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람이 왜 강릉에? 부산과는 또 다른 재미 있으니까!

입력 : 2026-08-07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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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여행
동해역서 정동진역 구간 바다 경치 백미
하슬라아트월드서 미술 감상 재미 쏠쏠
강문해변 우락부락 근육맨 눈구경 호사
안목해변서 맛보는 고급 원두커피 별미

부산 사람들은 대한민국 대표 여름 피서지 부산에 산다. 그 사실이 뿌듯하지만 그렇다고 기다렸던 여름휴가에 부산에만 머물 수는 없지 않은가. 어디로 갈지 고민 끝에 부산 사람들에게 각광받는 여행지로 새롭게 떠오른 강원도 강릉으로 결정했다. 동해선 전 구간이 지난해부터 개통한 덕분이다. 고속열차인 KTX-이음이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추가로 투입되면서 부산에서 강릉까지 이동 시간이 기존 5시간대에서 3시간 50분대로 가까워졌다. 부전역에서 당일치기 소풍 가는 마음으로 강릉행 첫 차에 올랐다.


정동진역 역사를 배경으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정동진역 역사를 배경으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부전역을 출발한 KTX-이음은 태화강역-경주역-포항역-영덕역-울진역-삼척역-동해역-묵호역-정동진역을 거쳐 강릉역에 도착한다. 동해선이라는 이름답게 포항역을 지나면서부터 간간이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동해역에서 정동진역 사이 구간의 경치는 백미였다. 기차는 해안선과 거의 맞닿아 달렸고, 창밖 바로 앞까지 파도가 밀려오는 듯했다. 사람들이 이 맛에 동해선을 타는구나 싶었다. 낯선 바다를 만나러 강릉에 자주 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모래시계 소나무’가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정동진역을 지키고 있다. ‘모래시계 소나무’가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정동진역을 지키고 있다.

정동진역은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기차역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밀물과 썰물에 따라 달라지지만, 승강장 플랫폼에서 백사장까지 거리가 3~5m 안팎에 불과하다. 사실 정동진역은 탄광들이 문을 닫으면서 이용객이 급감해 폐역까지 고려되던 작은 시골 역이었다. 사람 팔자 시간 문제라더니, 1995년에 방영된 드라마 ‘모래시계’의 흥행이 정동진역의 운명을 극적으로 바꿔 전국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다. 드라마에 나왔던 ‘모래시계 소나무’는 오늘도 변함없이 정동진역을 지키고, 사람들은 정동진역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에 여념이 없다.


정동진해변 오른쪽 해안 절벽 위에 크루즈선 모양의 건물 썬크루즈리조트가 보인다. 정동진해변 오른쪽 해안 절벽 위에 크루즈선 모양의 건물 썬크루즈리조트가 보인다.

정동진역은 해변과 바로 이어진다. 정동진해변 오른쪽 해안 절벽 위에는 배 모양의 건물 썬크루즈리조트가 보인다. ‘모래시계’ 이후 한적한 어촌 마을에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들자 세워진 리조트다. 조선소에서 건조한 크루즈선을 산 정상 절벽 위에 올려 만들었다고 한다. 미국 CNN이 세계에서 가장 이색적인 호텔 중 하나로 선정했다지만, 산 위에 배라니 너무 뜬금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레고 블록 같은 철골 구조물이 하슬라아트월드 호텔이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레고 블록 같은 철골 구조물이 하슬라아트월드 호텔이다.

요즘처럼 살인적인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면 여행도 힘에 부친다. 계속 밖으로만 다니기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중간에 넣어주는 게 좋다. 강릉에는 마침 하슬라아트월드가 있다. 하슬라(何瑟羅)는 삼국시대에 강릉을 부르던 옛 이름이다. 하슬라아트월드는 조각공원과 현대미술관, 피노키오&마리오네트 박물관 등의 전시 공간과 레스토랑, 바다 카페, 호텔 등의 시설이 함께 모여 있는 문화복합시설이다.


피노키오&마리오네트 박물관에서는 각종 피노키오를 만날 수 있다. 피노키오&마리오네트 박물관에서는 각종 피노키오를 만날 수 있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레고 블록같이 만든 하슬라아트월드 호텔이 먼저 나타났다. 강릉이 만든 예술의 세계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사람들이 바다를 배경으로 철로 만든 대나무숲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알고 보니 거대한 파도의 물거품을 형상화한 설치 작품이었다. 이번에는 피노키오&마리오네트 박물관이라는 동화의 세계에 들어갔다. 마리오네트는 인형의 마디마디 관절에 실로 매달아 사람이 위에서 조종하는 줄인형을 말한다. 마리오네트 인형 중에 가장 유명 인사가 바로 피노키오다. 크고 작은 온갖 피노키오가 다 여기 모여서 놀고 있었다. 피노키오의 공통점은 기다란 코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진다는 것은 거짓말이 금방 드러난다는 의미다.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상반신이 땅속에 묻혀 있는 조각 작품.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상반신이 땅속에 묻혀 있는 조각 작품.

야외 조각공원에서 뜻밖에도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상반신이 땅속에 묻혀 있는 조각 작품을 만났다. 최옥영 작가가 엄숙한 우상화를 깨뜨리고, 위인들을 땅과 자연의 일부로 다시 들여놓고자 의도한 대지 미술이라고 한다. 하슬라아트월드는 조각가 박신정·최옥영 씨 부부가 만들었다. 이들 부부는 “전시장과 같은 울타리를 벗어나 예술과 자연이 어우러진 모습을 통해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 보자는 취지로 대지 미술을 선보이고 있다”라고 말한다. 황룡사 목탑을 만들었다는 장인 아비지의 이름을 딴 아비지 특별 갤러리에서는 다채로운 설치미술과 조각 작품을 만날 수 있다. 3만 3000여 평의 산기슭에 조성된 하슬라아트월드의 가장 큰 매력은 바다를 배경으로 다채로운 현대미술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강문해변 머슬비치에서 링 운동을 하고 있다. 강문해변 머슬비치에서 링 운동을 하고 있다.

이번에 강릉에 가면 꼭 보려고 점 찍어 둔 곳이 있었다. 한국의 머슬비치(Muscle Beach)로 소문난 강문해변이다. 원조 머슬비치는 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몸을 키운 곳으로 유명한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해변이다. 같은 운동도 남들이 보면 더 잘하고 싶어지는게 인지상정이다. 아놀드도 “사람들이 지켜보고 환호할 때 근육으로 피가 몰리는 펌핑감이 극대화되었다”라고 말했다.

강문해변 머슬비치는 지난 2023년 세인트존스호텔 앞에 조성됐다. 해변에는 철봉, 링, 평행봉 등이 설치됐다. 운동 기구 23종이 설치된 별도의 야외 헬스장도 365일 무료 개방한다. 답답한 실내가 아니라 시원한 바다를 바라보며 운동한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링 운동에 한 번씩 도전해 보지만 다들 몸이 마음 같지 않은 모습이다. 머슬비치에서 만난 우람한 근육맨들은 ‘헬캉스(헬스+바캉스)’가 요즘 새로운 트렌드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23종의 운동 기구가 설치된 별도의 강문해변 머슬비치의 야외 헬스장. 23종의 운동 기구가 설치된 별도의 강문해변 머슬비치의 야외 헬스장.

지난 2024년 해운대해수욕장에 설치한 ‘머슬존’도 강문해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강문해변에는 앞으로 종합격투기(MMA) 경기에서 사용하는 철조망 케이지와 요가 매트도 설치해 복합 스포츠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해수욕장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끊임없이 변신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커피 도시’ 강릉 여행에서 커피를 빼놓을 수 없다. 강릉시는 2009년부터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커피 축제를 열고 있다. 나흘간 열리는 커피 축제에 방문객만 50만 명이 넘는단다. 2016년 한국 관광의 별에 선정된 안목 해변 ‘강릉 커피 거리’에 가보기로 했다. 횟집이나 즐비할 해변에 어쩌면 이렇게 커피집이 모여들었는지 신기하다. 알고 보니 1980~90년대 안목해변은 커피 자판기 거리였다. 동해 바다를 보며 따뜻하고 달달한 믹스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운치 있는 데이트 코스로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안목 해변 자판기 주인들은 개성 있는 레시피를 선보여, 자판기마다 줄을 서서 마실 정도로 독특한 자판기 문화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1세대 바리스타이자 핸드드립의 거장인 박이추 씨가 2004년 강릉에 보헤미안을 연 게 결정적인 전기였다. 이어서 테라로사 등 로스터리 카페와 커피 공장이 곳곳에 문을 열며 강릉이 고급 원두커피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안목 커피 거리 최초의 커피숍인 커피커퍼는 커피박물관을 잘 꾸며 놓았다. 보헤미안 본점에서는 박이추 씨가 지금도 하루에 커피 100잔 이상을 내린다. 그가 라오스에 직접 조성한 커피 농장에서 수확한 원두로 만든 진하고 클래식한 맛의 ‘프렌치 라오스’ 커피를 한잔 맛보았다. 쓴맛과 단맛을 연이어 느끼면서, 인생이란 무엇인지 잠깐 생각해 봤다.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이름난 주문진 방사제.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이름난 주문진 방사제.

강릉 구경을 마친 뒤에는 주문진으로 향했다. 여름 피서철 강릉의 숙박비가 치솟아 차로 20~25분 정도 떨어진 주문진에서 숙박하는 게 낫다고 판단해서다. 해안 도로를 타고 달리다 보니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이름난 주문진 방사제가 나왔다. 파도의 흐름을 조절해 해변의 모래가 깎여 나가는 것을 막는 방사제라는 게 있었다. 주문진 방사제는 여전히 사람들이 몰려 사진을 찍는 핫스팟이었다. 잘 된 드라마 한 편이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도깨비방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문진 수산시장의 모습. 주문진 수산시장의 모습.

강릉에는 공식적으로 지정된 해수욕장이 18개나 된다. 강릉의 해변은 부산에 비하면 백사장이 끊기지 않고 하나로 연결된 것처럼 느껴졌다. 해변이 다 똑같지 않았다. 다른 세상을 만났다. 부전역에서 강릉까지 KTX-이음은 하루 세 번 출발한다. 오전 7시 50분에 출발해 강릉에 오전 11시 40분에 도착하면 여행하기에 가장 좋다. 다들 사정이 비슷하니 이 시간 대 표가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가장 먼저 매진된다. 강릉으로 갈 때는 오른쪽 창가 좌석(D 열)을 선택해야 바다를 바로 볼 수 있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