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또이따 박성혜 대표(사진 왼쪽)와 수카페 박수현 대표.
몸이 아프고 난 뒤 음식의 의미가 달라졌다. 자극적인 맛보다 몸이 편안한 음식을 찾게 됐고,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중요해졌다. 병을 이겨내기 위해 시작한 식탁은 어느새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식탁이 됐다.
맨 위부터 박성혜 대표가 유기농·친환경 식재료로 직접 만든 불고기 파누오쪼, 유자 바질 파운드, 무화과 파운드, 브리타 치즈 샌드위치, 파누오쪼. 또이따 제공
“살기 위해 건강한 음식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고, 그때 체감한 치유의 경험을 많은 분께 전하기 위해 이 공간을 차렸습니다.” 대학교수로 일하다 명예퇴직한 뒤 부산 금정구에서 카페 또이따를 운영하고 있는 박성혜 대표의 말이다.
올해로 개업 7년 차를 맞은 또이따는 디저트·브런치 애호가, 업계에서는 ‘조용한 강자’다. 특별한 마케팅 없이 ‘좋은 재료로 만들어 맛있고 먹고 나면 속이 편하다’는 입소문만으로 코로나19 대유행도 버텼다. 인근 주민은 물론, 부산·경남 곳곳에서 주변에 별다른 명소가 없는 이곳까지 ‘원정’을 온다. 스마트 스토어를 통한 온라인 판매에는 서울·수도권이 전체 주문량의 80%가량을 차지한다. 2022년엔 레시피와 카페 경영 노하우 등을 가르치는 과정(꼬르또또)도 개설했다. 박 대표는 “처음에는 ‘가격이 비싸다’는 손님들도 쓰이는 재료나 들어가는 정성을 보고는 주변에 ‘오히려 가성비가 좋다’고 알린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또이따에서 판매하는 빵과 과자, 청, 브런치 등 모든 메뉴에 유기농 혹은 친환경 재료만 사용한다. 자연스레 원료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수치는 밝히기 어렵지만 통상적인 매장에서 판매하는 상품의 원가가 제품 가격의 30% 수준이라면, 이를 훨씬 넘는다고 한다. 직접 연구한 레시피에 맞는 수작업으로 맛을 더 높인다.
박 대표에게 카페는 단순히 음료와 디저트를 파는 곳을 넘어 치유의 공간이다. 좋은 재료로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면 맛은 물론, 건강에도 좋을 수밖에 없다는 게 박 대표의 신념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도 마진이 얼마 남지 않거나, 거의 없는 경우도 있다. 박 대표는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만든 음식이 누군가의 건강과 행복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얻는 기쁨이 훨씬 크다”며 “원산지 하나가 바뀌어도 맛과 영양 모두 달라지기 때문에 쓰는 재료와 들이는 정성은 타협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아교육, 그중에서도 그림책 등 유아문학을 전공한 박 대표는 신라대학교 유아교육과에서 약 30년간 강단에 섰다. 재직하며 수많은 예비 교사를 길러낸 박 대표는 2021년 8월 대학에서 명예퇴직했다. 2019년 4월 또이따를 차린 뒤 아들에게 맡겼던 운영에 본격적으로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아직 정년까지 수년이 남은 시점이었다. 남편도 박 대표에게 퇴직하는 게 아깝지 않은지 넌지시 물었다. 박 대표는 “교수로 일하면서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이른 퇴직이 후회되지는 않았다”며 “변수를 통제하고 그에 따른 변화를 분석하던 연구자로서의 습관이 레시피 연구에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해 11월 박 대표는 설암 진단을 받고 수술해야 했다. 박 대표가 수술대에 오른 건 처음이 아니었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던 박 대표는 학부를 마친 뒤 대학원에 갓 진학한 1987년 무혈성 괴사증으로 처음 수술받았다. 골반이 무너져 내리는 심각한 병이었다. 박 대표는 이때를 시작으로 5년 전까지 총 8차례 크고 작은 수술을 받았다. 1991년 대학원 졸업 후 수술을 받고는 재활에만 꼬박 1년이 걸릴 정도였다.
박 대표가 고된 투병과 재활의 시간을 견디며 무너지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던 건 ‘빵’이었다. 아픈 탓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엄습하던 박 대표에게 손으로 직접 빵과 과자를 빚고 굽던 시간은 그 자체로 위로이자 치유였다. 박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막연한 선망의 대상이었던 제빵을 배우고 싶은 마음에 목발을 짚고 부평시장 인근의 제빵학원에 다녔다. 당시 박 대표를 지도했던 강사는 일취월장하는 박 대표의 솜씨를 보면서 나중에는 수강료를 받지 않고, 유학을 권할 정도였다. 박 대표는 “수업이 끝나면 시장에서 산 재료를 들고 집에서 실습했다”며 “당시 집에는 별다른 설비가 없고 가스 오븐이 전부였지만 좋아하는 일이니까 그 시간에 몰입하며 아픈 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타인을 행복하게 할 수 있길 바란다. 본인의 행복을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 박 대표는 “재료도 중요하지만 정성이 담긴 음식은 분명 치유력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커피를 내리기 전에 이 커피를 마시는 모든 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길 기도한다”며 “레시피도 꾸준히 연구해 몸에 좋은 음식은 맛이 없다는 편견을 깨고 싶다”고 말했다.
박수현 대표가 차려낸 음식들. 위부터 과일 핑거푸드, 엔다이브 리코타 슈림프, 초록홍합 세비체, 6월 한식 브런치 한 상, 수제 소스 야채 스틱 모둠. 수카페 제공
몸이 아프고 나서야 음식의 속도를 알게 된 사람이 있다. 부산 해운대 달맞이길의 ‘수카페’에서 제철 재료로 한식 한 상을 차려내는 박수현 대표는 “한 끼 때우는 식사가 아니라 편안하게 머물다 가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수카페 주방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다. 강된장 케일 쌈밥, 두릅전, 구운 채소 샐러드, 소불고기, 달고기 튀김, 초록홍합 세비체 등 계절 식재료를 활용한 음식이 상에 오른다. 메뉴는 정해져 있지 않다. 그날그날 시장에서 가장 좋다고 느낀 재료로 식탁을 꾸린다.
박 대표는 오후 영업을 마치면 다시 시장으로 향한다. 여러 가게를 돌며 채소를 만져보고 생선을 살핀다. 그는 “시력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좋은 재료를 알아보는 눈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다.
그런 습관은 엄마에게서 배웠다. 식당을 운영했던 엄마는 매일 새벽 ‘빨간 고무 다라이’를 들고 버스를 타고 시장으로 향했다. 엄마는 “음식은 정직해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그는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었는데 지금은 엄마 마음을 알 것 같다”고 말했다.
11년째 식당을 운영 중인 박 대표는 원래 바비큐 중심의 파티 공간을 운영했다. 싱가포르에 살던 시절 현지인들에게 한식을 대접하는 일이 즐거웠던 그는 한국에 돌아와 한식 자격증을 취득했고, 서울을 오가며 푸드코디네이터 사범 마스터 과정을 이수했다. 음식의 맛은 물론 색감과 플레이팅, 공간의 분위기까지 고민하는 지금의 식탁은 그때부터 완성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닥쳤고 신장암 진단까지 받았다. 이후 조직 검사에서는 암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지만 수술대에 오른 경험은 음식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는 “몸이 아픈 일을 겪고 나니 음식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자극적인 음식도 즐겼지만 지금은 가공식품과 강한 양념을 멀리한다. 식당들을 찾아다녀 봐도 마음 놓고 먹을 만한 곳이 많지 않았고, 결국 자신이 먹고 싶은 건강한 밥상을 직접 차리게 됐다.
그가 말하는 건강식은 거창하지 않다. 좋은 재료를 고르고, 천천히 조리해 정성껏 차려내는 것. 그는 이를 ‘좋은 재료에 정성 한 스푼’이라고 표현했다. 식당은 손이 많이 가는 한식 특성상 예약제로 운영한다. 그는 “급하게 하면 놓치는 부분들이 많다”며 “손님들도 천천히 식사하면서 편안하게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래 기억에 남는 손님도 있다. 한 손님이 음식을 많이 남겨 입맛에 맞지 않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자신이 암 말기 환자라고 털어놨다. 그 손님은 “죽고 싶은 마음으로 왔는데 오늘은 정말 행복하게 먹었다”며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갔다고 했다. 박 대표는 “그런 일을 겪으면 식당을 쉽게 그만둘 수 없다”고 말했다.
해운대 특성상 외국인 손님도 많다. 크루즈 관광객 등 외국인 손님에게 개별 상차림으로 한식을 내놓는데 반응이 좋다. 박 대표는 “그 한 끼가 한국의 이미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음식에 대한 자부심으로 준비한다”고 말했다.
매일 아침 식당 문을 열 때마다 그는 여전히 “이걸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흔들린다고 했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몸이 고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시장에서 제철 재료를 고르고 주방에 서는 순간 다시 마음이 움직인다고 했다.
식당 문을 닫은 오후면 그는 또 시장으로 간다. 새벽마다 시장으로 향하던 엄마의 길을 이제는 자신이 걷고 있다고 했다.
박 대표는 “음식을 하면서 매일매일 엄마를 다시 만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몸이 아프고 난 뒤 그는 맛있으면서도 먹는 사람의 몸이 편안한 음식을 고민하게 됐다. 그리고 오늘도 그 마음으로 다음 식탁을 준비한다.
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 ,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