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히 더운 여름이 언제 끝날까? 아직도 낮 기온은 30도를 웃돌고 밤에는 열대야가 계속된다. 미래를 고려하면 올해 여름이 가장 시원하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더운 날씨로 깊이 잠들지 못하고 꿈도 자주 꾼다. 내친김에 꿈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꿈으로 성공한 과학자들에 관해서 말이다.
두 가닥의 실로 바느질하는 재봉틀을 개발한 사람은 19세기 미국의 기술자인 하우이다. 하우의 수입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아내는 삯바느질로 생계를 도왔다. 하우는 아내의 고생을 덜어주기 위해 바느질 기계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두 개의 실이 구멍을 통과하면서 함께 박히는 기계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하우, 꿈에서 재봉틀 발명 실마리 발견
멘델레예프, 영감 얻어 주기율표 완성
케쿨레, 벤젠 구조 발표 뒤 꿈 언급 논란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꿈에서 얻어졌다. “어찌 된 영문인지 나는 식인종들 앞에 끌려가 1시간 안에 재봉틀을 만들지 못하면 사형에 처한다는 엄명을 받았다. 아무리 궁리했으나 그 기계의 발명이 쉽지 않아 나는 사형장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식인종이 창을 겨누며 다가왔다. 햇빛에 창끝이 반짝이고 있을 때, 나는 창끝의 조금 넓적한 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나는 ‘바로 이거야!’라고 외치면서 번쩍 정신을 차려 잠에서 깨어났다.”
하우가 주목한 것은 바늘구멍의 위치였다. 보통의 바늘에는 실을 꿰는 구멍이 뒤쪽에 있는데, 원주민의 창에서는 앞쪽에 구멍이 있었던 것이다. 하우는 원주민의 창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결국 그는 바늘의 앞쪽에 구멍을 내고 거기에 윗실과 밑실을 꿰어 두 가닥의 실로 겹바느질을 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하우는 친구로부터 돈을 빌려 시제품을 만든 후 1846년에 재봉틀에 대한 특허를 받았다.
‘화학의 문법’으로 여겨지는 주기율표도 꿈의 산물로 알려져 있다. 19세기 러시아의 화학자인 멘델레예프는 당시에 알려진 63개의 원소를 카드로 만들어 그 이름과 성질을 기록했다. 이어 카드를 실험실의 벽에 핀으로 꽂아 놓고 자신이 모은 자료를 다시 검토했다. 그랬더니 원소의 성질이 놀랄 만큼 원자량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멘델레예프는 같은 성질을 갖는 원소가 주기적으로 나타난다고 확신한 후 원소의 성질을 원자량의 주기적인 함수라고 가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원소를 원자량의 순서대로 배열하여 하나의 일람표로 만들기 시작했다.
멘델레예프는 위대한 발견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을 직감했지만, 그것을 정확히 집어내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그는 “내 머릿속에는 모두 정리되어 있지만, 그것을 표현할 수가 없다”라고 불평하면서 깊은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1869년 2월 17일에 멘델레예프는 카드로 어질러진 책상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토록 갈망하던 주기율표를 꿈속에서 보았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나는 꿈속에서 모든 원소가 정확히 있어야 할 위치에 자리 잡은 표를 보았다.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나는 즉시 종이에 그것을 기록했다.”
하우와 멘델레예프의 사례는 유사한 패턴을 보여준다. 두 사람은 자신이 당면한 문제를 풀려고 몰입하다가 그 실마리를 우연한 꿈에서 얻었다. 여기서 필자는 “천재는 99퍼센트의 노력과 1퍼센트의 영감”이라는 에디슨의 명언을 떠올린다. 99번을 노력해야 1번의 영감이 온다는 것이니, 영감의 순간은 엄청난 노력 끝에 주어지는 선물인 셈이다. 과학의 역사에는 꿈을 꾸다가 혹은 산책하던 중에 또는 휴가를 보내다가 영감의 순간을 맞이하는 일화들이 종종 등장한다.
꿈으로 대박 난 과학자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인물은 19세기 독일의 화학자인 케쿨레이다. 그는 1865년에 뱀에 관한 꿈을 꾸면서 벤젠의 구조를 규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꿈속에서 뱀이 몸을 꼬아 입으로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벤젠의 고리 구조에 착안했다는 것이다. 케쿨레의 꿈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요셉의 꿈 이래로 역사상 가장 중요한 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몇몇 과학사학자들은 케쿨레의 꿈에 의문을 제기한다. 케쿨레가 자신의 꿈을 처음 언급했던 시기는 벤젠의 구조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지 25년이 지난 후였다. 그동안 아무런 얘기도 없다가 갑자기 1890년에야 꿈을 거론했던 셈이다. 이 때문에 케쿨레가 실제로 뱀 꿈을 꾸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그가 꿈을 꾸었는지 아닌지와는 무관하게 하필이면 왜 1890년에 꿈 얘기를 꺼냈을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그 실마리는 발견의 우선권에 관한 논쟁에서 찾을 수 있다. 케쿨레는 1890년까지 벤젠의 구조를 누가 먼저 발견했는가 하는 우선권 논쟁에 휘말려 있었는데, 1865년에 뱀 꿈을 꾸고 논문을 썼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