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대전환 연대회의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7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열린 한국군 호르무즈 파병 규탄 긴급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까지 거론하며 한국의 군사적 지원을 압박하자 호르무즈 파병을 둘러싼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그러나 호르무즈해협 내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최근 다시 거세지고 있는데다 시민사회는 물론이고 여당 일각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오면서 이재명 대통령이 ‘파병 딜레마’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백악관 관계자는 6일(현지 시간) 한국 정부가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군사적 기여 방안 등을 검토하는 것과 관련해 “한국은 중동산 원유의 주요 수입국 가운데 하나”라며 “우리는 한국이 역내(중동 지역)에 자원을 투입하기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밝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한국을 언급하며 “내가 ‘이란과 관련해 조금만 도와줄 수 없겠느냐’고 했더니 그들이 ‘안 하는 편이 좋겠다’고 답했다”며 “기억해둘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일에는 한국이 국산 대공미사일 ‘천궁-2’를 우크라이나에 판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칼럼을 SNS에 공유하기도 했다.
정부 내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그간 대미투자, 반도체, 호르무즈 기여 등이 한미관계에서 미측이 요구해온 큰 줄기였다면 그간 수면 아래에 있던 우크라이나 지원 사안도 다시 등장했다는 것이다. 한국이 호르무즈 파병에 나서지 않겠다면 우크라이나 지원에라도 나서서 미국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충족해줘야 한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사항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의 압박에 파병을 전향적으로 검토하던 정부가 다시 속도 조절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방부 정빛나 대변인은 이날 “호르무즈해협 자유항행의 조속한 회복을 위한 실질적 기여 방안을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의 중”이라며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선 현재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파병 문제를 적절한 시점에 공개하겠다던 국방부가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방부가 파병 준비를 구체화하고 있다는 소식이 여권과 조율 없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여권 내에서도 다소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선 “호르무즈해협 파병은 용납할 수 없다”며 파병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의원도 나왔고, 범여권 진보 정당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파병 반대 움직임을 보인다. 군부대를 해외로 파병하려면 국회에서 파병 동의안이 먼저 의결돼야 하는데, 아직 당내 이견조율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장 파병동의안이 국회로 제출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부는 “실질적 기여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원론적 표현으로 기여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미국과 영국·프랑스 등과 전략적 소통을 통해 호르무즈해협 파병 문제를 세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를 국빈 방문한 이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간 정상회담이 8일 예정돼 있는데, 이 자리에서 호르무즈 파병 논의가 구체화할 가능성도 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