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선 공약으로 ‘행정수도 이전’이 급부상한 뒤 2004년 헌법재판소가 ‘관습헌법’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들이대며 행정수도 이전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리자 논란이 불거졌다. 수도권에서는 ‘국가 분열’이라는 극한 언사를 동원해 어깃장을 놓기 시작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정부는 ‘행정수도’라는 단어 대신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명칭을 들고 나왔다. 도시 이름도 ‘세종특별자치시’로 바꾸는 살뜰함을 보였다. 실질적인 내용은 중앙행정기관의 대규모 이전이었지만 ‘수도’라는 단어를 제거함으로써 단순한 행정 효율화로 분식(화장)을 한 것이다.
지금은 지역 균형발전이 대한민국의 살 길이라는 대의명분이 되었기 때문에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라는 용어를 공공연히 사용하지만 이 용어도 한때는 금기어 취급을 받았다. 2000년대 중반 공공기관 이전 정책이 추진되자 해당 기관 직원과 가족 등이 ‘강제 추방’ 운운하며 반발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이전은 이 때문에 한동안 ‘혁신도시 조성’이란 이름으로 분식이 됐다.
역시 지금은 정부가 드러내 놓고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보유세 인상을 언급하지만 과거에는 조세저항을 우려한 정부가 곧바로 세금 인상이라는 이름의 정책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공시가격 현실화'라는 이름으로 로드맵을 내세우는 방법을 택했다. 세율 자체를 손대지 않고 과세표준을 바꾸는 방식으로 다주택자와 고가 주택 보유자들만 해당한다는 점을 부각시킨 고차원적 분식에 해당한다.
이 같은 명칭 변경은 고육책으로 이해할 수 있겠으나 본질을 가린다는 측면에서는 분식일 수밖에 없다. 쓰레기 소각장을 자원회수시설이라거나 하수종말처리장을 물재생센터라고 한다 해도 본질은 바뀔 수가 없다.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의 명칭을 산업용 지역 전기요금제로 바꿨다. 가정용까지 적용된다는 혼란을 막기 위해 공식적인 명칭 통일을 한 것이라는 설명을 했지만 지역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뭉개며 본질을 비튼 개명으로 보인다. 지구에서 가장 원전이 밀집해 있는 동남권의 실정을 감안해 전기요금을 합리화해야 한다는 지역의 요구는 일단 가정용 배제로 반쪽이 됐다. 남은 산업용 전기요금도 지금 나온 정부안으로는 전기요금 차등 필요성이 제기된 시점의 절박함조차 반영되지 못하는 것 같다. 분식을 넘어 아예 성형을 해버렸다고나 할까.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