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의 생각의 빛] '지금-여기-나'를 잡아서 가는 길

입력 : 2026-08-06 18: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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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며칠 전 집에서 버스를 타고 서너 코스 정도 되는 거리에 있는 도서관에 간 적이 있다. 이사 오고 1년 정도 지났지만 처음 들른 도서관이었다. 요즘 부산시와 교육청 산하 도서관이 예전에 비해 많이 생겨 주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내부 시설도 쾌적하고 맞춤형 학습과 도서 이용 코너가 효율적이고 기능적으로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큰 수고를 들이지 않고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 인문·종교 서적 서가들이 입체적으로 놓여 있는 사이에 독서를 위한 소파형·테이블형 공간이 마련되어 자리를 잡아 들고 온 책을 읽었다. 방학 기간이라 그런지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중장년층들도 많이 보였다. 10대부터 70대까지 아우르는 생활 문화공간으로서 도서관이 차지하는 기능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매 순간 삶 모여 과거·현재 만들지만

현존하는 나에 대한 새삼스러운 자각

존재 만족 높이고 정신적 풍요 전해

숨소리조차 죽여가며 각자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는 풍경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독서문화’란 말이 고풍스럽게 느껴질 만큼 요즘엔 그런 말조차 들리지 않는다. 책 읽는 습관이 문화로 자리 잡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 ‘교양’과 사람 사이의 괴리가 컸는지 생각한다. ‘책’이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문자 해독 능력을 갖춘 사람이 거의 없었을 때만 하더라도 책은 마치 보석이나 되는 것처럼 아무나 들춰볼 수 없었다. 지식인들은 책을 읽으며 자신의 사고와 가치관을 점검하고 정리하였다. 책과 거리가 멀었던 대부분은 어렵사리 구한 책을 돌려가며 세상의 이치와 지혜를 엿보곤 했다. 첨단 기술이 만연한 오늘날에는 종이책뿐만 아니라 전자책으로도 널리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지식이 넘쳐흘러 이제는 사실과 거짓의 경계마저 구분하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주는 유익함은 단지 책을 읽게 하는 기능을 넘어선다. 책을 읽는 시간과, 이 시간을 부여해 주는 공간이 어우러져 책 속의 세계를 온전히 자신의 마음속으로 낚아채는 곳이다.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온 다양한 방면의 지식과 지혜가 종이에 글자로 기록되어 있는 도서관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장소요, 오지 않은 미래가 현재 속으로 꿈틀거리며 손을 내미는 공간이다. 여기에 온전히 집중하는 ‘나’가 있다. 비단 책을 읽을 때만 해당되지 않는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흐름을 타고 ‘미래’를 향하여 항해하는 항해사이기도 하지만, 다르게 보면 다시 붙잡아 둘 수 없는 시간(과거)과 아직 찾아오지 않은 시간(미래)을 걱정하거나 앞질러 고민하지 않아도 ‘여기’와 ‘지금 이 순간’과 ‘나’가 자명하게 현존한다는 자각만으로도 충분히 존재 만족을 누리는 길이 됨을 알 필요가 있어 보인다.

모처럼 고요한 산사의 명상처럼 책장 넘기는 서걱거림만이 비규칙적으로 들리는 종합열람실을 다시 둘러본다. 제각각 들여다보는 책들이 테이블 위에 드문드문 놓여 있다. 이용자들이 지나다니거나 앉아서 책장을 넘기는 풍경이 사뭇 낯설게 보인다. 그리고 나를 돌이켜 본다. 내가 있는 2층과 연결된 별관에 들러 시원한 커피를 사들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태양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7월 말의 산 중턱에 순간을 붙잡는 자명한 존재들이 모여 있다. 집중해서 읽는 글자들이 어떤 때는 기지개를 켜듯 선과 곡선이 꿈틀거리기도 한다. 혹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자음과 모음을 걸치거나 사이사이로 생겨났다 사라지기도 한다. 글자가 내미는 의미와 맥락을 정리하면서 시원하게 만들어 내는 진실들이 오늘 하루를 맞이하는 내게 일말의 소식을 전한다. 이 소식은 잊지 않고 늘 때때로 챙겨야 하는 정신의 알약이 될 것이다.

도서관을 나와 시내 방향으로 조금 걸어 내려오다 같은 성당을 다니며 평신도 모임에서 함께 활동했던 분이 운영하는 식당에 들렀다. 대여섯 평 남짓한 조그만 식당이지만 주메뉴인 시래깃국이 별미라 고정 단골이 여럿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주인은 지인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있었다. 오랜만에 내민 얼굴이라 정신없이 인사를 주고받고 자리에 앉으니 고등어찌개가 맛있게 되었다며 권한다. 평신도 모임을 열렬하게 다니면서 신앙심을 키웠던 주인은 지금은 교회에 다닌다고 했다. 그러고는 어쨌거나 믿는 존재는 한 분이니 별 상관이 없다는 말을 하였다. 나도 마땅히 주인의 의견에 동참하면서 맞장구를 쳤다. ‘지금 순간’에 들어오는 명확한 사실만이 중요하다. 종교를 ‘갈아탄’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를 믿고 의지하든 명쾌하게 바로 이것이라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이 사실이야말로 ‘지금-여기-나’를 온전히 느끼면서 명백하게 현존을 실감하는 자리다. 책을 읽든, 말을 하든, 행동을 하든, 판단을 내리든 그러한 진실 하나쯤은 무더위를 이겨낼 시원한 부채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