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20세기의 오디세이, 윤이상의 '예악'

입력 : 2026-09-17 18: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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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평론가

윤이상. 윤이상평화재단 제공 윤이상. 윤이상평화재단 제공

9월 17일은 한국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이 태어난 날이다. 39세의 늦은 나이에 유학을 떠난 그는 프랑스를 거쳐 독일 베를린에서 음악의 새로운 사조를 익혔다. 그러다가 1959년 독일 다름슈타트 음악제에서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을 발표하여 큰 반응을 얻었다. 그 음악회에서 지휘를 맡았던 브루노 마데르나는 연주가 끝나자마자 윤이상을 끌어안으며 “유럽 현대음악이 가보지 못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라고 극찬했다. 현지 신문은 “동양의 유산이 서양 현대음악의 막다른 골목(엄격한 음렬주의의 한계)을 깨뜨릴 새로운 열쇠가 될 수 있다”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고 평했다. 그때까지 유럽 음악가들에게 동양이란 그저 오페라 ‘나비부인’이나 ‘투란도트’에 쓰인 것처럼 이국적인 에피소드나 소재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후 엄청난 속도로 신작을 발표하던 윤이상은 1966년에 도나우에싱엔 음악제에서 관현악을 위한 ‘예악’(禮樂)을 초연했다. 이 곡은 조선 시대의 종묘제례악을 서양 오케스트라 속으로 불러와서 벌인 음의 축제와도 같았다. 이로써 윤이상은 “동양과 서양을 완벽하게 결합한 최초의 작곡가”라는 극찬을 받으며 일약 현대 음악계의 샛별로 떠올랐다.

윤이상-예악 윤이상-예악

윤이상의 음악은 베토벤이나 차이콥스키 곡에서 들을 수 있던 식의 멜로디가 없다. 정해진 조성도 없고 익숙한 화성이나 리듬도 없어서 처음 접하는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대신 음향과 음색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는다. 이런 점에서 그는 당대의 무조음악이나 음향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윤이상의 특별한 점은 현대음악의 기법을 동양이라는 소재와 정신계에 놓고 결합한 것이다. 윤이상이 만든 음향은 생성되고 움직이다가 소멸하는 자연의 이치를 따라간다. “동양에서는 사람이 혼자서 음악을 만들지 않으며, 음향이 이미 그곳에 먼저 존재한다… 그러므로 동양 사람들이 말해오기를, 음악이란 작곡하는 것이 아니고 낳는 것과 같다고 했다. 우주에 작은 부분이 탄생하는 것이다”라고 윤이상은 말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 이미 오래전에 ‘20세기의 오디세이’로 불리던 작곡가가 있었으니, 그가 윤이상이었다. 신화 속의 오디세이는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20세기의 오디세이는 끝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1995년 베를린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후 한국에서 통영국제음악제와 윤이상평화재단이 출범했고,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가 열리고, 윤이상 기념관이 세워졌다. 그리고 2018년에 베를린에 쓸쓸히 잠들어 있던 윤이상의 유해가 통영으로 이장되었다. 그의 묘비에 적혀있던 ‘처염상정’(處染常淨), 비록 혼탁한 곳에서도 항상 정결함을 잊지 않는다는 그 문구도 같이 한국으로 왔다.