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문송' 없는 회사

입력 : 2026-07-21 18: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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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합니다’(문과라 죄송합니다)라는 유행어가 나온 지도 10년이 넘었다. 취업시장에서 이공계에 비해 홀대받는 문과 출신의 아픔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말이었다. ‘인문계의 90%가 논다’는 뜻의 ‘인구론’도 마찬가지 의미다. ‘문송’이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국내 산업구조가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수출형 제조와 IT산업 위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인문계 출신의 구직난은 대학의 인문계열 학과 통폐합, 교육·연구 수준 저하, 인문학 경쟁력 약화, 고교생의 인문계 기피, 취업률과 재학생 충원율 저조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국가 연구개발 정책도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에 집중되면서 인문 분야 연구는 융합이나 보조적 역할에 머물렀다.

이공계 전공자가 취업에 유리한 현실에서 효성그룹이 창립 60년 만에 처음으로 인문계 전공자만 뽑는 신입 특별 채용에 나섰다. 이 회사는 지난 13일부터 22일까지 인문대학과 문과대학 학·석사 학위 취득자와 올해 8월 졸업 예정자를 대상으로 채용 서류를 접수 중이다. 사학·철학·미학을 비롯한 인문학 계열과 국어국문·영어영문 등 어학 계열 전공자가 대상이다.

섬유화학, 중공업 등에 주력하는 효성그룹이 정기 공채가 있는데도 창사 첫 문과생 전용 공채에 나선 것은 최근 급변한 사업 구조 때문이다. 효성은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AI데이터센터와 송배전 인프라 투자가 급증하면서 전례 없는 수주 호황을 누리고 있다. 글로벌 사업이 많아지면서 그룹 매출의 80% 이상이 해외에서 나온다. 주요 계열사인 효성티앤씨와 효성화학의 지난해 수출 비중은 각각 90%와 70%를 웃돈다. 효성중공업의 전력기기 사업의 수출 비중도 50% 이상이다. 효성의 글로벌 사업장은 30개국 120여 곳에 달한다. 이를 반영해 해외 현지 문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인문학적 소양, 어학 능력을 갖춘 글로벌 인재를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인문학을 통해 기술을 이해하지 않으면 세상의 흐름을 읽을 수 없다’는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의 경영 철학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AI 시대가 고도화할수록 기업에선 기술개발뿐 아니라 고객을 이해하고 시장을 읽고 문화를 연결하는 인문학적 역량을 갖춘 인재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문영’(문과를 환영합니다)을 내세운 효성그룹의 파격적인 행보가 신선하다. AI 시대 제조업 인재상에 대한 변화를 촉발하는 신호탄이 될지 궁금하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