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최근 기록적인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증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뜨겁다. 코스피는 2월 25일 역대 처음 6000선을 뚫은 지 2개월 만인 이달 6일 사상 첫 7000선 고지를 밟았다. 12일엔 장중 7999.67까지 올랐지만, 외국인의 순매도로 하락하며 8000선 돌파는 좌절됐다. 하지만 인공지능(AI)으로 촉발된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몇 년간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면서 글로벌IB와 증권사들은 코스피 지수가 1만 포인트까지 갈 수 있다는 예측도 내놓는다. 글로벌 빅테크를 중심으로 반도체 수요가 폭발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익 전망치가 갈수록 상향 조정되고 있어서다.
코스피가 기록적인 상승세를 이어온 것은 AI 밸류체인을 중심으로 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천문학적 영업이익, 퇴직연금 계좌를 통한 상장지수펀드(ETF) 투자 활성화, 중동 전쟁 종전 기대감이 커진 4월부터 순매수로 돌아선 외국인 투자, 정부의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에 대한 기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동안 시장 변동성에 취약했던 개인투자자들의 패턴도 달라졌다. 코스피 지수가 오르는 날엔 주식을 순매도하며 차익을 실현했고, 지수가 큰 폭으로 조정받을 땐 저가 매수에 나서면서 증시 방어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세대 전반으로 투자 열풍이 번지는 것도 큰 흐름이다. 노년층은 직접 투자를 위해 증권사를 앞다퉈 방문해 계좌를 개설하고, 부모가 자녀 명의로 계좌를 만들어주면서 미성년자들의 투자 증가세도 가파르다고 한다. 주식시장이 자산 축적의 새로운 플랫폼으로 떠오른 것이다.
주가지수 상승은 기업 실적과 성장 전망이 개선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가운 신호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증시 활황의 환호 뒤에 가려진 우려의 그림자도 짙다. 무엇보다 코스피 상승의 온기가 모든 투자자에게 고르게 퍼지지 않고 있다. 주가 활황세가 반도체 ‘투 톱’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쏠려 있다는 것은 부담이다. 두 기업이 증시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40%를 넘어섰다. 1분기 경제성장률(1.7%)에서 반도체 제조업의 기여도는 무려 55%에 달한다.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1분기 수출액(2199억 달러) 역시 전년 대비 139%나 폭증한 반도체 독주에 힘입은 바가 크다. 한국 경제의 반도체 의존증이 깊어지는 것이다. 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주도주를 보유하지 않은 투자자는 이를 체감하기 어렵다. 중소형주와 코스닥 전반이 약세를 보이고, 오른 종목보다 내린 종목이 더 많으면서 증시의 ‘K자형 양극화’도 심화하는 상황이다.
개인투자자들의 위험천만한 ‘빚투’ 행렬은 걱정이다. 증시 호황에 나만 뒤처지는 것처럼 느끼는 ‘포모’(FOMO) 심리가 확산하면서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사상 처음으로 36조 원을 넘어섰다. 신용거래융자는 투자자가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린 후 아직 갚지 않은 금액을 말한다. 이는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에 증권사 대출을 받아 주식을 산 투자자가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다. 경제 기반이 취약한 2030 젊은 세대와 자산을 보수적으로 운용해야 할 5060 시니어 세대의 빚투 규모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은 심각하다. 빚까지 내 주가가 급등한 대형주에 뒤늦게 뛰어드는 행태는 시장 조정기가 닥치면 막대한 가계 부채 부실과 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반도체 호황이 다른 산업 전반에 미치는 ‘낙수효과’는 아직 미미하다. 지난 3일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1분기 반도체 생산은 전 분기보다 14.1% 증가했지만, 다른 제조업 생산은 0.2% 늘어나는 데 그쳤다. 수도권은 반도체 산업 호황에 따른 소득 증가로 소비가 확대되지만, 부산을 비롯한 지역의 중소기업, 자영업자, 소상공인에겐 다른 나라 얘기나 다름없다. 실물 경제와 금융시장 간 괴리가 심각한 것이다. 자산시장만 호황인 채 실물 경제는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는 성장동력을 잠식할 수 있다. 금융시장이 지나치게 경제를 과점하는 현상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반도체가 아직 한국 경제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불확실성도 크다. 중국을 비롯한 경쟁국의 추격, 대미 투자·통상 환경 변화,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공급망 불안은 위험 요인이다. 기술 초격차 유지를 위해서는 더 과감한 투자와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특히, 성과급을 둘러싼 삼성전자의 노사 갈등이 파업과 반도체 생산 차질로 이어져선 안 된다. 정부는 반도체 호황에만 취해 있을 것이 아니라,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사라질 때를 대비해야 한다. 반도체 일변도에서 벗어나 미래 성장 엔진 발굴과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지금의 환호가 미래의 눈물이 되지 않도록 냉철한 정책 실행이 필요한 때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