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일 실시된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보궐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선거관리 부실은 큰 충격을 안겼다. 선거 당일 일부 유권자들은 참정권을 침해받았다. 선거 결과 자체를 뒤흔들 중대한 위법이 있었는지는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관리 부실만으로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사안이다.
국민들은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해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이 이런 기본적인 준비도 하지 못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됐다. 불신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처음 생긴 것이 아니다. 최근 수년 동안 선관위는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 의혹으로 사회적 비판을 받았다. 선거 공정성을 수호해야 할 기관이 채용의 공정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다. 감사원의 감사 과정에서 선관위는 헌법기관의 독립성을 이유로 감사에 반발했고, 이를 둘러싼 논쟁은 결국 헌법재판소 판단까지 이어졌다. 국민들은 ‘독립성은 강조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지금 선관위 문제는 국가 기관 신뢰의 문제다. 신뢰가 흔들리자 ‘선관위 해체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선관위 해체는 쉽지 않다. 선관위는 정부 부처가 아니다. 헌법 제114조가 직접 설치를 규정한 헌법기관이다. 대통령도, 국회도, 정부도 선거를 마음대로 좌우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헌법이 특별히 만든 독립기관이다. 우리 헌정사는 관권선거라는 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과거 권력이 선거를 통제하고 결과에 영향을 미쳤던 시대를 경험했기 때문에 헌법은 선거를 독립기관이 관리하도록 설계했다. 따라서 선관위를 없애려면 법률 개정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문제는 해체 이후다. 선관위를 없앤다고 해서 선거관리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선거를 관리하면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생길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맡으면 지역별 편차가 발생할 수 있다. 법원이 맡는다면 사법부의 정치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결국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것은 선관위 해체보다는 선관위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개혁’이다. 독립성은 외부 간섭을 막기 위한 장치이지, 국민적 통제를 받지 않는 절대적 특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독립성 없는 선거관리는 권력의 도구가 될 수 있고, 책임성 없는 독립기관은 국민 신뢰를 잃게 된다.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지금 생각해 볼 수 있는 현실적인 개혁의 방향은 아래와 같다.
첫째, 인사와 채용 절차를 전면 공개해야 한다. 모든 채용 절차를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공개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감사 결과와 징계 결과 역시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둘째, 선거관리 과정에 대한 국민 참여형 감시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 현재 선거 참관인 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실제 역할은 제한적이다. 개표 과정뿐 아니라 투표용지 인쇄, 운송, 보관, 폐기까지 전 과정에 시민·학계·법조계가 참여하는 공개 검증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셋째, 선거관리 실패에 대한 책임 체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투표용지 부족과 같은 관리 부실이 발생하면 단순한 유감 표명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원인 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은 물론이고, 책임 있는 공직자에 대한 인사 조치 등 법적 책임까지 명확히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 선관위원 구성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현재 중앙선관위원은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추천하거나 지명한다. 제도적 균형을 고려한 구조이지만 정치권과 법조계 중심이라는 비판도 있다. 향후에는 정보기술 전문가, 선거 행정 전문가, 시민사회 대표 등이 참여하는 추천 절차를 마련해 다양성과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다섯째, 선거 시스템에 대한 상설 검증 기구를 도입해야 한다. 오늘날 선거는 전산망, 통합선거인명부, 개표 장비 등 다양한 기술이 활용된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음모론과 불신을 막기 위해서는 선관위 설명보다 독립적인 전문가 검증이 필요하다. 정보보안 전문가와 대학 연구 기관이 참여하는 상설 검증 기구를 통해 시스템을 정기적으로 공개 점검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선진 민주국가들의 선거관리 방식은 다르다. 그러나 공통점은 하나다. 선거관리 기구가 국민 신뢰를 잃으면 민주주의도 흔들린다는 사실이다. 국민 신뢰를 잃은 국가 기관은 오래 지속할 수 없다. 국민은 완벽한 기관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실수를 인정하고, 책임을 지고, 스스로를 개혁하는 기관을 원한다. 선관위가 지금 해야 할 일도 마찬가지다.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다. 그러나 꽃은 저절로 피지 않는다. 건강한 토양이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그 토양은 헌법과 제도에 기초한 국민의 신뢰다. 지금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해체 논쟁이 아니라 공정성과 책임성의 회복일 것이다. 그 요구에 응답하지 못한다면 선관위의 위기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