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창 박성희의 공연 모습. 본인 제공
부산 판소리의 대들보인 박성희 명창이 마침내 서울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다. 지역이 자랑하는 독보적인 판소리 공력을 중앙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자리다. 판소리계에서 상징적인 무대로 꼽히는 ‘전주세계소리축제’에 이어 국립극장까지 모두 완창하는 대기록을 세우게 되면서, 지역 국악사에 괄목할 만한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이 나온다.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수석과 부산시 문화재위원 등을 역임한 명창 박성희 선생은 오는 6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판소리 완창 무대를 갖는다. 이날 공연은 인터미션 15분을 포함해 약 3시간 동안 이어지며, 판소리 다섯 바탕 중 하나인 ‘수궁가’를 완창할 예정이다.
이번 무대에서 박성희 명창이 선보일 소리는 미산제 ‘수궁가’다. 미산제는 미산 박초월 명창이 자신의 독창적인 더늠(판소리에서 명창들이 새로 짜 넣은 상설 대목)을 더해 완성한 유파로, 애원성 가득한 성음과 화려한 시김새가 특징이다. 병든 용왕을 위해 토끼의 간을 구하러 세상에 나온 자라가 토끼를 용궁으로 유인하지만, 뛰어난 재치와 기지를 발휘한 토끼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는 서사를 담고 있다.
전라도와 충청도를 중심으로 명창과 유파가 체계적으로 발달해 온 판소리 지형도에서, 상대적으로 기반이 취약하다고 평가받는 영남권 출신의 소리꾼이 국립극장 완창 무대에 초청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박 명창의 예술적 성취가 중앙 평단에서도 높이 인정받았음을 증명한다.
박 명창은 유년 시절 ‘국창’ 김소희 선생에게 소리를 배우기 시작하며 재능을 드러냈고, 부산대학교 국악과로 진학하며 소리꾼의 길을 걸어왔다. 이후 전정민, 송순섭, 안숙선 등 당대 내로라하는 최고의 소리꾼들을 두루 사사하며 치열하게 공력을 쌓았다.
박성희 명창 프로필. 본인 제공
특히 ‘수궁가’는 박 명창의 소리 인생에서 큰 자부심이다. 웬만한 소리꾼도 평생 한 번 도전하기 어렵다는 완창을 부산에서만 이미 세 차례나 성공시켰다. 수궁가는 갖가지 동물이 등장해 각 캐릭터의 개성을 살려야 하므로 뛰어난 표현력이 필수적인데, 박 명창은 타고난 풍부하고 탄탄한 성음 덕분에 수궁가에서 독보적인 강점을 보인다. 여기에 한국무용을 전공한 이력 덕에 소리의 가락과 극적 감정을 손짓과 발짓으로 섬세하게 표현하는 ‘발림’ 역시 국내 최고 수준이라는 극찬을 받는다. 이러한 예술성을 인정받아 이미 2018년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수궁가 완창으로 메인 무대를 장식한 바 있다.
지역을 대표하는 소리꾼이라는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박 명창은 지금도 매일 4~5시간씩 홀로 수궁가를 토해내며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3시간이 넘는 대장정을 흐트러짐 없이 이끌어가기 위해 체력 관리도 병행하는 중이다.
박 명창은 “해양 도시인 부산의 지역적 맥락과 결을 맞추고자 ‘수궁가’에 깊이 집중했다”며 “소리꾼으로서 나이가 더 들기 전에 꼭 한번 국립극장 무대에 서고 싶다는 염원을 품어왔는데, 초청 전화를 받고 순간 기쁨과 놀라움이 교차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수도권이 아니더라도, 지역에서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소리의 길을 정진하면 반드시 예술적 명예와 결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이번 무대가 지역에서 묵묵히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하나의 이정표이자 등대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