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최근 금융산업 경쟁력 강화와 금융시장 선진화를 통한 국민경제 발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전주를 제3 금융중심지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책이 과연 ‘금융중심지의 조성과 발전에 관한 법률’(이하 금융중심지법)의 본래 취지인 국제금융 기능 강화와 글로벌 금융허브 육성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금융중심지법에 따라 서울과 부산이 각각 금융중심지로 지정된 지 이미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우리는 여전히 선진 금융중심지와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해양·파생금융 특화라는 방향을 설정한 부산의 경우, 세계적 수준의 금융 클러스터로 성장했다고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글로벌 금융기관의 집적이나 자본시장 경쟁력 등 주요 지표에서 여전히 갈 길이 먼 상황에서 또 하나의 금융중심지를 추가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선택인지 고찰해야 한다.
금융산업의 본질은 정보와 인재, 자본이 집중될수록 효율성이 강화되는 ‘집적’에 있으며, 뉴욕이나 싱가포르 등 세계 주요 금융도시들은 모두 강력한 집적 효과를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 반면 우리나라의 정책은 집적보다는 분산의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미 서울과 부산으로 나뉘어진 구조 속에서도 충분한 시너지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는데, 여기에 전주까지 추가하는 것은 자원의 분산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금융기관과 전문인력, 정책적 지원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질 때 어느 한 곳도 경쟁력 있는 금융허브로 성장하기 어려워지며, 이는 결국 ‘모두가 약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현재 추진되는 전주의 제3 금융중심지 논의는 금융산업 발전 논리보다는 사실상 지역균형발전 논리가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금융공기업 이전과 공공기관 재배치를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구상은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의 취지에 가깝다. 즉, 명칭은 금융중심지이지만 실제 성격은 ‘지역개발 정책’인 셈이다.
금융중심지법은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함이고, 균형발전 특별법은 지역 간 격차 해소를 위함이기에 목적이 다른 두 정책을 혼용하면 설계의 기준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금융 발전을 목표로 한다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도시를 집중 육성해야 하고, 균형발전이 목표라면 산업 분산을 통해 지원하는 것이 맞다. 두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려 할 때 정책은 애매해지고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게 된다. 다소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지금의 논의는 목적과 수단이 뒤섞여 있어 정책 자체의 정당성과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부산은 금융중심지 지정 이후 10년이 넘도록 글로벌 금융기관 유치와 생태계 구축이라는 거의 불가능한 난제 앞에서 무기력했고, 정책적 일관성과 집중성이 부족해 관심이 분산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금융중심지를 만드는 것은 부산이 제대로 성장하기도 전에 경쟁력을 약화하는 정책적 자기부정과 다름없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지정이 아니라 정책 목표의 명확한 재정립이다.
정부는 대한민국 금융정책의 최우선 목표가 국제금융 경쟁력 강화인지, 아니면 지역균형발전인지를 분명히 선택해야 한다. 전자라면 서울과 부산에 대한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며, 후자라면 금융중심지법이 아닌 균형발전 정책의 틀 안에서 접근해야 개념적 혼선을 막을 수 있다. 명확한 기준 없는 추진은 불필요한 지역 갈등을 유발하고 국가 전체의 효율성을 저하한다. 정부는 더 이상 두 목표를 혼합한 모호한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되며, 법의 목적에 충실할 것인지 방향을 전환할 것인지 결단해야 한다. 그 명확한 선택 위에서 법과 제도를 정교하게 설계할 때 비로소 지역 갈등을 최소화하고 실질적인 국민경제 발전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