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치의 운명을 가르는 승부처는 늘 부산이었다.
민주화의 거센 바람이 불 때도, 지역주의의 높은 벽에 균열이 생길 때도, 정권을 향한 경고와 심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올 때도 부산은 가장 먼저 움직였다. 그리고 6·3 지방선거를 이틀 앞둔 지금, 부산은 다시 선거의 최대 격전지이자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에 섰다.
이번 선거에서 여당은 “무능한 지방권력 심판”을, 야당은 “이재명 정권 독주 저지”를 내세우며 부산·울산·경남(PK)에 총력을 쏟고 있다. 여권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부산을 찾아 민심을 훑었고, 야권에서는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이 잇따라 지원 유세에 나섰다. 이는 이번 선거에서 부산이 갖는 정치적 무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여야가 부산 승리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명백하다. 부산의 선택이 단순한 지역 선거의 결과를 넘어 향후 정국 흐름과 차기 권력 지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수치로 드러나는 득표율을 넘어 최종적인 승패를 가르는 것은 민심의 방향성이다. 그리고 그 방향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곳이 부산이다.
부산을 흔히 보수의 텃밭이라고 하지만, 부산의 정치적 DNA는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복합적이다. 부산의 유권자들은 특정 진영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이나 묻지마식 투표와는 다른 양상을 보여왔다. 오히려 현실 정치의 변화와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필요할 때마다 과감한 선택을 해왔다. 합리와 실용을 중시하는 온건 보수 성향을 바탕으로 하되, 권력이 오만해졌다고 판단하면 주저 없이 회초리를 들고 정권과 정치권을 심판했다.
실제로 부산의 표심은 한국 현대 정치사의 주요 변곡점마다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에는 민주화 운동의 거점이 되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통해서는 지역주의 장벽을 허무는 정치 실험의 진원지가 됐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에 사상 처음으로 지방권력을 맡기며 정치 지형을 뒤흔들었고, 이후 시정 운영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다시 보수 정당에 힘을 실어주며 균형추를 이동시켰다. 사실상의 ‘스윙 스테이트’에 가까운 셈이다.
이번 선거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부산시장 선거와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라는 두 개의 굵직한 승부가 동시에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 선거의 결과는 단순한 지역 권력 재편을 넘어 여야 내부의 정치 지형에도 상당한 파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부산시장 선거는 부산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분기점이다. 민주당 전재수 후보가 승리한다면 부산은 오거돈 전 시장 이후 다시 한번 민주당에 지방권력을 맡기게 된다. 이는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민주당이 부산 시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능력이 있는지 다시 시험대에 오른다는 의미를 갖는다. 오거돈 시정 당시 부산시는 리더십 공백과 시정 혼란, 각종 정책 차질로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당시 실패를 극복하고, 달라진 민주당 시정을 보여줘 안정적인 지역 기반을 다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된다.
반대로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가 승리한다면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 가덕신공항 적기 개항, 산업은행 부산 이전, 부울경 행정통합 등 현 시정의 주요 현안을 완수할 추진력을 시민들로부터 재확인받게 된다. 나아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위축된 보수 진영을 재정비하고 차기 권력 재창출을 위한 보수 대통합의 중심축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도 작지 않다.
북갑 보선은 이미 보수 진영 내부의 차기 주도권 경쟁 양상으로 번진 상태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무소속 한동훈 후보가 민주당 하정우 후보와 국민의힘 박민식 후보를 제치고 선두를 기록하면서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만약 한 후보가 승리한다면 국민의힘 지도부 책임론과 함께 보수 진영 재편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보수 분열이라는 악조건을 뚫고 부산에서 독자 생존에 성공할 경우, 한 후보는 보수 진영의 차세대 주자로서 존재감을 확고히 하며 PK를 기반으로 차기 대권 가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반대로 여권이 승리한다면 낙동강 벨트에서의 영향력 확대와 함께 보수 진영의 자중지란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이번 선거는 부산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어떤 도시를 후손에게 남길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다. 정당 간 승패를 넘어 도시의 미래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동시에 부산을 비롯해 PK 선거 결과는 대한민국 정치 지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여당이 선전한다면 정부와 여권 지도부는 국정 운영 동력을 더 강하게 확보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야당이 방어에 성공하거나 반전을 만들어 낸다면 정권 견제론이 힘을 받게 된다. 결국 PK는 단지 지역 선거의 무대가 아니라 차기 정치 질서를 가늠하는 시험대인 셈이다.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