청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 당연한 선택인 듯 보였다. 넷플릭스가 영화와 드라마 등 K문화 전파자로서 일등공신이긴 하나, 이를 두고 ‘K문화가 위기에 빠졌다’는 갑론을박도 일었다. 독점에 가까운 글로벌 OTT 플랫폼의 기세에 무늬만 화려한 K콘텐츠로 전락한다고 걱정하는 이들이 많아서다.
영상 플랫폼의 독재자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유튜브가 단순한 영상공유 사이트의 모습으로 세상에 등장한 건 2005년. 잠재력을 간파한 구글이 2006년 10월에 16억 5000만 달러에 사들였고, 2008년 한국어 서비스가 시작됐다. 유튜브는 2011년 한국에서 수익을 내는 파트너 프로그램을 공식 도입하면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고화질에 라이브 스트리밍 기능까지 강화돼 이제는 지상파 방송까지 침몰시키는 세계 뉴미디어의 절대 강자로 폭풍 성장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넷플릭스나 유튜브는 돈을 버는 마케팅 조직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기술적인 어려움을 겪는 시청자, 소비자들은 홈페이지를 전전하다가 고객센터에 어렵게 전화 연결이 되어도 “국내에서는 해결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들어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은 ‘재주를 잘 부리는 곰’이자 ‘구독료로 배를 채워주는 호구’다.
그러니 K문화를 향한 우리의 태도를 가다듬어야 한다. 세계의 박수에 취해 콘텐츠와 지식재산권을 해외 자본과 플랫폼에 빼앗겨서는 곤란하다. 콘텐츠를 잘 만들 뿐 아니라 시장을 장악하는 나라로 올라서야 하는 것이다. OTT와 유튜브를 포함한 소셜 미디어, 팬덤 플랫폼이 하나의 생태계로 확산하는 시대에 K문화가 확고한 영향력으로 뿌리를 단단히 다지지 않으면 영원히 소모품에 머물 수밖에 없다.
씨앗이 될 사례도 있다. 하이브의 자회사가 운용하는 플랫폼 ‘위버스’에서는 여러 기획사의 180개 팀이 넘는 국내외 아티스트들이 팬과 소통한다. 팬들이 실시간으로 콘텐츠를 즐기며, ‘공식 굿즈’까지 살 수 있는 국가 대표 글로벌 팬덤 플랫폼이다. 위버스 이용자는 매달 1000만 명 규모로, 팬덤에 국한되는 한계를 가진다. 유튜브 이용자 25억 명, 넷플릭스 가입자 3억 명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래도 넷플릭스, 유튜브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서비스가 한국에서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그렇게 되려면 더 정교한 대한민국 사용법이 필요하다. 이제는 글로벌 플랫폼 종속을 줄이고, 저작권 수호와 불법유통 대응을 국가 전략 차원에서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발 영상 플랫폼에 세계인이 열광하는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부산행 KTX를 타는 외국인들이 줄을 잇는 이때, 지역성도 빠질 수 없는 덕목이다. K문화력이 지역경제와 연결돼 지역균형발전을 견인할 방안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부산을 비롯한 여러 지역이 공연과 팬 투어, 국제행사 등과 연계돼야 상승 효과를 낸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에서 지방선거에 나선 주자들이 K문화를 수용할 K팝 아레나, 돔 구장 등을 경쟁적으로 공약하고 있는 건 반가운 일이다.
문화로 세계를 움직이고, 한국의 시선이 곧 산업이 되는 시대. K문화의 힘으로 플랫폼과 시장을 아우르는 온전한 설계도를 완성한다면, 한반도가 문명을 꽃피운다는 예언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박세익 기자 ru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