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호르무즈 해협 안쪽에 갇혀 있던 한국 선박 26척 중 한 척이 한국 정부와 이란 당국 간 협의를 거쳐 해협을 통과 중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중인 HMM의 유조선 ‘유니버설 위너’호. 마린트래픽 캡처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 여파로 봉쇄된 호르무즈 해협에 갇힌 한국 선박 가운데 한 척이 개전 뒤 처음으로 무사히 빠져나왔다. 해협 봉쇄 이후 80일 만이다. 호르무즈 해협엔 아직도 25척의 한국 선박이 남아있다. 체류 중인 우리 선원도 116명에 달한다. 이란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협상으로 소강상태를 보이지만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가 추가 공습 주장을 굽히지 않는 등 불확실성은 커져만 가는 상황이다. 더욱이 이달 초엔 우리 선박인 나무호가 불상의 비행체 2기로부터 연쇄 피격을 당해 자칫 침몰할 뻔한 아찔한 상황까지 발생했다. 이런 와중에 한 척이라도 무사하게 안전지대로 진입한 것은 무척 다행스럽다.
부산으로 본사를 이전하는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 HMM이 운용하는 30만 톤 급 초대형 원유운반선 유니버설 위너호가 지난 20일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왔다. 한화오션에서 건조해 2019년 HMM에 인도한 유니버설 위너호는 다음 달 10일 국내 하루 소비량에 육박하는 원유 200만 배럴을 싣고 울산항에 입항할 예정이다. 한국인 선원 9명과 외국인 선원 12명이 탑승한 이 선박은 한국 정부와 이란 당국 간 협의를 통해 별도 비용 지불 없이 통행 허가를 받았다. 지난 4일 HMM의 벌크선 나무호가 피격되면서 극도로 경직된 한국과 이란 관계가 돌파구를 찾아 결실을 낸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호르무즈 해협에 억류된 우리 선박의 선원들은 긴장감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더욱이 이들은 나무호 사건 이후에도 안전을 확약받지 못한 채 해협 통과를 위해 대기 중이다. 외교부는 유니버설 위너호의 해협 통과를 계기로 남은 우리 선박들의 안전과 통항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속도다. 정부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억류 선원과 선박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이란 측의 확답을 받아내야 한다. 하선 없이 현지에서 묵묵히 임무를 수행 중인 한국 선원들의 피로도가 한계에 달한 만큼 특사 추가 파견 등 외교채널을 총동원해 이 문제를 최대한 빨리 매듭지어야 한다.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 통행 선박을 선정하면서 선원 수와 한국 도착 화물 여부를 기준으로 삼았다. 이로 인해 호르무즈 해협에 남은 중소선사 선원들은 향후 구출 선순위에서 뒤로 밀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억류 25척 가운데 10척은 중소 해운사 8곳 소속이다. 중소선사 선박은 2만t 이하라서 탑승 선원 수도 대형 선박보다 상대적으로 적고 도착지도 한국이 아닌 경우가 많다. 특히 중소선사들은 장기 억류로 도산 위기 등에 내몰릴 가능성도 큰 상황이다. 정부는 이란과 향후 협상으로 통행 순위를 정할 경우 이런 점을 적극 고려하길 바란다. 지금은 남아있는 한국 선박과 선원의 무사 귀환을 위한 총력전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