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13일은 특별한 날로 기억된다. 런던에 소재한 국제해사기구(IMO)에서 최초로 ‘국제 해운의 온실가스 감축 초기 전략’을 채택한 역사적인 날이기 때문이다. 선박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총량을 2050년까지 2008년 대비 50% 이상 감축한다는 것이 그 골자이다.
그 당시 필자는 IMO 본회의장에서 우리 정부 수석대표로 참석하여 규제를 강화하려고 하는 EU 등 선진국의 움직임과 이를 늦추려는 사우디, 이란 등 산유국 그리고 아르헨티나 등 중견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며 회의 마지막 날 극적으로 타협하는 순간을 현장에서 목도할 수 있었다.
그때 든 생각은 ‘이제 조선·해운 산업의 국제 패러다임이 바뀌는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왔구나’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잘 나가던 우리 조선 산업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불어닥친 글로벌 해운 불경기의 영향으로 2018년 무렵에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으나, IMO발 친환경 국제 규제로 다시 한번 되살아나는 일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2023년 IMO는 한 발 더 나아가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넷제로 목표에 합의했다. 감축 초기 전략 채택 이후 8년이 지난 현재 우리 조선 산업은 친환경 선박 등의 발주량 증대로 최대 호황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제 친환경·탈탄소로의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은 항만도 예외가 아니다. 녹색 해운 항로(Green Shipping Corridor) 구축에서 볼 수 있듯이 탄소중립의 가치는 선박뿐 아니라 항만에서 뒷받침될 때 그 효과가 배가되기 때문이다.
세계 주요 항만들은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싱가포르는 친환경 선박 연료 공급 허브 구축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고 있으며, 로테르담항은 수소와 암모니아 기반 에너지 생태계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항만이 화물 처리 공간을 넘어 미래 에너지 산업을 이끄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항도 이러한 변화를 선도하기 위해 ‘탈탄소와 에너지 자립 항만’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부산항만공사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며 지속 가능한 항만의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첫째는 친환경 선박 연료 벙커링 인프라 구축이다. 부산항을 찾는 친환경 선박은 2020년 9척에서 지난해 315척으로 불과 5년 만에 35배가 늘었고, 2030년 800척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부산항만공사는 신항 남컨 배후 단지에 LNG·메탄올 벙커링 터미널 구축을 통해, 동북아를 대표하는 친환경 연료 공급 거점으로 도약하고자 한다.
둘째는 육상 전원설비(AMP) 구축이다. 선박이 항구에 정박해 있는 동안 엔진을 가동하면 대기 오염 물질과 온실가스가 배출되는데 이 기간 동안 선내 엔진을 가동하지 않고 육상 전력을 사용함으로써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부산항만공사는 현재 11개 선석에 설치된 AMP 시설을 2032년까지 32개 전 선석으로 확충할 계획이다.
셋째는 재생에너지 도입이다. 부산항만공사는 항만 유휴 부지와 시설을 활용한 태양광 발전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한 부산항 인근에 해상 풍력 발전도 구상 중에 있다. 이렇게 생산한 에너지를 항만 운영에 직접 활용하여 탄소 감축과 함께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고 친환경 항만 구현에 속도를 내고자 한다.
넷째는 친환경 장비 전환 사업이다. 기존 화석 연료 기반의 야드 트랙터 등 항만 장비를 전기와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는 장비로 단계적으로 교체할 예정이다. 하역 장비에서 나오는 탄소 배출이 항만 전체 배출량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이 전환은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핵심 과제다. 이는 항만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줄이는 동시에 운영 효율성 향상에도 기여할 것이다.
이런 노력은 단순히 환경을 위한 투자가 아니다. 글로벌 공급망 변화와 국제 규제 강화에 대응하고 부산항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전략이다. 친환경 연료 공급, 정박 선박의 탄소 배출 저감, 재생에너지 생산, 친환경 하역 장비 전환. 이것이 부산항이 준비하는 ‘2050 탄소중립’의 로드맵이다.
개항 이후 150년 동안 부산항은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관문 역할을 수행해 왔다. 디지털 전환과 함께 탈탄소 전환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부산항만공사는 정부와 지역사회, 해운·항만 업계와 긴밀히 협력하며 부산항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친환경 항만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부산항이 세계가 주목하는 지속 가능한 항만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탈탄소 전환의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