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레일부터 바다여행선까지…고래 숨결 따라 떠나는 여정 [장생포고래문화특구]

입력 : 2026-08-06 17:30:54 수정 : 2026-08-06 17:42:11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프린트

‘안목이’ 보듬은 고래 수도, 생태 특구 대전환
박물관 거대 골격·돌고래 모자의 수중발레
레트로 골목 거닐고 시속 40㎞ 카트 쾌감
바다 여행선 타고 유영하는 참돌고래떼 감상
가족 숙소 ‘고래잠’ 개장… 체류형 관광 완성

울산 남구 장생포고래문화특구에서 모노레일을 탑승하면 울산항과 석유화학단지, 조선소 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오상민 기자 울산 남구 장생포고래문화특구에서 모노레일을 탑승하면 울산항과 석유화학단지, 조선소 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오상민 기자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 2층에서 사육사와 큰돌고래 4마리가 교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상민 기자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 2층에서 사육사와 큰돌고래 4마리가 교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상민 기자

강릉 안목해변에서 구조된 남방큰돌고래 ‘안목이’가 긴급 이송 치료지로 찾아온 곳은 울산 남구 장생포다. 전문 고래 연구진과 의료진, 전용 격리 수족관 인프라를 한곳에 갖춘 국내 유일의 고래 생태 거점이기 때문이다. 과거 고래를 잡던 포구가 이제는 상처 입은 야생 돌고래를 보듬고 치료하는 따뜻한 생명 구호의 보금자리로 거듭난 셈이다.

장생포와 고래의 인연은 기원전 선사시대까지 슬그머니 올라간다. 세계문화유산인 반구대 암각화에 각인된 다채로운 고래와 생생한 포경 장면에서 알 수 있듯 이곳은 한반도 고래잡이의 역사적 원류였다. 조선 태종 때인 1407년에는 군사적 요충지로 ‘장생포만호영’이 설치되기도 했다. 구한말 러시아 포경선들의 해체장이 들어선 데 이어 일제강점기에는 근대 포경의 전진기지로 번창했으며, 광복 이후에도 전국 미식가들이 고래고기를 맛보기 위해 몰려들던 동해안 대표 포구였다.

그러나 무분별한 포획으로 고래 개체수가 급감하면서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 협약에 따라 상업 포경이 전면 금지됐고, 왁자지껄하던 항구는 순식간에 쇠퇴의 길을 걸었다. 특히 1962년 장생포동 납도에서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이 거행된 이후 주변에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와 석유화학단지가 들어서면서 장생포는 거대한 공장지대에 둘러싸인 ‘도심 속 섬’으로 오랫동안 격리됐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던 장생포는 2008년 국내 유일의 고래문화특구로 지정되고 고래바다여행선이 닻을 올리면서 반전을 맞이했다. 고래를 잡던 포구에서 고래와 공존하는 바다로, 쇠퇴한 옛 마을에서 생태·레저·문화가 어우러진 해양 관광 특구로 대전환을 이룬 장생포의 현장을 직접 거닐었다.

장생포 고래문화마을에서는 1960년대 포경 전성기 시절 장생포 마을을 조망할 수 있다. 오상민 기자 장생포 고래문화마을에서는 1960년대 포경 전성기 시절 장생포 마을을 조망할 수 있다. 오상민 기자

■가까이서 본 돌고래, 모노레일 타고 바라본 산업항

장생포고래문화특구의 출발점은 고래박물관이다. 1층 기획전시실을 지나 반구대 암각화 전시관에 들어서면 암각화의 발견 과정과 새김법,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다. 전시실 한쪽에는 어미 태반에서 분리된 북방밍크고래의 희귀 액침 표본과 빛바랜 포경 출항 사진들이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한다. 계단을 따라 3층 전시관으로 올라서면 참고래와 대왕고래 등 거대한 고래 뼈 전신 골격과 고래 수염, 옛 포경 항해일지가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한다. 2층으로 내려오는 관람 동선에서는 박물관의 대표 상징물인 브라이드고래 전신 골격과 옛 포경선 진양 5호의 실물 포문을 바로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야외에 전시된 실물 포경선을 지나 옆 건물인 고래생태체험관으로 발길을 옮긴다. 1층 해저 터널에 들어서자 머리 위 투명한 수조 속으로 큰돌고래 4마리가 유유히 헤엄쳐 지나간다. 2017년 장생포에서 태어난 아들 ‘고장수’와 엄마 ‘장꽃분’이 꼭 붙어 다정하게 지느러미를 맞대는 모습은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옆으로는 까치상어와 둥근리본꼬리가오리, 알록달록한 자리돔과 나비고기 무리가 노니는 어류 수족관이 펼쳐진다. 2층 수면 관람장에서는 사육사와 교감하며 활력 넘치는 물보라와 숨소리를 뿜어내는 돌고래 생태설명회가 열려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한다.

생태관 관람을 마치면 장생포 전역을 순환하는 모노레일이 기다린다. 모노레일에 몸을 싣고 고지대로 오르면 창밖으로 잔잔한 장생포 앞바다와 함께 인근 조선소의 웅장한 크레인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생태 관광지와 역동적인 산업 현장이 공존하는 울산 남구만의 독특한 해안 경관이다.

장생포고래박물관 내 고래 골격. 오상민 기자 장생포고래박물관 내 고래 골격. 오상민 기자
공중그네 웨일즈 스윙. 남구도시관리공단 제공 공중그네 웨일즈 스윙. 남구도시관리공단 제공

■1970년대 레트로 골목길과 바람 가르는 카트

모노레일에서 중간지점인 고래문화마을에 내리면 1960~1970년대 옛 장생포 마을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정겨운 옛 골목길과 점포, 학교, 옛집들을 거닐며 레트로 여행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마을 주변은 스릴 넘치는 액티비티로 활기가 넘친다. 총연장 1.05km 트랙을 최고 시속 40km로 달리는 ‘웨일즈카트’에 몸을 실으면 약 1분 30초 동안 바닷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쾌감을 맛볼 수 있다. 트랙 주변으로 만개한 수국 꽃길과 바다 전경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남구 주민은 50%, 울산시민은 20% 할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지상 14m 높이에 설치된 동력식 공중그네 ‘웨일즈스윙’도 인기다. 허공을 가르며 울산대교와 울산만의 파노라마 뷰를 조망하는 경험은 아찔한 스릴을 더한다. 최근 1만 번째 탑승객을 맞이하며 현장의 열기를 입증했다.

장생포는 총사업비 453억 원 규모의 남부권 광역관광 개발사업을 통해 한층 더 진화하고 있다. 1.1km 익스트림 ‘코스터카트’, 지상 20m 높이의 공중 보행교 ‘고래등길’, 해양 터널형 미디어파사드를 선보일 복합 공간 ‘The Wave’, 옛 해상교통관제센터 부지를 활용한 ‘죽도’ 관광 자원화까지 순차적으로 준공되며 체험형 인프라를 한층 다채롭게 확장하고 있다.

고래문화마을 내 과거 고래를 해체하는 장면의 모형을 관광객이 구경하고 있다. 오상민 기자 고래문화마을 내 과거 고래를 해체하는 장면의 모형을 관광객이 구경하고 있다. 오상민 기자

■바다 위 야생 돌고래 탐사, ‘고래잠’에서 완성되는 1박 2일

장생포 탐방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고래바다여행선이다. 주 14회(탐사 12회, 야간 연안 2회) 운항하는 여행선에 올라 장생포 남동쪽 19km 해상으로 나아가면 야생 돌고래를 만나는 행운이 기다린다. 승선객 201명은 지난달 30일 30분간 바다를 힘차게 유영하는 참돌고래떼 200여 마리를 목격하는 장관을 경험했다. 지난달 24일과 25일, 28일에도 각각 200여 마리에서 500여 마리의 참돌고래 무리가 연이어 발견되는 등 출몰 빈도가 크게 높아졌다.

바다 탐사를 마친 뒤에는 과거 수산물 냉동창고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장생포문화창고로 이동한다. 맞은편 19m 높이의 SK 저유탱크 4기를 거대한 캔버스로 활용한 미디어파사드 ‘장생포 라이트’가 밤하늘을 수놓으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밤이 깊어도 집으로 바쁘게 발길을 돌릴 필요가 없어졌다. 지난달 29일 정식 영업에 들어간 장생포 첫 가족형 숙소 ‘고래잠’이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지상 3층, 연면적 761㎡ 규모로 옛 해군 숙소를 리모델링해 조성한 고래잠은 총 11개 객실(기준 4인, 최대 6인)을 갖추고 가족 단위 관람객을 맞이한다. 비성수기 평일 5만 원, 성수기 주말 8만 원선의 합리적인 비용으로 공원 한가운데서 밤을 보낼 수 있다.

그동안 놀거리와 볼거리는 풍성하지만 숙박 시설이 부족해 당일치기에 그쳤던 장생포는 고래잠의 등장으로 비로소 ‘1박 2일 체류형 관광지’의 마지막 퍼즐을 맞췄다. 낮에는 생태 관람과 스릴 넘치는 카트를 즐기고, 밤에는 잔잔한 산업항의 야경을 바라보며 머무는 장생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체류형 해양 휴양지로 힘차게 도약하고 있다.

오상민 기자 sm5@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