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예술의전당과 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가 공동으로 제작한 오페라 ‘오텔로’ 공연 모습. 부산시는 최근 부산오페라하우스의 개관 공연으로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의 오페라 ‘오텔로’를 무대에 올리기로 했다. 부산일보DB
부산시가 부산오페라하우스의 개관 공연으로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의 오페라 오텔로를 무대에 올리기로 했다. 시는 오텔로의 3회 공연에 105억 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시 정책이니, 이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추진해 온 문화정책의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세계적 문화기관과 콘텐츠를 적극 유치해 부산의 도시 브랜드와 문화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부산시장 후보는 이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퐁피두센터 부산분관 건립과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 공연 예산을 ‘혈세 낭비’로 규정하며 관련 사업의 집행을 중단한 뒤 이른바 ‘부산 민생 100일 비상조치’에 재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부산의 문화정책을 둘러싼 최근 논란은 6·3 지방선거와 맞물리며 단순한 예산 공방을 넘어서는 양상이다. 특히 세계적 문화 프로젝트를 통한 도시 도약이냐, 민생 중심의 재정 재편이냐를 둘러싼 논쟁은 부산이 어떤 문화적 미래를 지향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말 준공, 내년 9월 개관을 목표로 건립 중인 부산오페라하우스 전경. 부산일보DB
■ 부산오페라하우스 정체성 고민을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의 문화정책 방향은 뚜렷하다. 세계적 문화기관과 콘텐츠를 적극 유치해 도시 브랜드와 문화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 추진, 해외 유명 건축가를 활용한 특별건축구역 사업, 그리고 라 스칼라 극장의 오텔로 개관 공연 추진까지, 그 흐름은 하나로 이어진다. 외부의 성공 모델과 세계적 브랜드를 부산으로 가져오면 도시 경쟁력도 함께 높아질 것이라는 인식이다. 물론 이런 접근 자체를 무조건 부정하기는 어렵다. 문화는 때로 외부 자극과 교류를 통해 성장하기 때문이다. 세계적 공연과 기관 유치는 도시 인지도를 높이고 관광 산업에도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국제도시를 지향하는 부산이 글로벌 문화 네트워크 구축에 나서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전략이다. 실제 세계 주요 문화도시들도 국제 교류와 협업 속에서 성장해 왔다.
문제는 지금 부산시의 정책이 교류보다는 외부 의존에 가까워 보인다는 점이다. 특히 라 스칼라 프로젝트는 그 상징성이 크다. 부산시는 개관 시즌에 약 105억 원을 투입해 오텔로 3회 공연을 추진할 계획이다. 지역 문화계에서는 “부산 예술인 지원 예산보다 더 많은 돈이 단 세 차례 외국 공연에 투입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예산은 부산문화회관 7개 극장의 연간 기획사업비의 수배에 이르고, 시립예술단 전체 사업비를 크게 웃도는 규모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액수 자체보다 그 막대한 비용이 부산의 문화 생태계에 무엇을 남기느냐에 있다.
개관 공연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 부산오페라하우스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시민에게 처음 선언하는 상징적 무대다. 결국 중요한 것은 “왜 지금 부산에서 이 작품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혹자는 이야기할 것이다. 오텔로가 부산과 전혀 무관한 작품이 아니라고. 바다와 항구, 폭풍 등 요소는 해양도시 부산과 일정 부분 맞닿아 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상징만으로 부산의 문화적 정체성을 충분히 담아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구나 이번 개관 공연은 부산이 자체 제작한 콘텐츠가 아니라 라 스칼라의 완성된 작품을 들여오는 방식이다. 개관작은 오랫동안 부산오페라하우스의 정체성을 규정할 상징으로 남는다는 점에서 더욱 신중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만약 지역 예술가와 기술진이 제작 과정에 참여하고, 개관 시즌 전체를 부산의 해양성과 연결하는 기획으로 확장하고, 공연 이후 지역 레퍼토리와 교육 프로그램으로 이어지는 구조까지 그렸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세계적 극장 초청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지역 생태계 성장과 어떻게 연결하느냐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없었다. 한 발짝 양보해 개관 창작 오페라로 논의되었던 ‘새야 새야’가 오텔로와 동등한 상징성을 가지고 함께 추진됐다면 논란은 덜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점에서 박 후보는 뼈아픈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 “부산오페라하우스는 과연 부산만의 콘텐츠를 축적할 준비를 해 왔는가”, “수년간의 준비 기간 지역 창작 오페라와 제작 시스템, 인재 양성 시스템을 얼마나 구축했는가?”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부산일보DB
■ 문화 투자 자체 위축 불러올 수도
그렇다고 전재수 후보의 접근 역시 결코 건강해 보이진 않는다. 어쩌면 더 위험한 발상일 수도 있다. 전 후보는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과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 공연 예산의 집행을 중단한 뒤 이를 민생 예산으로 돌리겠다고 했다. 확보한 재원을 통해 영세 화물차주 지원, 공공요금 부담 완화, 전통시장·소상공인 에너지 바우처 지급, 동백전 캐시백 확대 등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시민 생활 안정을 위한 정책은 정말 필요한 정책이다. 이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따로 있다. 문화 예산을 사실상 ‘불요불급한 비용’, 즉 필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은 예산처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문화정책을 지나치게 협소한 시각으로 해석하는 접근이다. 문화 투자를 도시 미래를 위한 전략적 투자로 보기보다 경기 상황이 어려우면 언제든 삭감할 수 있는 비용 정도로 인식한다는 얘기다. 이런 시각이 확산될 경우 문화 투자 자체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는 ‘기업 하나 유치하는 것이 미술관이나 박물관 하나 세우는 것보다 낫다’라는 식의 단순 경제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오늘날 도시 경쟁력은 기업 숫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어떤 문화적 자산을 갖고 있으며, 시민들이 어떤 문화적 경험을 누릴 수 있는가가 도시의 품격과 미래 가치를 좌우하는 시대다. 이런 측면에서 두 사업을 모두 중단하고 관련 예산을 민생 예산으로 돌리겠다는 구상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문화 예산을 줄여 단기 민생 예산으로 돌리는 방식은 정치적으로 즉각적인 호응을 얻을 수는 있다. 하지만 도시의 장기적 성장 기반을 잠식할 위험도 크다. 더 심각한 것은 전 후보의 발언 어디에서도 “그렇다면 부산 문화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잘못된 사업을 비판하는 것과 문화 투자 자체를 위축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문화정책 예산 안에서의 수평 이동이나 세부 항목 조정, 사업 방식에 대한 구체적 대안 없이 막연히 ‘민생 예산’을 언급하는 것은 결국 표 계산에만 치우친 접근처럼 비친다. 이는 지역 문화예술계에 대한 무성의 일 분 아니라, 그동안 퐁피두 사업을 비판해 온 이들에 대해서도 무책임한 태도로 읽힌다. 적어도 부산시장 후보라면 단순한 찬반 구도에 갇혀서는 안 된다. 문화는 도시의 사치품이 아니다. 도시 경쟁력을 구성하는 핵심 자산이다. 이점을 전 후보가 분명히 알았으면 한다.
이탈리아 밀라노 오페라극장 ‘라 스칼라’ 전경. 부산일보DB
■문화 관점서 도시 고민해 줄 사람 필요
박 후보는 세계적 문화기관과 외부 브랜드 유치에 지나치게 기대고 있고, 전 후보는 문화 예산을 우선순위에서 밀려도 되는 비용처럼 접근하고 있다. 문화정책은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결국 두 후보 모두 균형 잡힌 문화정책이라고 할 순 없다. 외부 문화 자원과 지역 문화 생태계 육성은 충돌하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함께 가야 할 상호 보완 전략에 가깝다. 부산에 필요한 것도 ‘라 스칼라를 부를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단순한 찬반 논쟁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공연 이후 부산에 무엇이 남느냐다. 지역 제작 인력은 성장하는가, 시민들의 문화 경험은 확장되는가, 부산만의 콘텐츠는 축적되는가, 그리고 그것이 지속 가능한 시스템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가 핵심이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 사례가 보여주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대구는 해외 유명 공연 초청에 그치지 않고 지역 성악가와 제작 인력을 육성하며 창작 오페라를 꾸준히 축적해 왔다. 화려한 건물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움직이는 운영 시스템이며, 일회성 이벤트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 문화 생태계라는 점을 보여준다.
부산은 오랜 시간 다양한 문화가 교차해 온 항구 도시였다. 이제는 외부의 명성과 브랜드를 빌려오는 데서만 머물 것이 아니라, 스스로 콘텐츠를 기획하고 축적하는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 더욱이 지금은 K컬처가 세계 문화시장을 움직이는 시대가 아닌가. 중요한 것은 국적이 아니라 얼마나 탄탄한 서사와 콘텐츠를 만들어 내느냐다. 서구의 오페라라 하더라도 부산만의 해석과 지역의 문화적 역량이 더해진다면 세계인의 관심을 끄는 작품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문제는 그런 상상력이 들어갈 틈이 없다는 점이다. 부산오페라하우스가 추진된 지난 수년간 부산은 과연 어떤 콘텐츠와 문화 생태계를 축적해 왔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부산의 두 시장 후보를 보고 있노라면 정작 그 전략을 설계할 문화전략가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정치적 공방은 요란하지만, 정작 부산의 문화적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부산시장 후보들 곁에는 과연 이 도시의 문화적 미래를 함께 고민할 사람이 있는가?”라고. 지금 문화는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는 핵심 전략이 됐다.
정달식 부산일보 논설위원. 부산일보DB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