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전통주 배달 시대

입력 : 2026-04-15 18: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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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넘긴다’는 뜻의 과하주는 발효주와 증류주를 섞어 보존성을 높인 한국식 포트와인이다. 지난 주말, 대저생태공원에서 열린 부산도시농업박람회에서 연잎과 초피나무 열매의 껍질을 넣어 독특한 풍미를 자랑하는 과하주를 만났다. 또 영도 조내기고구마를 곁들인 탁주, 강서구 쌀로 빚은 막걸리 등 진화하는 부산의 술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브루어리쏨을 비롯한 양조장 7곳은 지역 농산물을 재료로 개성 넘치는 미각을 뽐냈다. 집에 모셔 온 술병이 금세 바닥을 드러낸 것은 당연지사다. “이 귀한 술을 또 어디서…!” 감질이 났을 때 문득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산행기 취재를 위해 전국의 명산을 누비던 시절, 하산한 동네 식당에서 토산주를 반주로 들이켜는 호사를 누렸다. 본의 아니게 막걸리 기행을 했던 셈이다. 하지만 이내 전통주가 처한 안타까운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지자체가 지역 명주로 자랑하는 막걸리(탁주)를 갖춰 놓은 곳은 드문 대신 외지의 거대 주류업체 제품 일색이었던 것. 현지 양조장을 찾아 까닭을 물으니, 사정이 딱했다. 노부부가 직접 술을 빚고, 영업하고, 배달까지 해도 가격과 유통에서 대기업 경쟁 상대가 안 된다는 하소연이 돌아왔다. 대형 마트에 밀려 고사하는 골목 상권과 판박이였다.

하지만 팬덤은 힘이 세다. 수제 장인의 손맛을 음미하려는 애호가가 늘어나 전통주 구독 서비스가 등장한 것이다. ‘술담화’는 4만~5만 원의 구독료를 내면 입점한 2000종의 막걸리, 약주, 증류식 소주를 택배로 보내준다. 음식 페어링 요령과 양조장 스토리텔링 등 전통주 소믈리에의 안내는 덤이다. 단순 구매에 그치지 않고 ‘경험 소비’와 ‘취향 탐색’이 충성도를 높이는 구조다. 네이버 쇼핑 등 온라인 플랫폼과 연계한 ‘우리술한잔’도 마찬가지. 급기야 퀵 배송까지 등장했다. 배달의민족이 지난 연말 B마트를 통해 지역 소규모 양조장 술 배달을 시작했는데, 경쟁 배달 플랫폼인 쿠팡이츠까지 뛰어들었다. 낮에 주문을 넣으면 저녁에 집에서 ‘산 넘고 물 건너온’ 전통주를 음미할 수 있으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과음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던 회식 문화가 쇠퇴하고 집술·혼술이 선호되는 세태다. 관계의 매개체였던 술이 개인 기호품적 성격이 짙어지는 과정으로도 읽힌다. 판로를 뚫지 못해 고전하던 전통주가 플랫폼과 취향의 흐름에 올라타고 집 앞에 성큼 다가왔다. K술의 르네상스를 기대할 만하지 않을까.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