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민음사 빵 열풍

입력 : 2026-09-07 18: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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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민음사 창립자 박맹호 회장은 “인류 문화의 정수를 우리말로 읽게 하겠다”는 포부 아래 세계문학전집을 내놓았다. 그해 8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와 국내 초역된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등 10권을 한꺼번에 출간했다. 민음사는 ‘새로운 기획, 새로운 번역, 새로운 편집’을 모토로 내걸었고, 당시 출판계에 흔했던 중역과 무단 번역을 배제했다. 대신 원전 번역과 정식 라이선스 계약을 원칙으로 삼았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올해 6월 단일 시리즈로는 국내 최초로 500권을 돌파했다. 출간 목록에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32인의 작품 99종이 포함됐고, 70종 이상의 작품이 국내 초역이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최근 유튜브 ‘민음사TV’의 흥행(구독자 수 약 56만 명)에 힘입어 국내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출판사 편집자와 마케터가 직접 등장해 재치 있는 입담으로 독자들을 사로잡고, 세계문학전집 가운데 최고의 한 권을 고르는 ‘월드컵’을 벌인다. 이들이 재미있게 풀어낸 책이 뒤늦게 주목받으며 베스트셀러로 역주행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세계문학전집 중 가장 많이 판매된 책 1~5위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순이다.

민음사가 GS25와 손잡고 최근 선보인 ‘민음사 빵’이 품귀 현상을 빚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모두 네 종류인 빵의 이름은 민음사의 책 제목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세계문학전집에 들어가 있는 안톤 체호프의 ‘사랑에 대하여’(모카번 커스타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모카번 우유크림)을 비롯해 문정희 시인의 시집 ‘늑대처럼 싱싱하게 울고 싶었다’(깨찰빵 솔티밀크), 허연 시인의 시집 ‘나쁜 소년이 서 있다’(깨찰빵 커스터드) 등이다. 빵 봉지 안에는 민음사 책 표지를 모티프로 한 책갈피 20종이 무작위로 들어가 있는데 이 굿즈를 뽑은 뒤 소장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한다. 이번 협업의 출발점에는 2030세대를 중심으로 확산한 ‘텍스트힙’(Text Hip) 현상이 있다. 책을 단순히 읽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콘텐츠이자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소비하는 트렌드다. ‘민음사 빵’은 민음사가 그동안 쌓아온 팬덤과 고전의 매력을 편의점으로 확장한 사례다. ‘민음사 빵’ 열풍이 진짜 독서 열풍으로 확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