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당신은 '월급' 말고 무엇을 벌고 있는가

입력 : 2026-04-15 18: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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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버디 대기업 프로 재택러

직장이 주는 가장 귀한 보너스는
정과 느슨한 연대가 만나는 지점

학교에서 답 맞히는 법 배웠다면
직장에선 인간 사이 효능감 배워

인공지능이 대세가 될 미래 사회
이런 경험 자체가 사라질 가능성
소속감은 월급보다 더 귀한 가치

모든 것에 가격표가 붙는 세상이라지만, 우리 삶에는 죽어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비매품(Not for Sale)’ 영역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그의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시장의 논리가 도덕적 성역을 침범할 때 발생하는 가치의 훼손을 경고했다. 이 날카로운 통찰을 우리의 일터로 가져와 보자. 우리는 매일 노동력을 팔아 월급을 받는 시장 경제의 최전선에 서 있지만, 정작 직장이라는 공간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귀한 ‘보너스’는 우리가 회사와 체결한 연봉 계약서에는 적혀 있지 않다.

외국계 기업에서 재택근무를 하며 홀로 모니터를 마주하는 나는, 역설적이게도 이 차가운 디지털 환경 안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의 가치를 더 절실히 체감한다. 흔히들 대학을 지성의 전당이라 부르지만, 사회에 나와 보니 대학에서조차 가르쳐주지 않는 본질적인 것들은 모두 직장에서 동료들과 부대끼며 배운 것들이었다. 책장 속 이론이 아니라 사람의 온기가 섞인 노하우, 그리고 타인의 성장을 진심으로 돕는 마음 말이다.

나 역시 새로운 팀원이 합류하면 대학 강의실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실무의 ‘결’과 조직의 문화를 요약해서 건네곤 한다. 정답을 맞히는 법은 대학에서 충분히 배웠겠지만, 직장에서는 누군가의 빈틈을 메워주고 함께 속도를 맞추는 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겪은 시행착오를 기꺼이 나누고, 그 과정에서 동료가 건네는 진심 어린 감사 인사는 내 연봉 고과를 올리는 수치보다 훨씬 더 묵직하게 가슴에 남는다. 이는 성과 지표로 환산되지 않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느끼는 효능감이자 시장이 결코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영역이다.

이것은 단순히 ‘운이 좋아서 좋은 동료를 만났다’는 식의 감성팔이가 아니다. 샌델은 모든 인간관계가 거래로 치환될 때 생기는 공동체의 붕괴를 경고했다. 현대의 직장은 비단 노동력을 파는 장소를 넘어, 타인과 연결되는 법을 배우는 마지막 ‘인간 학교’로 기능하고 있다. 동료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서로 다른 부서임에도 새로운 기술이나 효율적인 일 문화를 나누며 뜨겁게 토론하는 순간들. 인센티브 몇 푼으로 유도할 수 없는 이 자발적인 유대감이야말로 시장의 논리가 침범해서는 안 될 삶의 품격이다.

더 나아가, 나는 우리가 지금 지겨워하는 이 ‘소속감’이 머지않은 미래에 가장 희소한 자원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AI가 업무를 자동화하고 1인 사업가들이 넘쳐나는 파편화한 세상이 오면, 타인과 부대끼며 공통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경험 자체가 일종의 사치가 될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지금의 출근길과 지루한 회의 속에서 나눴던 농담 한마디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흩어지기 쉬운 개인들이 모여 하나의 조직이라는 큰 그림을 그려내는 경험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욱 귀해질 수밖에 없다.

나 역시 화면 뒤에 숨어 일하는 재택러로서 고립의 위협을 늘 느낀다. 하지만 그렇기에 다른 팀 동료가 건네는 따뜻한 메시지 한 줄, 지식 공유 세션에서 느껴지는 동료애의 무게를 더 소중히 여긴다. 기성세대가 지켜온 끈끈한 조직 문화의 ‘정’과 우리 세대가 추구하는 ‘느슨하면서도 단단한 연대’가 만나는 지점. 그곳에 우리가 직장에서 벌어들여야 할 진짜 보너스가 있다.

기록은 전시될 때가 아니라 내면에 쌓일 때 역사가 되듯, 직장 생활의 가치 역시 통장 잔고가 아니라 내 영혼에 새겨진 관계의 깊이로 결정된다고 믿는다. 자본의 논리로 계산기를 두드려서는 결코 답이 나오지 않는 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끈한 화학 작용이야말로, 척박하고 냉혹한 경쟁 사회를 버티게 하는 진짜 연료인 셈이다. 이처럼 타인과 부대끼며 나의 모난 모서리가 둥글게 깎여 나가고, 동시에 누군가의 부족함을 나의 고유한 장점으로 채워주는 일련의 상호작용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기능적인 직업인 너머의 성숙한 ‘어른’으로 완성되어 간다. 모든 것이 상품이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 나다운 진정성을 잃지 않으려 분투하는 우리에게, 직장은 여전히 돈으로 살 수 없는 성장을 선물하는 고마운 공간이다.

이제 우리는 매달 찍히는 월급 통장의 숫자 너머를 바라봐야 한다. 세상이 당신의 가치를 직급과 연봉으로 매기려 들 때, “나는 이곳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배우고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효능감이야말로 전시되지 않는 은밀한 자부심이 된다. 거대한 시장이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 당신은 오늘 하루 월급 말고 또 무엇을 벌었는가. 당신의 마음 한구석에 결코 가격표를 허락하지 않은 ‘동료의 이름’ 하나쯤은 품고 있는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