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는 익숙한 풍경이 하나 있다. 보통 텔레비전으로 실시간 중계가 이뤄지곤 하는 그 풍경에는 곧잘 등장하는 클리셰가 있다. 약간은 추레해 보이는 검은색 옷을 입거나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는 주인공들이 제법 많다는 점이다. 주인공의 등장과 함께 이어지는 것은 마이크 묶음을 들이대거나 카메라들이 포위를 한 상태로 무한정 플래시를 터트리는 장면이다. 주인공의 꼭 다문 입이나 고개를 떨군 모습 옆으로 심정을 묻는 질문 등이 쏟아지는 사이 어느새 주인공은 건물 안쪽으로 총총히 걸어 들어간다. 이 익숙한 풍경은 검찰이나 경찰에 소환된 피의자들이 포토라인에 서는 장면이다. 이 포토라인에 선 주인공은 향후 기소 등을 통해 판사 앞으로 가는 길이 예약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판 전 통과의례나 마찬가지인 이 포토라인에 마침내 판사까지 서야 할지도 모르는 날이 왔다. 판사도 일반 형사법을 위반했다면 포토라인에 서는 게 당연하겠지만 판사가 행한 판결로 인해 포토라인에 선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혹여라도 소환돼 포토라인에라도 설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법왜곡죄는 법원에 큰 트라우마를 남길 것이다.”(수도권의 한 고법판사)
최근 법률 전문 보도 매체가 소개한 인터뷰에는 판사들의 속내가 잘 드러나 있다. 법왜곡죄 도입이라는 시대의 파고 앞에 결국 판사들도 불안감을 느끼는 한 인간이 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판사들이 가졌던 인간적 고뇌의 원인이 주로 외부의 부당한 압력이었다면 앞으로는 법왜곡죄 혐의 고소·고발 난무가 될 가능성이 크기에 불안감은 피부에 더욱 맞닿아 있는 모양새다.
결국 이런 불안감은 판사들을 형사재판부 기피로 몰아간다. 법왜곡죄가 수사와 관련한 재판에 주로 적용되기 때문에 그렇다. 벌써 일부 법원에서는 형사합의부 재판장을 서로 맡지 않으려 한다는 분위기까지 감지된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형사재판을 떠맡을 수밖에 없다면 해당 판사는 법왜곡죄로 고소를 당하지 않을 수준에서 ‘방어재판’을 할 것이고 이는 범죄자를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터이다. 특히나 권력자가 피고인 형사재판의 경우 향후 법왜곡죄 고소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방어재판이 더욱 난무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우리 사회의 필수 시스템 하나가 또 붕괴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재판만큼 중요한 분야의 시스템 붕괴를 겪은 바 있다. 필수의료가 급격히 무너지고 있는 의료 분야가 대표적이다. 법왜곡죄가 도입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형사재판으로 대표되는 필수재판의 붕괴가 ‘우려’되고 있다면 필수의료의 붕괴는 ‘현실’로 나타난 위험이다.
올해 상반기 레지던트 1년차 모집 결과를 보면 필수의료 붕괴의 현실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지역의 한 수련병원의 경우 모두 15명 정원인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 외과, 내과의 지원자는 전무한 상황이다. 수도권 빅5 병원의 소아청소년과와 심장혈관흉부외과, 응급의학과 전공의 충원율도 40%대를 넘지 않을 정도다.
필수의료 지원자의 궤멸적 감소만 문제가 아니다. 이미 의료 현장에선 과감하게 생명을 살리려고 뛰어드는 의사보다는 의료사고로 인한 소송을 피하려는 ‘방어진료’에 주력하는 의사들이 더 많은 실정이다. 이를 두고 의사들의 공공의식 결여만을 비판한다면 우리는 판사에게도 양심 부족 운운하며 똑같은 우를 범할 수 있다. 의사의 방어진료는 공공의식 결여보다는 소송에 대한 두려움이 원인이다. 마찬가지로 판사의 방어재판도 양심 부족보다는 법왜곡죄 적용에 대한 두려움이 배경이 될 터이다.
재판과 의료를 필두로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필수 시스템 붕괴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수사권을 독점하게 된 경찰이 최근 권력자와 관련한 수사를 오랫동안 뭉개며 ‘방어수사’를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음에도 시스템적으로 견제할 방법이 없어진 것도 또 다른 필수 시스템 붕괴의 서막으로 보인다. 이는 판사나 의사, 경찰 개인의 불안이나 두려움을 넘어 ‘알아서 드러눕는’ 행위들의 일상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방어재판이나 방어진료, 방어수사의 일상화는 권력자가 일방적 이득을 보거나 환자나 피해자가 일방적 손해를 보는 경우의 일상화를 뜻한다.
필수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서둘러야 한다. 이는 시스템 속 종사자를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다. 시스템 속 종사자도 결국 인간이고, 인간은 균질하지 않아 아무에게나 보통 이상의 용기를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용기에도 최소한의 균질성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외부적 요인에도 알아서 드러눕지 않을 수 있는 용기는, 용기마저도 시스템적으로 최소한의 균질성을 담보하는 사회적 합의 위에서만 나올 수 있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