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말 부산 강서구의 모 병원 인스타그램에 '첫 송년의밤'이라는 제목으로 송년 행사 사진이 담긴 게시물이 공개됐다. SNS 캡처
부산의 한 병원 대표를 비롯해 약사와 제약회사 관계자들이 2년 넘게 수억 원에 이르는 불법 리베이트를 주고받은 혐의로 무더기로 검찰에 넘겨졌다. 이번 불법 리베이트 행각에는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된 중·대형 제약사 10여 곳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의료계 전반으로 번진 병원과 제약회사 간 구조적 비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15일 부산 사하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최근 의약품 거래 유지를 대가로 불법 리베이트를 주고 받은 혐의(의료법·약사법 위반)로 부산 강서구 소재 한 병원 대표원장 A 씨와 부산 한 제약회사 대표 B 씨 등 31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원장 A 씨와 대표 B 씨를 구속했고, 병원·제약회사 직원, 약사, 의료기기 회사 직원 등 29명은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겼다.
원장 A 씨와 A 씨의 병원 행정부장인 C 씨는 2021년 말부터 2024년 초까지 병원 건물 내 약국 약사와 26개 제약회사, 의료기기 판매회사 직원에게 계약·납품 유지 등을 명목으로 2억 5000만 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계좌추적을 통해 이 금액 대부분이 A 씨에게 흘러간 것으로 판단했다. 검찰은 A 씨가 리베이트로 받은 2억 5000만 원을 모두 소비해 몰수하기 힘든 것으로 판단해, A 씨 소유 부동산 중 2억 5000만 원을 가압류 했다.
A 씨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한 것으로 드러난 제약 회사 중에는 코스피·코스닥에 상장된 유명 제약사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제약회사들은 사하구에 지역 사무소를 두고 A 씨와 접촉한 것으로 확인됐다.
2022년 말 부산 강서구의 모 병원 인스타그램에 '첫 송년의밤'이라는 제목으로 송년 행사 사진이 담긴 게시물이 공개됐다. SNS 캡처
피의자로 입건된 제약회사 관계자들은 경찰 조사에서 약품 창고 임대로 발생한 보증금과 월세를 주고받은 정상 거래였을 뿐 리베이트를 제공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학술대회나 제품 설명회에서 소액의 식사를 제공했을 뿐이라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 같은 거래가 리베이트를 거래대금으로 가장한 허위 계약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제약회사 직원 등 범행 관련자들이 “(○○의원) 너무 많이 요구한다” “돈(리베이트) 받으면 계좌로 송금해라” 등의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은 정황을 휴대전화 포렌식을 통해 확인했다.
A 씨가 대표원장으로 있는 병원은 2022년 말 자체 인스타그램 계정에 ‘○○의원 첫 송년의밤’ 행사 사진을 포함한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다. 경찰 조사 결과 송년 행사에 사용된 떡과 경품으로 제공된 전자제품 등은 모두 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회사로부터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2024년 말 의료업계 관계자 수사 과정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해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병원과 제약회사 등 10여 곳을 동시 압수수색해 범행 증거를 확보했다.
의료 분야 리베이트 문제는 단순 영업행위를 넘어선 구조적 부패 비리로 지적된다. 의사가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약이 아니라 리베이트 규모에 따라 이른바 ‘밀어주기식 처방’을 택할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다. 결국 고가 약품이나 의료기기 사용에 따른 의료비 부담은 국민에게 전가되는 셈이다.
경찰 관계자는 “의료분야 리베이트 범죄는 피해자가 전체 국민인 만큼 의사 면허 정지, 취소 등 강한 행정처분이 뒤따라야 실질적 예방이 가능하다”며 “관련 첩보를 지속적으로 수집해 수사해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해 7월부터 지난 3월까지 부패비리 특별단속을 벌여 총 1997명을 송치하고 이 중 56명을 구속했다. 특히 금품수수로 구속된 인원은 31명(322명 송치)으로 가장 많았다. △리베이트(17명 구속·410명 송치) △재정비리(5명 구속·507명 송치) △부실시공(2명 구속·513명 송치) △채용비리(1명 구속·52명 송치) 등이 뒤를 이었다. 사하서의 사례는 전국 주요 리베이트 검거 사례 중 하나로 포함됐다.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