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3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18개 기관·조직을 7개 기관으로 통합·재편한다고 발표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공공기관이 너무 많아 숫자를 다 세기 힘들 지경”이라며 유사·중복 기능에 대한 과감한 통폐합을 주문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효율, 절감, 시너지. 발표문에 등장하는 단어들은 반짝인다. 그러나 반짝이는 것이 빛이 아니다. 지금 문화예술계가 마주한 것은 빛이 아니라 칼이다. 그리고 그 어떠한 소통의 테이블도 없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국립박물관문화재단, 국립문화공간재단 등 4곳은 ‘한국문화예술산업진흥원(가칭)’으로 합쳐진다. 국악방송과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합쳐져 ‘국악문화산업진흥원(가칭)’으로 일원화되며, 지역문화진흥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한국문화정보원이 ‘한국문화진흥원(가칭)’으로 재편된다. 이름이 비슷하니 합쳤다. 기능이 겹치니 묶었다. 이것이 개편의 논리 전부다.
문체부 산하 18개 기관·조직 통합 추진
이름 비슷하고 기능 겹친다는 것이 논리
일괄적인 통폐합, 전문 분야 창작성 퇴색
예술경영지원센터와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유사한 일을 하는가.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과 국악방송이 같은 언어로 말하는가. 전자는 공연예술 유통과 해외 시장 진출을 지원하고, 후자는 전통 음악의 대중화와 방송 콘텐츠를 다룬다. 업무의 결이 다르고, 현장과의 관계 방식이 다르며, 지원 대상의 생리가 다르다. 그것을 이름 몇 글자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한 지붕 아래 밀어 넣는다. 외과 의사와 정형외과 의사가 같은 병원에 있다고 같은 의사가 되지 않는 것처럼, 공예 진흥과 공연 유통과 박물관 경영은 같은 일이 아니다. 이것은 야당의 주장이 아니다. 상식의 주장이다.
예술의 창작성은 행정의 효율과 전문성의 대상이 아니다. 각각의 예술 분야는 거기에 부합한 행정 지원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기계적이고 일괄적인 통폐합은 오히려 전문 분야의 창작성을 퇴색하게 할 뿐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이 통폐합의 논리는 문화예술을 산업으로만 본다는 점이다. ‘한국문화예술산업진흥원’이라는 가칭 이름을 보라. 예술 앞에 ‘산업’이 붙었다. 예술을 진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 산업을 진흥하겠다는 것이다. 이 한 글자의 차이가 모든 것을 바꾼다. 산업의 논리는 수익과 효율을 향한다. 예술의 논리는 창의성과 실패를 향한다. 팔리지 않는 시, 흥행에 실패한 실험 연극, 관객이 열 명도 안 되는 전통 음악 공연 그것들이 산업의 언어로는 실패지만, 예술의 언어로는 생존이다. 통폐합 이후 그 실패들을 누가 지킬 것인가.
기초 예술 생태계를 지탱해야 할 핵심 공공기관들이 전문성과 철학, 현장의 신뢰를 상실한 채 논공행상의 자리로 전락하는 현실, 이미 진행 중인 심각한 문제다. 기관을 줄인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큰 기관 하나가 탄생하면 그 기관의 수장 자리는 더 탐스러운 정치적 보상이 된다. 지금의 통폐합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더 큰 그릇에 담는 것에 불과하다.
이 모든 혼란의 뿌리에는 낡은 법이 있다. 문화예술진흥법은 1972년에 제정됐다. 유신 시대의 산물이다. 그 시대의 문화 정책은 ‘진흥’이었다. 국가가 위에서 아래로 문화를 내려보내고, 예술가는 그것을 받아 수행하는 구조. 54년이 지난 지금도 이 법의 뼈대는 그대로다. 문예진흥법을 예술지원법으로 분법화해 동법의 규율 범위를 예술 영역으로 명확화하고, 예술의 발전을 위한 핵심 법률로 그 역할과 기능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번번이 묻혔다. 지금 이 통폐합 앞에서 그 논의를 먼저 꺼내야 한다.
‘진흥’과 ‘지원’은 다르다. 진흥은 국가가 방향을 정하고 예술을 그 방향으로 이끈다. 지원은 예술가가 방향을 정하고 국가가 그 뒤를 따른다. 블랙리스트가 가능했던 것은 이 법이 ‘진흥’의 언어로 쓰였기 때문이다. ‘예술지원법’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이름 바꾸기가 아니다. 국가와 예술의 관계를 근본에서 뒤집는 일이다. 갑과 을의 관계를 의뢰인과 조력자의 관계로 바꾸는 일이다.
시대는 이미 변했다. 문화기본법이 제정되고, 예술인복지법과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이 생겼다. 예술인이라는 위치를 법으로 제정하고 보호하는 시대다. 이제 예술은 그 이름만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예산을 절감하고 싶다면 방법은 있다. 중복 사업을 정리하고, 기관장 자리를 줄이고, 비대해진 직접 사업을 민간에 돌려주면 된다. 54년 묵은 ‘진흥’의 언어를 버리고 ‘지원’의 언어로 법을 다시 쓰는 것, 그것이 진짜 국뽕이 넘치는 K컬처의 진정한 내면이다.
이름을 합친다고 예술이 합쳐지지 않는다. 법을 바꾸지 않으면 행정도 바뀌지 않는다. 구조를 바꾸기 전에 철학을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술가들과 먼저 대화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